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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성춘향(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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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성춘향(196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2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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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에 지리산 자락을 타다가 남원에 들러 광한루를 구경하고 오작교 건너가 그 아래 잉어 떼에게 먹이를 줄 때 문득 춘향이를 생각했었다.

그네가 있나 사방을 둘러보니 보이지 않아 추어탕을 먹고 서둘러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찾아 봤어야 했다.

춘향이처럼 줄을 잡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그것 위에 앉아 하늘을 날지 못한 것이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을 보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 알다시피 영화는 알려진 춘향이의 전래 이야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내용이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 아니라 되레 흥미를 끈다.

그 시절 그 곳의 풍광이나 감독의 연출, 출연진의 연기가 시대극의 분위기를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사투리를 재연한 코믹한 대사가 보는 내내 배꼽을 잡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고을 사또의 자제 이몽룡 (김진규)은 아직 총각이라 딸 가진 아줌마들이 사위를 삼고 싶어 하는 일등 신랑감이다. 잘 차려 입고 백마를 타고 산수를 구경할 때 이들은 앞 다투어 그 용모를 칭찬하는데 어색함이 없다.

몽룡이의 하인 방자( 허장강)는 이런 도련님을 모시는 것이 여간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기분이 좋아 광한루에 올라가 한 잔 먹고 노는 자리에서 상하가 어디 있느냐, 오늘 같은 날은 트고 놀자고 주인이 주는 술을 먹을 때면 상놈으로 태어나 양반 자제를 모시는 것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다.

누는 높은지라 아래를 내려다보기에 좋은데 무언가 붉은 것과 흰 것과 분홍 것과 파란 것과 노란 것이 어울러 진 오색 색깔이 몽룡의 시야에 아른 거린다.

방자는 저건 사람이 아니냐고 짐짓 모른 체 하는데 몽룡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아름답기가 선녀 같은 규수의 이름을 알고 싶어 목을 길게 뺀다.

오는 길에 오작교에서 스쳐 지나간 그 소녀의 이름이 춘향( 최은희)이라는 것을 알자 몽룡은 냉큼 뛰어가 저애를 불러 오라고 호령이다.

순순히 불려왔으면 춘향이 아니다. 비록 어머니 월매(도금봉)가 기생출신이지만 모친 따라 그 짓을 하기 보다는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가야금을 타는 것을 즐기는 춘향이에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공부하는 몸이 남의 처녀 불러다가 무엇을 할 지 모를 리 없지만 방자는 하인 주제에 주인에게 한 소리 하고는 주뼛주뼛 마지못해 매달린 그네 옆의 커다란 소나무가로 간다.

기생 딸이면 기생이지 그런 기생을 부르는 것이 무슨 잘 못 이냐는 몽룡의 거듭된 재촉을 더는 거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춘향의 옆에 있던 향단(한은진)이가 꾸짖듯이 방자에게 한 마디 하지만 그냥 물러날 방자가 아닌지라 왠 만 한 관속 나부랭이는 거들 떠 보지도 않던 춘향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어 ‘귀찮다고 전하라’고 딱 부러지게 한마디 이른다.

방자는 아버지가 참판을 지낸 반쪽 양반이라고 춘향이가 도도하게 구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는 그대로 몽룡이에게 전한다.

화를 내기 보다는 부끄럽게 여긴 몽룡은 그 자신이 직접 춘향이에로 가고 소나무를 사이에 두고 둘은 순간 강한 스파크를 일으킨다.

그 날로 상사병에 걸린 몽룡은 앓아눕기보다는 춘향의 집을 찾아 월매에게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월매는 정식 혼례를 올리라고 맞서는데 양반 체면을 생각해 필적 한 장 남기는 것으로 타협한 후 그날 로 둘은 한 이불 속에서 생활한다.

그 전에 월매는 청룡이 향이를 끼고 날아오는 꿈을 꿨고 눈 먼 점쟁이가 길몽이라고 꿈 풀이를 해 준 것을 기억하고는 신방을 보면서 팔자가 활짝 핀 기분을 놀러온 아우님과 함께 나누기에 바쁘다.

여기까지가 춘향과 몽룡이 만나고 사랑하는 장면이다. 이제 이별의 긴 고통과 재회의 짜릿한 순간이 남아 있다.

승진한 시아버지를 따라 몽룡과 함께 서울로 갈 기대에 부풀어 있던 춘향이는 기생 딸년과 동행을 부끄러워하는 시댁의 반대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고 서로 떨어져 지내는데 이쯤해서 ‘춘향가’ 한 대목을 길게 빼지 않더라도 춘향이가 겪어야 하는 온갖 풍파를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으랴.

