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의약계의 시한폭탄, 대체·변경조제 소송(上)

특히 법원이 ‘처방전마다’가 아닌 ‘1일 단위의 포괄적 동의’를 인정해줬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대체·변경조제를 둘러싼 소송과 관련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의약단체 등의 입장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법원 “대체·변경조제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현재 특이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늘상 있는 요양기관과의 부당이득금환수처분과 관련된 다툼이다.
그러나 속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대체·변경조제와 관련 향후 약사법 개정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메가톤급 시한폭탄이다.
공단은 지난해 5월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E약국 P약사가 부당하게 약제비를 지급 받았다며 총 1억2천736만원을 환수 조치했다.
P약사가 변경·대체조제하는 과정에서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의 사전동의를 얻지 않았고, 환자에게 변경사실조차 고지하지 않아 약사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현지조사 결과, P약사는 지난 2000년 11월부터 2001년 8월말까지 변경조제로 1억1천315만원을, 대체조제로 1천425만원의 약제비를 공단으로부터 각각 지급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P약사는 당초 처방전에 기재된 한국얀센의 타이레놀ER(86원/650㎎)을 홍익 아세트아미노펜정(9원/300㎎)으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더모베이트연고18(89원)을 삼아제약의 리도맥스크럼18(186원)으로, 일동제약의 케톨에프정(83원)을 일동제약의 케롤정(30원/200㎎)으로 각각 변경조제했다.
또 삼일제약의 부루펜정(30원/200㎎)을 일동 캐롤정(30원/200㎎)으로, 삼일 셉트린정(42원)을 일동 시노트린정(30원)으로, 한국얀센의 모트리음정(84원)을 코오롱제약의 하미돈정(33원)으로 각각 대체조제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제5부)은 지난해 12월말 1심 최종 판결에서 P약사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대체·변경조제시 그 내용을 처방전에 기재하고, 이를 환자에게 확인시킬 의무는 환자에 대해 설명의무일 뿐 이를 위반했다고 약사의 대체·변경조제 자체가 위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체·변경조제, 약효능 별차이 없다”↔의약단체·공단 “NO”
법원이 P약사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 근거는 P내과의원 P의사(P약사의 형)의 증언 때문.
재판장이 대체조제와 변경조제의 차이점에 대해 묻자, P의사는 “대체조제나 변경조제는 약 효능에 있어 별 차이가 없고, 다만 약품분류상 같은 분류군에 속하면 대체조제이고 다른 분류군에 속하면 변경조제에 속한다”고 답변했다.
공단은 지난 3월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대체·변경조제의 차이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오는 7월13일 항소심 1차 변론을 위해서다.
먼저 변경조제의 경우 성분·함량·제형이 동일하지 않아, 그 효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한국얀센 타이레놀ER서방정과 홍익 아세트아미노펜정은 성분은 동일하지만 그 함량이나 제형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
실제 서방정과 정제형은 녹는 속도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전자는 장에서, 후자는 위에서 분해되는 등 효능에 있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따라서 만일 환자에게 위염이나 위궤양 등의 질환이 있는 경우 정제형인 아세트아미노펜정을 투약했을 때 약화사고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공단측의 주장이다.
이처럼 대체·변경조제의 차이가 큰 만큼 신중한 투약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당연히 각 처방전마다 의사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P약사의 경우 하루에 한번 전화로 동의를 구한 뒤 이를 하루종일 유효하다고 진술했고, 이를 법원이 인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약 박규동 의약분업 위원장은 “변경조제를 위해서는 의사가 처방전을 아예 바꿔야 가능한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협회 김성오 의무이사 역시 “재판장이 대체·변경조제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법원의 판단은 최근 서울시약의 대체·변경조제 운동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법원이 채택한 의사의 증언에 따라 현재 변경조제 유도의약품으로 선정한 1개 품목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서울시약은 지난 1일 대체조제활성화 운동에 본격 돌입하면서 다빈도로 처방되는데도 대체조제는 불가능하되 변경조제를 해야 하는 성분으로 아모디핀을 선정했다.
염기 및 함량과 제품명을 살펴보면 베실레이트6.944㎎ 염기의 노바스크정(한국화이자/525원), 말레이트6.42㎎ 염기의 노바로핀캡슐(중외제약/395원)과 암로핀캡슐(유한양행/336원), 말레이트6.40㎎ 염기인 애니디핀정(종근당/390원)과 스카드정(SK제약/420원), 에이엠정(코오롱/336원), 캄실레이트7.84㎎ 염기의 아모디핀정(한미/396원), 아디페이트6.79㎎ 염기의 암로스타정(CJ/396원)과 암로디아정(한일/316원) 등이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이같은 변경조제 품목도 염기나 함량 등을 굳이 따지지 않고도 자유롭게 대체조제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특히 서울시약의 경우 생동성품목 외에도 비교붕해, 비교용출시험을 통과한 약효동등성 품목까지 대체조제를 확대해나간다는 전략이어서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경우 대체조제 활성화운동을 더욱 촉발시킬 것으로 보이며, 의·약사간 또다시 전면전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괄적 동의 인정…1일 1회만 통보하면 된다?
서울시약사회가 성분명처방 ‘올인’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고 대체조제 활성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생동성 품목이 2천555개(식약청 자료 기준)로 정부가 당초 약속한 2천 품목이 넘어섰다.
그런데도 약사들은 대체조제를 적극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의사의 눈치보기와 사전동의나 사후통보 때문.
따라서 이번 소송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법원이 약사의 변경·대체조제시 ‘포괄적 사전동의’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P약사는 P내과의원으로부터 처방전이 나올 때마다가 아닌 ‘1일 단위’로 사전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P의사의 증언에 따라 이를 인정했다.
법원은 “P약사가 각 변경·대체조제시마다 의사의 사전동의를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P약사와 P의사의 관계(형제) 등에 비춰보면 포괄적으로 사전에 동의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어 “P내과의원이 처방전에 기재한 약품만으로 조제토록 하는 등의 특별한 소견을 기재하지 않은 이상 P약사는 동의를 받은 뒤 대체·변경조제를 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고도 밝혔다.
이에 대해 공단은 “약사의 변경․대체조제시 의사의 사전 동의는 반드시 각 처방전마다 이뤄져야 한다”면서 “재판부가 의사의 포괄적 동의만으로 약사의 변경·대체조제가 가능한 것처럼 약사법을 잘못 해석했다”고 반박했다.
현재 약사들이 대체조제를 불편해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사전동의나 사후통보 때문. 대체적으로 사전동의보다는 사후통보를 하는 경향이 많은 것도 의사와의 종속관계를 의식한 탓이다.
결국 법원이 대체·변경조제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고, ‘포괄적 동의’를 인정한 것은 사후통보로도 사전동의를 대신할 수 있다거나 한발 더 나아가 사후통보폐지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법원의 이같은 해석이 대법원까지 이어질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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