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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현해탄은 알고 있다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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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현해탄은 알고 있다 (196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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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망하기 직전 1944년 어느 날, 조센징으로 불리는 조선인이 자원입대한다. 아로운(김운하)이 친구와 함께 학도병으로 천황의 신하가 되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짐작하건데  출병하라는 등쌀에 못 이겨 강제징집 비슷하게 끌려온 모양이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신이나 유명인들이 신성한 전쟁에 나가서 천황을 위해 총알받이로 피를 흘리는 것이 조선인의 영광이라는 말에 현혹 됐을 수도 있고 어차피 갈거 먼저 선수 쳐서 나왔을 지도 모른다.

황군의 병사로 명예롭게 죽기를 바랐던 아로운은 그러나 입대 첫날 부터 실망의 연속이다. 머리를 깎고 군복을 입고 자대에 배치된 아로운은 훈련을 하고 적을 죽이는 전선에 투입되는 대신 갖은 모욕과 구타에 시달린다.

때리는 자는 모리( 이예춘) 일병인데 하도 그 짓을 많이 해서 때리는 것을 거의 예술의 경지에 까지 끌어 올린 인물이다.

그는 조센진 주제에 감히 대일본 제국의 군인이 될 수 있는가에 물음을 가지고 있다. 일본군에는 개도 있고 말도 있으니 조센진이라고 해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아로운은 불평불만이 많다. 인종개조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가 적격이다. 

매질은 일본군대 50년의 전통이기도하다.

입대한지 4시간 밖에 안 됐지만 벌써 아로운과 친구는 뺨에 불이 번쩍번쩍 날 정도로 심하게 얻어맞는다. 

마대자루 비슷한 막대기로 배를 찔러 보기 좋게 쓰러트리기도 한다.

맞으면 여자생각이 슬쩍 사라져서 잠이 잘 온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매질의 이유다. 먹을 때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는데 조센징은 예외다.

배식은 남긴 밥을 먹어야 한다. 거부하면 더러워서 그러느냐고 때리고 나를 무시한다고 때리고 매타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때리는 것도 그렇지만 맞는 것도 아구통이 휙휙 돌아가니 실감이 제대로다. 보다 못한 다른 일본군이 맞을 때마다 여자 옷 벗기는 생각을 하면 아픈 줄 모르고 그러면 때리는 자가 제 풀이 지친다고 맞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루는 일본인 집에 갔는데 거기에 예쁜 여자 히데꼬(풍미도리)가 있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급속히 발전한다. 하지만 히데꼬의 엄마는 조센징을 반겨할 이유가 없다.

얻어 터지는 부대생활은 계속된다. 내부반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주먹질 뿐이다. 전쟁중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어쩌다 전투기가 날지만 자료화면이다. 전장보다 더 볼 만한 장면은 모리가 등장할 때다.

그는 조센징 개자식이 입에 달고 다니며 아로운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군화를 닦아오면 밑바닥을 핥으라고 한다. 똥이 묻었다는 이유다. 구역질을 하다 못참고 침을 뱉으면 다시 개처럼 하라고 하고는 이번에는 침을 삼키게 한다.

천황폐하의 아들이 똥을 핥느냐고 대들면 분에 못 이겨 단검을 꺼내 들고 아예 찔러 죽이려고 덤벼든다.

아로운은 그렇게 맞고 모욕을 당해도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것이 조선이 기개라도 되는 양 수그릴 줄을 모른다. 맞고 나면 아로운은 히데코를 찾는다.

기합 받은 내용을 전해주면 그녀는 그가 불쌍해 뺨에 자기의 뺨을 대고 부비면서 눈물을 흘린다. 고등교육을 받은 아로운은 여자의 품에 안겨 일본와서 처음 한 일은 똥 맛을 본 거라고 서러워한다.

히데꼬는 운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아로운은 고맙게 여긴다. 위로를 받고 다시 부대로 복귀하면 모리의 매질은 더 거칠어 진다.

의자를 집어 던지고 일본도를 꺼내든다. 아로운은 더는 군대생활을 할 수 없다. 지원을 취소하겠다고 대든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질 뿐이다. 그래도 기는 꺾이지 않는다.

아로운과 히데꼬는 더욱 가까워진다. 아로운이 씻을 때는 등을 밀어주는데 엄마에게 들키면 귀한 손님의 등을 밀어주는 것은 일본의 풍속이라고 거짓말까지 한다.

아로운이 지쳐서 돌아오면 밥도 차려 놓는다. 히데꼬는 조선 사람도 일본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서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은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처럼 결혼식을 올린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시 내무반이다. 그곳 생활은 지옥이다. 반면 히데꼬와의 만남은 천국이다. 떨어지기 싫지만 아로운이 다시 내부반으로 복귀한다.그 곳에서 오랫만에 술 파티가 벌어진다. 모리는 아로운에게도 한 잔 준다. 

맞는 것은 너고 때리는 것은 나니까 선심을 베푼다. 하지만 아로운은 기분좋게 받아 먹기보다는 네 얼굴을 똥 핥듯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빈정댄다. 목숨이 백개 이상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대담한 짓이다. 

