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때 중요한 것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며칠 하지 않고도 이인은 그것을 알아챘다. 오버 페이스를 하면 더 뛰기가 힘들다.
시작 다음 날은 첫날에 비해 컨디션이 더 좋았다. 다리에 알이 배겨 저녁에 묵직했던 것이 잘 자는 잠으로 연결됐다. 깨지 않고 오랜만에 자고 일어나니 가뿐했다.
이런 기분 알 것이다. 당연히 이어가야 한다.
흐린 날씨처럼 찌뿌둥하다가 구름이 몰려가서 해가 반짝 비칠 때와 같이 온 통 몸에서 신선한 기운이 흘렀다.
이 것 역시 근 40여년에 만에 맛보는 짜릿한 기분이다. 여러 꿈을 연달아 꿀 때까지 이불속에 있어도 풀어지지 않는 몸의 무거움이 단 몇 시간의 꿀잠으로 해결됐다.
저녁을 천천히 씹어서 먹었다. 덕분에 양도 조금 줄어들었다. 습관삼아 설거지를 했다. 음식 준비를 하느라 고생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다. 스포츠맨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이런 마음가짐을 일상생활에서도 가져야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이인은 기분이 좋았다.
그 좋은 기분을 끊지 않고 연달아 갖고 싶어서 운동화 끈을 조였다. 밖은 모자를 쓰지 않아도 귀가 시리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광대뼈를 비비지 않아도 됐다.
바야흐로 운동하기 좋은 시절이 왔다. 좋은 때는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가기 전에 몰아쳐야 한다. 하루 도 빼먹지 않고 달리리라. 달리면서 내일 달린 일을 생각했다.
먹으면서 먹을 것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것은 먹는 것이 행복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으므로 달리는 것 역시 그렇다는 말과 같다.
개울을 건넜다. 졸졸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관악산의 얼음이 녹아서 수량이 많아졌다고 단정했다. 그렇지 않고는 도림천의 물이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늘어날 이유가 없다.
속도를 빨리 했다. 걷는 자들이 보이면 더 그랬고 자전가 휙 지나가면 좀 따라가 볼 까 싶어서 더 그렇게 했다.
2킬로미터 지점의 굴다리 앞에 오니 그만 다리에 맥이 풀렸다. 오버 페이스. 이인은 속도를 줄였다. 걷는 자들과 보조가 비슷했다.
냄새나는 다리밑을 겨우 벗어날때 늙은 남자들을 증오했다. 왜 그들은 하나같이 염치가 없을까. 조금만 더 가면 깔끔한 화장실이 있는데 왜 굳이 천변에 내갈기는 것일까. 나도 곧 그들처럼 바지춤을 내리면서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볼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젓지 못했다.
원형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안양천과 합수하는 지점이다. 얼었던 샛강이 밤물결에 일렁였다. 청둥오리들은 어디로 사라졌다. 백로들도 왜가리도 보이지 않는다.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배가 위로 당겨지는 기분이다. 뱃가죽이 줄어들어 나왔던 군살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벌써. 그럴 리가 없다.
이틀 달리기로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배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들었다. 배가 위로 당겨지고 엉덩이가 자꾸 앞으로 밀려왔다. 아래로 처지거나 뒤로 밀려 나지 않았다.
팔을 크게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무릎을 조금 더 높이 들고 보폭을 넓혔다. 어느 새 달리는 힘에 탄력이 붙었다. 오버 페이스는 잊어라. 레온사인에 빛나는 강물을 따라 오금교 앞에까지 왔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멀리 왔다. 쉬지 않고 온 만큼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시작해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그래봤지 단 이틀이지만.
걷기보다 느려도 두 발 중 한 발은 반드시 다른 발이 빵에 닿기전에 떼놔야 한다. 동시에 멈출 수는 없다. 장단지에 작은 통증이 온다. 미세하게 느낄 수 있다.
새처럼 가는 다리가 차범근처럼 굵어지려면 이 정도는 참아내야 한다. 허벅지가 점점 두꺼워진다. 여자 허리통만큼 커진다. 그러자 지쳤던 몸에 다시 봄바람이 인다.
천천히 그러나 절대 멈추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다시 나아간다. 이제는 마주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등을 보고 달리다 얼굴을 보니 반갑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눈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다 부질 없는 짓이다. 관상을 보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그것을 보는 것은 달리는데 방해자 일 뿐이다.
그들은 나를 본다. 나의 복장을 보고 나의 뛰는 모습을 보고 손에 낀 장갑을 빠른 순간에 본다. 의도적이다. 보고서도 보지 않은 것처럼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내 손에는 평창 올림픽 기념 장갑이 끼어있다. 손은 아직 시리다. 앞뒤로 손을 직각으로 휘두를 때 여전히 찬 기운이 스며든다. 평창 올림픽 기념장갑은 기념으로 지인이 사다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