은장도로 아끼던 가야금 줄을 가차없이 끊는 것으로 춘향이는 수절을 약속하고 몽룡은 받아든 옥가락지 대신 거울을 주면서 화답한다.

한 시도 비울 수 없는 것이 국가의 법칙이라 사또가 떠난 자리는 팔자수염을 태극기 대신 휘 날이며 들어온 새 사또가 차지하고 평화롭던 남원고을은 주색잡기로 일약 유명세를 탄다.

신임 변학도(이예춘) 사또는 옥사에 죄인이 두 명 밖에 없는 것은 전임자의 선정 때문이 아니라 정사가 썩어 죄인을 두고도 못 잡아 들였기 때문이라고 형방에게 호통을 치면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 시킨다.

이것으로 신임 사또의 정사는 시작이고 끝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기생 질이 질펀하다. 점고를 이유로 관청 뜰에 도열한 기생들을 일일이 검사하던 사또의 눈이 차지 않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호방이 폐기의 딸 춘향이의 이름을 지갑 속에 든 돈처럼 조심스럽게 꺼내 든다.

물렁쇠와 덜렁쇠는 춘향이를 잡으러 가기 전에 사정을 봐주면 서로 개새끼라고 다짐을 굳게 하지만 월매의 노련한 솜씨에 넘어가고 잘 차린 술상까지 받자 개새끼 약속은 금세 잊어버리고 빈손으로 들어가 춘향이가 많이 아프다는 핑계를 댄다.

노발대발한 사또는 그들을 옥에 가두고 다른 병졸을 시켜 춘향이를 끌고 온다.

두세 번 불러서야 겨우 온 춘향이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과연 듣던 대로 미인이라 흡족한 사또는 기생 년이 별 수 있나, 가소롭게 여기면서도 한 수 접어준다는 듯이 음흉하게 웃으면서 어서 소세하고 수청을 들라고 점잖게 타이르는데 ‘소녀는 창녀가 아니다’ 라는 당찬 대답을 듣고 기가 막힌다.

놀란 사또는 잠시 풀이 죽지만 곧 표정을 바꾸어 개새끼는 개고 기생새끼는 기생인데 무슨 잔말이 많으냐고 호통을 치고 기생은 사람도 아니고 절개도 없느냐고 지지 않는 춘향이 맞선다.

늦은 밤 사또의 채홍사가 은근히 향이를 꼬드긴다.

원래 서울양반은 첩 없이는 행세를 못하고 늙은 어머니의 처지를 생각해라, 결심만 하면 관청은 네 집 찬장이 되며 곳간은 네 집 곳간이며 일억 주장은 다 네 주장이 된다고 .

문 밖에서 일이 다 된 줄 알고 흐뭇해하던 사또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방으로 뛰어든다.

절개 운운하는 춘향에게 구상유치다, 애들의 첩이라니 가당키나 하니, 젊은 아이들 사랑도 좋지만 나 같은 양반의 사랑도 과히 나쁘지 않다, 우거지 국에 푹 끊인 그 궁실 한 맛을 보면 무궁무진한 재미에 너 깜짝 반하고 말거다, 라고 떠들면서 으 허허허~, 기분 좋게 웃으며 손목을 은근히 잡아끄는데 사이코가 따로 없다.

춘향이는 말한다. 못합니다. 목소리는 더 강하고 독살스럽다. 요망한 년, 모반대역은 능치처참이다 고함치는 사또에게 춘향이는 유부녀 강간죄는 어찌하느냐고 노려보니 사또의 기분은 엉망진창이다.

감옥에 갇힌 춘향이가 서럽게 시 한수 읇 조린다.

‘가시고 안 오시는 이/ 꿈에라도 뵈 오련만/ 잠 못 이루니 꿈엔들 이루리까/ 여름날 짧은 밤 못내 설워 한다.’

팔자가 피기는커녕 딸이 옥에 갇히자 월매는 죽을 맛이다. 서방인지, 몽룡이 놈인지 신세 한탄에 하늘이 꺼질 지경이다. 그 시각 서울 간 몽룡이는 향이를 못 이겨 하고 어미는 그를 보고 글공부를 재촉하는데 일순 결심이 선 몽룡이는 하루 이틀 벼락공부에 과거에 합격한다.

