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바람이 따뜻한 봄 햇살에 물러날 때면 늘 벚꽃들이 먼저 포근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매년 벚꽃이 풍성해지기 시작하면 이번 주말에는 꼭 아이들 데리고 벚꽃구경을 가겠노라 다짐해보지만,
야속한 봄비와 매서운 꽃샘추위는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고 매번 그렇게 벚나무를 앙상하게 만든다.
해마다 명절이되면 늘 그렇게 씩씩한 목소리로 '이번에는 꼭 얼굴 한 번 보자'며 안부전화를 걸어오던 후배가 있었다.
학창시절 다혈질에 한없이 예민하던, 세상을 다 산 듯 끝없이 방황하던 내 곁에 늘 붙어다니며 그렇게 넉넉한 웃음으로 위로가 되어주던 후배.
덩치만큼이나 목소리에는 항상 힘이 넘치고 늘 씩씩해보였지만, 속으로는 정이 많고 여려 한 번 눈물을 쏟으면 두 눈이 퉁퉁 붓도록 멈추지 못하던 녀석.
그렇게 정 많던 그 녀석이 예의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항암치료 잘 받았으니 일반병실에 가면 꼭 ‘얼굴 한 번 보자’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급한 마음에 들어가지 못 할 것을 알면서도 무균실로 쫓아갔는데,
그 목소리를 들으니 한없이 무거웠던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 졌다. 못난 선배가 힘들어할까봐 위로해주려 마지막 힘을 쏟아냈을까.
하지만 야속한 병마는 끝내 ‘얼굴 한 번’ 볼 기회를 주지 않고 녀석을 데려갔다.
걸어서도 만날 거리에 살면서도 무얼 하느라 얼굴 한 번 보여주지 못했나하는 죄책감에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할 그 곳에서야 마지막으로 녀석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 녀석은 끝내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버렸다.
풍성했던 벚꽃나무를 앙상하게 만들던 매서운 바람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오늘 하늘은 더 없이 맑고 한 없이 푸르렀다.
막상 떠나보내려 하니 시간을 내기가 이렇게나 쉬운데, 생전에는 왜 그렇게 만날 생각을 못했을까.
이렇게나 맑고 좋은 날, 이 길이 녀석을 보내러가는 길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철없이 방황하던 20대에 ‘마흔까지만 살다 가련다’는 선배를 보고 속상해 하던 후배였는데, 그 녀석이 세상을 등진지 딱 두 달 후가 만으로 마흔이 되는 생일이다. 그렇게라도 선배한테 정신차리고 살라 말하려 했을까.
피기도 전에 져버린 녀석을 경치 좋은 곳으로 보내고 오니,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었던 병원 앞, 풍성했던 벚나무도 앙상하게 변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