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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우묵배미의 사랑(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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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10.21  15: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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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생명을 전파하며 사진을 찍고 있지만 한 때는 전사였던 박노해 시인은 박음질하는 시다를 ‘시다의 꿈’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시다라는 말은 시말고도 영화 <친구>에서 또 한 번 나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여기서 시다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보조원 즉 꼬붕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말에서 온 비속어인 시다를 굳이 들먹인 것은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1990)에 나오는 주인공 공례 (최명길)와 일도(박중훈)가 시다 생활을 하다 만났기 때문이다. 만나는 공간이 옷 공장이고 하는 일이 옷감을 손질하는 시다 일이니 억지 춘향 격으로 엮었다고 해도 그러니 하고 이해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들 시다는 전쟁 같은 밤일을 끝내고 싶은 노동의 잔혹함을 이야기 하거나 건달 세계의 우정과 갈등을 말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제목에서처럼 사랑을 하는 남녀관계를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뿐이라고 했지만 그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것이 다른 것 보다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몸 팔 던 여자(유혜리)의 손님으로 만난 일도는 그녀와 살림을 차린다.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아이도 낳았다.

일도는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녀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기가 센 것도 한 이유 일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가 사타구니 사이에 일도의 목을 넣고 헤드 뱅뱅을 할 때면 ( 이 장면을 보면 이 영화를 코미디라고 장르지어도 무방하다.) 파워가 넘치고 아주 자세가 죽여준다.

전직 레슬링 선수였다고 믿어도 될 만큼 그녀의 '안다리 조이기' 기술은 대단하다.

일도 가족은 어느 날 서울을 떠나 그 변두리쯤으로 되는 우묵배미( 처음에는 먹는 음식인 줄 알았다.)로 이사를 온다. 그리고 근처 공장에서 취직을 하는데 그 곳에는 그 보다 먼저 온 미스 민공례 ( 결혼을 했음에도 그 곳 사람들은 공례를 미스 민이라고 부르고 일도도 그렇게 한다.)가 마치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 한 가득 웃음으로 맞는다.

공례는 무슨 말을 해도 웃는데 백치라기보다는 그렇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 젊을 적 최명길은 때에 따라 눈으로 보기에 좋고 사랑스럽다.) 사장의 성희롱( 화장실 갔다 왔다고 하자 거기 방광이 작은지 조사해 보자고 한다. 일도도 가세한다. 그녀에게 대놓고 정말 처녀냐고 묻는 등 성차별적 언어가 난무한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것을 받는 공례는 좋아 죽겠다는 듯 이 그저 연신 함박웃음만 지을 뿐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폭력적 성 괴롭힘이지만 그 때는 보약보다 더한 삶의 활력소였는지 거기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 같이 기분이 좋은 상태다.

음담패설을 남자도 즐기고 거기 있는 아줌마들은 더 즐긴다. 웃고 지껄이다 보면 가까워지는 것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둘이 수작질을 하다가 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미스민이 미스가 아니고 미세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부터다. (그녀는 일도의 아들보다 큰 아들이 있다.)

홀로 남은 공장에서 고독을 씹던 일도는 문이 열리면서 '기다렸다'는 공례의 말을 듣고 호박이 넝쿨 채 굴러 온 듯 한 미소를 짓는다.

마침 월급날이다. 주머니도 두둑한 일도는 데이트 하자는 그녀를 따라 기차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막다른 곳에 내린다. 그 곳에는 온천이 가능한 여관이 버티고 있다.( 여관 이름은 초원의 집이다. 아, 초원이 펼쳐진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이즈음부터 공례의 얼굴은 처녀티가 사라지고 완전 아줌마모습으로 바뀐다. 분장의 효과라니.)

하지만 둘이 엮인 것은 그 날이 아니고 그 후의 일이다. 거기까지 제 발로 앞장서 왔으면서도 미스 민은 왠 떡이냐 하며 침을 흘리던 일도가 기다리다 지쳐 잠든 사이 '마음이 준비 안됐다'는 메모를 남기고 먼저 떠난다.

이후는 이 곳 저 곳에서 리얼한( 이런 장면을 보고 리얼 멜로니 사실적 멜로니 하고 갖다 붙여도 상관없다.) 정사신이 벌어진다. 그 중에서 관객의 관심을 끄는 공간은 비닐하우스다. 그 곳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안은 겉에서 보기보다 참으로 온화하고 안정감을 준다. (물레방앗간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우묵배미 좀 더 자세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두 사람은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은 그런 행동을 하면서 일도의 표현대로 샛길로 빠진 쾌락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그러나 라는 반전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직선으로 달린다.

