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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난쏘공(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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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난쏘공(198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5.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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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근방은 자주 안개가 낀다. 그 안개를 뚫고 작은 수로 길을 따라 아이들이 걸어온다.

완두콩을 교배시키면 큰 놈만 나온다면서 나중에 우리가 결혼하면 네 아버지처럼 난장이가 아닌 큰 아이를 자식으로 낳게 될 거라고 조잘댄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으면서 소년 영수( 안성기) 소녀 명희 ( 전영선) 는 미래의 신랑각시가 된다.

안개가 걷히면 염전이 보이고 소금을 보관하는 소금창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다. 염전 너머로 고층 빌딩이 보이고 아직 공사 중인 건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은 개발 중이다.

그 곳에 난쟁이를 아버지로 둔 김불이 가족이 모여 살고 있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그런데 행복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이들이 그 시절에 한 약속들은 어른이 된 현재 지켜지고 있을까. 다방인지 술집인지 모를 곳에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그 곳에 성장한 명희가 붉은 입술 사이로 연기를 내 뿜고 있다.

명희는 술집 여자가 된 듯 하다. 연기사이로 소년과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소녀는 말한다. 네가 약속하면 허락할게. 무슨 약속? 소금밭에 나가서 염부가 되지 않겠다고.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절대로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고.

소년은 약속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다 틀렸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부자로 살고 있지도 않다. 술잔은 앞에 두고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둘은 괴롭다.

 

영수 동생 영호(이효정)은 세차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권투 시합을 한다. 아버지 건강은 예전만 못하고 일거리는 줄어든다. 영수와 영호, 그리고 영희( 금보라)는 아버지가 여전히 일하는 것이 안쓰럽다.

어머니( 전양자)는 아버지가 이젠 쉴 때가 됐다고 말하지만 가정 형편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가난해도 행복한 가정은 염전을 바라 보며 야외에서 마주보고 식사를 한다.

구운 꽁치를 먹으며 웃음꽃이 피고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 하지만 개발의 광풍은 염전을 압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오염된 바다는 더 이상 소금을 생산할 수 없다. 영수는 전봇대에 붙은 모집공고를 보고 쇳물을 붓는 노가다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곧 사고로 발을 다친다. 난쟁이 아빠는 아이들이 둘러서서 구경하는 마당 한 쪽에서 칼을 갈고 있다.

칼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는 난쟁이를 술집으로 데려간다. 그 날로 제복입고 모자 쓴 아빠는 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으며 '좋은 술과 예쁜 여자 있다' 고 호객에 열심이다.

술집여자 명희는 그 모습을 보고 한 쪽으로 숨고 어느 날 영수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본다. 손님들은 난쟁이를 들어 올려 놀리기도 하고 모자를 벗겨 머리 위에서 흔든다. 미니보이라는 별명이 아빠에게 새로 붙는다.

투기꾼들은 입주권을 팔라고 원주민을 꼬드긴다. 겨우 50만 원 정도를 주고 아예 강제로 내 쫓으려 한다. 지금 같은 집을 지으려면 300만 원 정도가 들고 입주권을 가지고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5백만 원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 둘 입주권을 팔고 영수네 집만 남았다. 모기장 속에 5 섯 식구가 나란히 한 방에 누워 있다. 영희는 이웃 명희 언니가 큰 오빠를 여전히 좋아한다는 것을 상기 시키고 영수는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등을 돌리고 고뇌한다.

밤은 깊어가고 가족들은 깊은 잠에 빠져 든다. 입주권을 팔고 떠나야 할 날짜는 다가온다. 빵공장에서 일하는 영희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느 날 가족이 한 버스를 타고 퇴근한다.

들리는 노랫소리가 구슬프다. '간밤에 꾸었던 슬픈 꿈이랑 아침 햇살에 어둠이 가시듯이 잊자'고 다그친다. 하지만 노래일 뿐이다. 

현실은 잊을 수 없고 철거 날짜는 코앞에 닥쳤다. 선글라스를 쓴 장발의 남자(김추련)가 자동차 안에서 영희를 눈여겨본다. 입주권을 조금 비싸게 산다. 영호는 떠나지 않겠다고 떼를 써보지만 포크레인의 삽날 앞에 맥을 추지 못한다. 

설사가상으로 권투 시합 마져 져서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자동차는 떠나는데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던 영희는 사내를 따라 집을 떠난다. 그는 말한다. '어떤 경우라도 안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땐 끝장'이라고.

아버지는 높은 굴뚝에 올라가서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명희는 약을 먹었다. 영수는 명희를 업고 뛴다. 위세척에도 불구하고 명희는 죽는다. 명희는 임신한 상태였다. 아이 아빠는 아무말없이 본국으로 도망갔다. 

유골함을 안고 영수가 마을로 들어온다. 그러나 슬퍼할 시간이 없다. 용역들은 인정사정없이 집을 부순다. 그런 인부들에게 어머니는 구운 고기를 대접한다. 뻥 뚫린 벽 사이로 염전의 옛 모습이 흐릿하다. 

영희는 남자에게 몸을 바친다. 남자가 잠 든 사이 금고를 열어 자신의 집 입주권을 몰래 뺀다. 영희가 입주권을 가지고 집에 온 날 아빠는 죽는다.

국가: 한국

감독: 이원세

출연: 안성기, 금보라

평점:

 

: 집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가족의 모습은 달라진다. 비록 하꼬방이라도 내 집이 있다면 식구들은 단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뿔뿔이 흩어진다. 

조세희 원작의 이 영화는 개발의 광풍에 밀려나는 난쟁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아픈 과거를 보여준다. 과거라고 했지만 지금도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가난한 자들의 행복은 날품팔이처럼 일회용이다. 꿈이나 희망이 있다고 해도 이루어 질 수 없다. 아빠의 꿈도 그렇다. '내겐 꿈이 있다'는 그는 네 애미를 위해 달나라에 먼저 가서 릴리프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아들을 앞에 두고 맹세한다. 

달에다 난장이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 업신여길 사람이 없는 그곳은 사랑으로 바람을 부르고 사랑으로 비를 내리고 사랑으로 말하며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는 곳이다. 

네 어머니를 그 곳으로 모셔 여왕으로 삼을 작정이란다. 그러나 그 꿈은 허황된 것이 지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굴뚝에 올라가 접시 비행기를 날리는 것 뿐이다. 명희가 술집에 나가지 않고 영수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꿈은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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