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설 변경허가를 받지 않고 입원실을 늘리거나, 휴게실을 입원실로 변경한 병원에 대해 수억원대의 환수처분이 내려진 것에 대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와 유사한 환수처분을 피하기 위해선 의료기관 스스로 관련 규정을 숙지해야한다는 조언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는 최근 A의료법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의료법인은 지난 2004년 3월경 해당 지역 시장으로부터 A병원을 개설하면서 입원실 23실, 79병상 규모로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았다. 그러던 중 A병원은 2006년 6월경 A병원의 입원실 및 병상을 변경했는데, 2층은 입원실이 기존 13실에서 14실로, 병상수는 54병상에서 51병상이 됐고, 3층은 입월실 10실에서 16실로, 병상수는 25병상에서 48병상이 됐다.
건보공단은 2014년 11월경 A병원에 대해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A병원의 3층의 각 입원실 증설에 대한 의료법상 변경허가를 받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자 A법인은 2014년 12월 해당지역 시장에게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 변형허가를 신청했다.
건보공단은 2016년 3월경, A법인에게 ‘A병원이 허가병상 외의 입원자에 대한 보험급여를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2013년 6월 17일부터 2014년 6월 24일까지 지급된 요양급여비용 5억 4584만원을 환수한다고 통지했다.
이에 A법인은 “허가받지 않은 병상의 입원 환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위법할지라도 부당이득의 환수 대상은 허가받은 79병상을 초과한 입원환자에 한정해야 한다”면서 “허가받은 병상을 초과하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증설된 입원실의 입원환자에 대한 환수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또 “건보공단에 청구한 요양급여비용 중 허가받지 않은 부분은 입원료, 입원환자 식대에 한정돼야 함에도 입원과 관계없는 진찰, 투약, 주사 등에 대해서도 환수 결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A병원에서 이뤄진 의료행위가 모두 적법했음에도 입원실 증설에 대한 변경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A법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병원이 입원실을 증설하고도 변경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 해당 입원실은 의료법상 적법하게 허가된 입원실이라 할 수 없고, 해당 입원실에 입원한 환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은 당시 해당 병원에 입원한 환자 수가 허가받은 병상의 수를 초과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관계 법령에 의해 지급받을 수 없는 요양급여비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부당이득 환수 대상이 입원료와 식대에 한정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입원환자의 경우 입원과 그 전후에 이뤄지는 진찰, 투약, 주사 등의 진료행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진료의 실제에도 부합하다”고 전했다.
A법인이 주장한 바와 같이 해석할 경우 의료기관이 허가를 받지 않고 입원실을 증설해 운영하면서도 적발될 경우 입원비, 식대만 환수당할 뿐 각종 진료행위에 관한 급여비용은 직접 수행했다는 사유를 내세워 정산조치를 면할 수 있는데 이는 의료기관 시설기준을 엄격히 정하고 허가를 받도록 한 의료법을 잠탈한 결과를 용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명백히 불합리하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재판부는 “속임수나 그 밖에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액환수가 타당하며, B병원의 경우 입원실을 증설하고도 8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변경허가를 받지 않고 요양급여를 청구했기에 그 위법 정도가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A의료법인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행정법원은 B의료재단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취소소송에서 B재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B재단은 2012년 2월경부터 입원실 31실, 164병상 규모의 B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보건복지부 현지조사 과정에서 2013년 4월경부터 4층 휴게실에 환자들을 입원시킬 사실이 적발됐다.
B재단은 2015년 2월 휴게실을 입원실로 변경하는 허가를 받았지만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을 피할 수 없었다. 건보공단은 B재단에 대해 1억 9942만 3700원을 환수한다는 처분을 내렸고 B재단은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B재단은 “입원실에 입원한 환자에 적절한 의료행위를 제공했고, 문제의 휴게실은 당초 입원실로 사용하려던 공간이어서 실질적으로 의료법령이 정하는 입원실 기준을 충족했다”며 “당초 개설허가의 병상수를 초과하는 환자를 입원시킨 사실이 없고, 건보공단의 처분은 입원과 무관한 식대까지 포함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법인의 사례와 같이 B재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법령은 국민에게 수준높은 의료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에 대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시설기준 및 규격을 갖춰 개설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고, 허가받은 사항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경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의료기관 개설자 등의 준수사항으로 입원실이 아닌 장소에 환자를 입원시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병원이 휴게실에 대해 입원실로 변경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 휴게실은 입원실로의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허가된 입원실이라 할 수 없으므로, 해당 입원실에 입원한 환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은 당시 해당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수가 허가받은 병상의 수를 초과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지급받을 수 없는 비용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입원환자의 경우, 입원과 그 전후에 이뤄지는 진찰, 투약 등의 진료행위와 식사제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진료의 실제에도 부합한다는 게 재판부의 지적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에 의해 환수대상이 된 식대는 건강보험 행위 급여·비급여 목록표 및 급여상대가치 점수에서 정하는 입원환자 식대의 기본식사 중 일반식에 관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입원환자가 아님에도 입원환자 식대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았다면 그 식대 비용은 부당한 방법으로 비용을 받은 것이어서 당연히 환수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김준래 변호사(선임전문연구위원)는 의료기관들도 관련 규정을 숙지해 불이익 받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은, 관련 법령에 따라 지급받을 수 없는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급받았다면, 이는 건보법 제57조 제1항의 부당이득징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며 “이 사건의 경우, 의료법령에 의하면 입원실의 변경은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중요사항의 변경에 해당하여, 시도지사의 변경허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관련 법령인 ‘의료법령’에 따라 지급받을 수 없는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급받아, 부당이득징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대상 판결은 이러한 법리에 기초해 적절히 판시했다”고 전했다.
‘입원비’와 ‘입원식대’만이 아니라 ‘진찰, 투약, 주사, 물리치료 등’의 급여 또한 환수대상이라고 판시했는데, 입원을 하는 경우 급여들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조치들인 점과 편법적으로 입원실을 증설해 관련 비용들을 받아가는 것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김준래 변호사는 “대법원은 법령 등이 정하고 있는 정기적인 검사를 받지 않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 지급받은 사안에 대해 설령 사후에 적합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혹시 요양급여장비가 검사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해 살펴본 사례가 있다”며 “요양급여장비가 법령상의 신고·검사를 마치지 않은 채 의료장비로 사용되는 경우 그 의료행위는 위법하고 해당 비용은 요양급여비용으로서 청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현지조사 이후 뒤늦게 해당 장소를 입원실로 해달라는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 변경 신청을 했지만, 대법원 판결 법리에 비춰 볼 때, 설령 변경허가가 났다 하더라도 기존에 지급된 비용은 부당한 비용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는 한번 시행 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의 성질을 갖는 바, 국가가 다소 엄격히 규율하고 있고, 그 구체화된 규범이 의료법령”이라며 “의료기관들로서는 사전에 관련 규정들을 숙지하여 의도하지 않은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