일도의 부인이 낌새를 먼저 챘다. 그녀는 그런 그를 사정없이 몰아친다. 그리고 개 끌듯이 끌고 시댁으로 가서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이 장면은 분명 신파다. 둘러선 구경꾼들과 거듭되는 그녀의 타령은 보기에 안쓰러울 지경이다. 오글거려 죽기 일보직전임)

그래서 일도는 정신을 차렸을까. 그가 그렇게 했다면 일도가 아니다. 헌데 아버지나 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마구 따귀를 때리고 아무 저항 없이 얻어터지는 것은 일도의 정신에 맞다 고 쳐도 홀로 방에 남겨 졌을 때 그가 우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것은 오른쪽 팔뚝에 '一心' 이라고 써놓은 ‘인간 배일도’의 그간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울기 보다는 히죽, 히죽 웃거나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어야 마땅했다. 그 것이 일도다운 태도인데 그 장면 내내 아쉽다.

아내에게 잡혀 다시 단칸방으로 왔으나 일도가 아내 유혜리 보다는 공례 최명길과 그 짓에 더 정신 팔렸을 것은 자명하다.

그가 몸을 숨기고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는( 이 때 그는 시인이 자신의 대작 시를 낭독하듯이 그녀의 몸과 느낌을 표현하는데 발음이 아주 좋다. 요즘 주연 배우 가운데 딕션( 발음 전달력)이 형편없는 배우들은 박중훈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 말이 그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결말은 싱겁다.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내 헤어진 일도를 만난 공례는 예의 그 비닐하우스에서 그 짓을 하다가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느냐고 하소연으로 방향 전환을 하더니 그런 이유로 등을 돌린다. 일도의 손을 뿌리치고 바이, 바이 하는 것이다.

일도 역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녀와 다른 방향으로 간다. 이것으로 일도와 공례의 사랑은 끝났고 영화도 끝났다.

아쉬움이 많지만 웰 메이드 영화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이런 저런 표현, 이런 저런 대사, 이런 저런 연기나 이런 저런 연출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국가: 한국

감독: 장선우

출연: 박중훈, 최명길, 유혜리

평점:

: 인간을 이렇게 구분해도 용서가 된다면 공례와 일도는 삼류 인생이다. 직업이나 생활 수준이 그렇다.

그런 그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도피행각을 벌인다. 자식을 팽개쳐 두고 딴살림을 차린다.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간혹 하는 일이므로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일도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개망나니 기질까지 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도무지 미래라는 것을 위해 오늘을 저축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뭐가 좋다고 따라다니는지 공례도 단단한 여자라고는 할 수 없다.

전 남편이 개차반이라고 해도 남겨진 아들에 대한 책임감은 육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러니 그들의 사랑은 제한된 사랑이다. 오로지 큰 길이 아닌 샛길로 빠진 눈이 먼 그런 사랑이다.

한편 우묵배미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한다. 어쩐지 마을이름치고는 괴이하다고 그런 의미인줄 알고 나서 뒤늦게 생각했다.

<머나먼 쏭바강>의 작가 박영한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다. ( 이 작품은 1993년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됐다. 박중훈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베트남 여성과 사랑 그리고 전쟁을 비판적 시각으로 본 흔적이 있는 역작이다. 시간이 있다면 챙겨 보기를 권한다.)

흘러간 옛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기차 칸에서 맥주를 먹고 통로에서 기회를 엿보는 장면들은 나이 든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음직해 아련한 추억을 일으킨다.

그래서 보면서 쓴 웃음 내지는 헛웃음을 지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아줌마들이 담배 피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술집여자도 아니고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그들에게 담배연기 그칠 줄 모르는 것은 막 일기 시작한 여성해방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들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적극적으로 성적 농담을 주도하는데 이를 옆에서 듣는 미스 민은 싫은 내색이 없다. 시대는 변하고 의식은 흐름을 타고 바뀌는데 불과 수 십 년 전에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오늘날에는 엄청난 사건이 된다.

그 것이 역사 발전의 한 축이라고 이해하면 무난할 듯싶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마님의 ‘영원한 돌쇠’ 이대근이 어울리지 않게 처량한 모습으로 등장해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연기의 달인 최주봉이 건들거릴 때면 그가 좀 더 나와서 웃겨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을 올해 재개봉 한다고 했을 때 박중훈은 자신이 기꺼이 홍보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그를 화면에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의 연기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선전물에는 이런 글귀들이 적혀있다. “남루한 젊음의 사랑이야기, 잡초 같은 인생에도 단 한 번 사랑의 꽃은 핀다, 건강한 일터에서 피어나는 넉넉한 사랑 봇따리.” 메인 카피가 어울리는지 보고 나서 감상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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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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