경복궁 뜰에서 임금의 축하를 받고 암행어사로 길 떠나는 몽룡이가 지리산 깊은 골에서 나졸들을 앞에 두고 내리는 명이 경치게 좋은 경치와 어울려 가히 볼 만하다.

전라 지역 이름을 쉬지 않고 연달아 호명할 때 과연 공부한 보람이 있는지 막히지 않고 줄줄 꿰는데 보기에 좋고 듣기에도 그만이다.

꿈엔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모르고 사또는 여전히 향이에게 ‘너 수척해 졌구나, 내가 밉지? (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그러니 마음 돌려라. 오늘부터 유리알 같은 장판에 비단 이불 덮고 편안히 자자. 어서 몸단장 하고 수청 들어라.’

협박도 하고 간청도 하고 미끼도 던지지만 님 향한 일편단심 춘향이의 마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굽힐 기미가 없다.

요망한 년, 오십 평생에 이런 당돌한 고집 처음 본다. 반드시 꺾겠다고, 죽여서라도 욕심을 채우겠다고 사또는 목소릴 높여 처형을 명령한다.

그 날은 바로 사또의 생일날이다. 인근의 대감들이 선물 보따리를 하인에게 지우고 축하하기위해 모여든다. 죽이기 전 사또는 향이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다. 붓과 종이를 주자 향이는 바뀐 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일심(一心)이라고 쓴다.

망나니의 칼춤이 시작된다. 그 전에 허름한 차림의 몽룡이가 술판에 끼어든다. 한 자 적어 준 글씨를 돌려보는 양반들의 얼굴에 핏빛이 가신다. 바쁜 일이 있다고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망나니의 칼이 하늘높이 올랐다가 멈춘다. 암행어사 출두요. 이후로 춘향과 몽룡이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 있다. 옥가락지를 받아들고 서방님을 직감한 향이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자 영화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시대극의 서막을 연 신상옥 감독은 흥행에도 성공하고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한국 영화의 전성기인 60년대가 화려한 막을 열었다.

춘향전 영화는 그 이전은 물론 같은 해에도( 홍성기 감독, 김지미 주연)제작됐고 이후에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신 감독의 영화가 가장 앞선 자리를 차지한다. 60년대 화려한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국가: 한국

감독: 신상옥

출연: 최은희, 김진규, 한은진, 허장강, 이예춘

평점:

 

: 춘향이의 성이 성가이므로 성춘향이다. 하지만 성스럽다는 의미의 성(聖)자를 써도 무방하다. 누가 춘향이처럼 절개를 지킬 수 있는가. 

그 시절 기생의 딸이 비록 반쪽 양반의 피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또의 명을 거역 할 수 있겠는가.

죽음 앞에서도 되는대로 살 수는 없다며 약속을 지킨 춘향이는 열녀문 열 개라고 부족하다. 몽룡이도 남아 일구이언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춘향이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해도 대단한 것임은 분명하다.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지만 당시 조선시대의 피폐한 농촌 현실과 양반의 학정을 거침없이 비판했다는 점에서 사회성 짙은 연애담 이라고 할 만하다.

사랑도 지키고 탐관오리까지 멋지게 처벌했으니 이처럼 통쾌한 일도 없겠다. 

한편 뇌물은 일반에 까지 다반사였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잡으러 온 물렁쇠와 덜렁쇠를 뇌물로 제압하고 옥중 면회를 위해 간수에게 집어 주는 장면은 웃음에 앞서 뜨끔한 무엇가가 가슴에 얹힌다.

알고 지내는 처지이면서 옥에 갇힌 춘향이가 꿈 풀이를 요구할 때 점쟁이가 물질이나 돈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무물불성'을 이야기 하며 복채를 요구하고 가진 것이 이것뿐이라며 주는 엽전을 미안하다며 받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온다.

춘향이의 편지를 중간에서 변사또가 가로 채는 것을 알고 방자가 직접 서울로 가는 길에 내려오는 몽룡이와 만나는 장면에서 몽룡이가 너에게만은 거짓말을 못하겠다며 옷섶에 숨겨둔 마패를 만져 보게 하는 장면, 새참을 먹는 들녘의 농부들에 끼어들어 사또의 패악질과 자신을 욕하는 민심을 듣고 난감해 하는 몽룡의 표정에서, 칠성님께 치성을 드리는 월매 앞에 거지 중에 상거지로 신분을 숨기고 나타난 몽룡의 술타령에 이 도적놈이라고 절규하는 월매의 한탄에서 신감독의 웃음코드의 재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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