생각할 것도 없고 바로 주먹이 면상을 박살낸다. 전광석화와 같은 주먹질과 퍽하고 맞는 둔탁한 소리는 볼때는 물론 들릴때도 만족감을 준다. 이 영화는 맞고 때리는 장면만 봐도 본전은 뽑는다. 그 만큼 구타가 기막히다. 

아로운은 일본제국주의 때문에 인간성을 잃고 그 대가로 일본 여자로부터 위안을 받고 있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하지만 히데꼬는 아로운을 단순히 위안 이상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인이기에 앞서 여자이며 여자는 남자에 따라 성이 변하고 국적까지 변한다며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제대로 무언가 둘이 하려고 할 때 엄마가 들어오고 하지 못한 아로운이 마루 밑에 숨었다가 부대로 복귀하는 장면은 아쉽다.

복귀는 곧 구타를 의미한다. 아로운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기보다는 구타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런 순간이 부끄러운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히데꼬의 위안도 소용없다. 비행기 폭격으로 히데꼬의 아버지는 폭사한다. 어머니는 그래도 일본이 이긴다고 하고 딸은 일본은 진다고 맞선다. 

이런 가운데 스파이로 조센징이 지목되 아로운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위기를 넘긴 아로운은 복숭아를 선물하면서 어머니의 선심을 사려고 노력도 하고  어느 날은 이불 깔린 방에서 히데꼬의 적극적인 위로를 받고 행복해 한다. 

전쟁통에 조선에서 아로운의 여자 친구가 온다. (이때는 한동안 소리가 들리지 않는 묵음 상태가 된다. 일부러 복원을 안 했는지 복원할 수 없는 무슨 대목이 있는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그 상태가 지속된다.)

조선에서 여자가 왔으니 히데꼬의 기분은 엉망이 됐지만 이후 전개 상화을 보니 게의 치 않는 대범함을 보이는 것 같다. 

잡혀온 미군 포로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포로로 대우를 받기 보다는 처형당한다. 아로운은 능숙한 영어로 영창병사가 되고 여전히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모리는 이제는 위안부 타령이다. 

공중변소처럼 줄 서 있는 병사들을 묘사하면서 웃고 떠드는데 감독은 이 장면에서 일본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때 아로운의 친구는 오장이 돼서 돌아와 계급을 무기로 모리를 메다 꽂는다. 키가 크다고 얻어터진 분풀이를 한다. 전쟁은 막바지다. 내일 출동하면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다. 

각본을 짜고 모리는 찌르라고 부하를 떠다민다. 죽기 보다는 영창에서 10년 갖혀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천황을 신주단지 모시던 모리는 이제 천황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

아로운도 작별 인사를 하러 히데꼬를 찾아가는데 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린다. 폭사한 다른 병사의 다리를 아로운 것으로 바꿔치기 하고 아로운은 말을 타고 히데꼬와 다른 길로 도피한다. 

그 때 대규모 공습이 벌어진다. 이들도 지하에 숨는데 떨어지는 것은 빗물이 아니라 기름이다. 불을 지를 모양이다. 헌병은 아로운을 잡기 위해 일본도를 마구 휘두른다. 

그는 성냥에 불을 붙여 던지면서 저항한다. 헌병은  불길에 타서 죽는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마구 떨어진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죽는다. 아르곤도 시체 더미에 섞여 있다. 

일본군은 시체를 다 태울 작정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로운은 살아서 히데꼬 쪽으로 걸어 나온다. 얼굴은 타고 군복은 찢겼는데 산송장과 다름 아니다.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장면은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에서 다시 본 듯한 모습이다. 마무리가 아주 장엄하다.

국가: 한국

감독: 김기영

출연: 김소운, 이예춘

평점:

 

: 김기영 감독의 작품 치고는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많이 들어 있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눈치를 본 흔적 때문은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의구심도 가져본다.

<하녀>나 <화녀> 등에 비해 작품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 보는 내내 속상했다. 하지만 대가의 솜씨가 어디 가겠는가. 부족한 부분은 다음 장면에서 바로 복원이 된다. 

출연진들의 연기력도 좋다. (음소거 상태가 하루 빨리 복원되기를 기대한다.줄거리 상 큰 문제가 없다해도 두 장면에서 수 분 씩 그런 상태로 영화를 보는 것은 지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더 신경을 써서 완전한 필름을 하루속히 선보였으면 좋겠다.)

대한해협과는 다른 현해탄은 한국과 규수 지역의 해안으로 과거에는 자주 쓰인 단어 였으나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만에 현해탄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왠지 반가우면서도 이상하다.

한편 요즘같은 시대에 일본 여성의 순종적인 장면은 어색하다. 무턱대고 대드는 조선 병사의 설정은 가상하다.

학대받고 학대하는 한국인과 일본인간의 계급차이는 병영의 계급차이만큼 심각했으나 그 보다 더 심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영화 속 일본인의 한국인 구타는 그저 평범해 보인다. 

우리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군대내 기합과 주먹질과 얼차려가 흔했다. 영화를 보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다짐은 들지 않지만 전쟁만큼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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