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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글로벌 제약사의 지독한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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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3.09  06: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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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성장하고 배려하는 착한 기업 vs 직원들을 빼먹으려는 성과주의 기업’

마치 선과 악을 구분하는 듯한 이 이분법적 비교는 최근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내놓은 ‘글로벌 제약 기업문화 인식조사 보고서’의 설문조사 결과 중 일부다.

글로벌 제약기업 종사자와 제약업종 외 일반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기업문화 및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인식을 비교ㆍ평가하고자 설문조사를 진행, 그 결과라며 내놓은 보고서로 그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글로벌 제약사의 우수한 기업문화를 일반기업들의 저열한 조직문화와 비교해 표현하는 슬라이드들로 점철되어 있다.

기업 전반의 문화에서 나아가 여직원에 대한 인식과 일가정 양립에 대한 조사결과에서는 두 그룹에 대한 보고서의 평가가 더욱 극명하게 갈린다.

보고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여성 인력 양성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인사 및 승진 평가 과정이 투명하며 △성별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일반 기업들은 여직원에 대해 ▲제약이 많은 인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승진 및 인사 평가에서 차별이 있다고 표현한다.

또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에서도 글로벌 제약사는 ‘보편 타당한 권리’ 즉 ‘직급과 성별에 관계없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일반 기업은 ‘직급/성별에 대한 인식차가 존재하고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마치 일반기업들이 아직도 노예해방 전에나 있을 법한 전근대적인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달리, 글로벌 제약사는 천상의 기업문화를 갖추고 있다는 듯한 이분법적 표현들로 나르시시즘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콘트라스트가 극명한 수사들을 읽고 있자면 글로벌 제약사가 꿈의 직장인 것인지, 꿈속에나 있을 법한 직장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이 보고서를 ‘나르시시즘’으로 정의하는 이유는 필자가 ‘일반 기업 종사자’라는 자괴감이나 ‘글로벌 제약사의 종사자’가 아니라는 데서 비롯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은 아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글로벌 제약사’ 종사자들의 하소연과는 보고서의 평가에 적지 않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국적사의 직원들이 대체로 자신들의 조직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수치적으로도 보고서는 임직원 중 여성의 비율은 물론, 여성임원비율에 있어 글로벌 제약사들이 일반기업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다국적 제약사 직원들은 자신들의 회사를 ‘무늬만 다국적 제약사’라며 ‘로컬화 된’ 기업문화를 꼬집고 있다. 해마다 ‘여성 친화적 기업’, ‘엄마가 일하기 좋은 직장’ 등 이곳저곳에서 받은 인증사례를 자랑하지만,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심지어 KRPIA가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성친화적 기업문화’를 강조한 이 보고서를 야심차게 배포한 날, 다른 장소에서는 한 다국적 제약사의 직장내 성추행 관련 투서 형식의 사내 메일이 보도되며 실제 현장에서 여성 직원을 대하는 그들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보도된 사내메일은 여성 영업사원이 사외에서 당한 억울한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물론, 사내에서 보다 더 심하게 이뤄졌던 언어폭력과 성추행 사례들도 상세하게 담고 있다.

나아가 ‘여성 인력 양성에 대한 관심이 많고, 성별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자평과는 달리 ‘여자 팀원이 들어오면 불편하다’거나 ‘여자 직원을 불편해 해 되도록 안 뽑으려 한다’는 등 그들이 ‘일반기업’의 조직문화라고 힐난했던 사례들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물론 특정 기업의 사례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Me Too 운동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다국적 제약사들의 성추문 사례가 연이어 폭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다른 분야의 국내 기업들을 ‘차별이 심하다’고 평가절하하면서 스스로를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고 내세우는 것을 두고 자만이라 표현하는 것이 과하지는 않을 터다.

더군다나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설문조사는 애초에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됐다. 정성평가의 설문 대상자를 ‘글로벌 제약사의 인사 담당자’와 ‘일반기업 종사자’로 선정,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구조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 대해서는 인사담당자가 자신 혹은 동일 업계의 인사시스템을 평가하도록 해 ‘착한 기업’이라는 결과를 도출하고, 일반 기업에 대해서는 자사 인사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일반인, 특히 여성관련 문화에 자신있게 쓴소리를 던질 수 있는 ‘만 25~35세 미혼/기혼 여성’으로 설정해 ‘직원들을 빼먹으려는 기업’이라는 결과를 얻어낸 것.

그토록 과학적 근거와 ‘객관적’ 임상 설계에 의미를 부여하던 글로벌 제약사들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태도다.

나르시시즘의 어원이 된 그리스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허상을 쫓다 비참하게 죽어갔다. 지나친 자기애를 뜻하며, 자만은 곧 파멸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마치 선과 악을 구분하듯 보이지 않는 선을 그으며 차별화를 시도한 보고서가 협회가 얻어내고자 했던 ‘글로벌 제약사의 우수한 기업문화’를 자랑하는 데에는 더없이 자극적이며 효과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내 메일 사례에서 나타나듯 현장에서는 객관적이지 못한 보고서에 기대 자만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리스신화는 나르키소스가 신들의 벌을 받은 이유를 에코를 비롯해 자신을 사모하는 요정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KRPIA가 자신들을 ‘착한’ 기업으로 내세우기 위해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른 기업들을 ‘직원들을 빼먹으려는 기업’으로 평가절하하며 모욕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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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송재훈 기자  |  sjh1182@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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