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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약사회 곽순애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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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약사회 곽순애 부회장
  • 의약뉴스
  • 승인 2005.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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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낙원상가 뒤편. 순대집과 노점상, 악기상이 즐비한 그 곳에 약국이 하나 있다. 은성약국. 한 곳에서 둥지를 튼지 벌써 30년이나 흘렀다.

어느 곳이든 사람 살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잿빛 도심 속에서 여과되지 않은 사람 내음을 맡기란 쉽지 않다. 곽순애(57) 부회장은 그런 공간을 즐긴다. 몇 장의 원고지와 낡은 볼펜 한 자루로.

◇“수필은 삶과 밀접한 문학장르”

곽 부회장은 약사 출신 글쟁이다. 종목은 수필. 지난 1989년 ‘문학과 의식’에 ‘최박사와 백합’ ‘어느 신부의 눈물’ 등의 작품을 게재하면서 본격적으로 펜을 잡았다. 벌써 16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간 작품집도 여러 권 출간했다.

약국을 방문하는 다양한 삶과 부대끼면서 불현듯 쓰고싶다는 욕구가 일었고, 뒤늦게 국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땄다. 기자는 건방지게 문학이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문학? 글쎄…. 다만 가장 근사치의 답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필을 고백의 문학, 개성의 문학이라고 일컫는 것도 같은 의미다.”

그는 일명 떡집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자신의 약국에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밤늦은 시각, 정적을 깨는 무엇에 흠칫 놀라기도 하고, 감동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골목길의 파적’이다.

<사진2>
◇골목길의 파적(破寂)

‘오후가 되면 약국 앞은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한다.…(중략) 노점상의 외침 소리, 번잡한 술집과 음식점의 고성방가, 떡집과 요정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길은 만물상의 집합소인양 어지럽기만 하다.’(골목길의 파적2·1991년 作)

인터뷰를 위해 기자의 발길이 닿은 풍경도 그랬다. 질펀한 시장통 사람들의 소리와 자동차 소음. 곽 부회장은 약국 귀퉁에 앉아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글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들어 그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무(無)에서 유(侑)를 창조해야 하는 창작의 고통, 채워지지 않는 부족감 등이 그를 짖누른다. 특히 명지전문대 문창과 강사로서, 이미 등단한 수필가로서 심적 부담이 크다고 했다.

때론 그런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강단을 떠나고도 싶다. 자유롭게, 얽매이지 않고 원고지를 채워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두 가지 천직…약사와 글쟁이

‘(낙원상가 사람들은)약을 복용하는데 근본적인 치유보다는 임기응변적이고 즉흥적인 처방을 원한다. 더구나 성질이 급한 환자는 충분한 설명을 하다보면 그대로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약사는 나의 천직인가·1997년 作)

그래도 그는 약사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글쓰기는 약사 생활을 위한 보완책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한편으론 좀 더 젊은 날,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싶기도 하다.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이 흘러넘칠 때가 그리운 것이다.

세월은 가고 나만 남는다, 는 시(詩)가 있다. 그는 어떨까. 다른 작가들처럼 세월이 가도 그에게 작품은 남을 것이다.

◇‘청춘 빛’ 머금은 제자들 부러워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청춘이 머금고 있는 열정 탓이다. 당돌하게 도전장을 던지는 제자들이 부럽고 두려운 이유가 그것이다. 당장은 덕성여대총동문회장, 한국여약사회부회장, 약사, 가정주부, 대학강사 등의 직책(?)으로 짬을 낼 수가 없다.

곽 부회장은 언제고 이미 구상해 놓은 장편소설을 집필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작품 제목도 정해놓았다. ‘첫사랑은 없다’. 쉰 일곱의 나이로는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작가는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이문열의 ‘레테의 연가’라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랑은 여러 번 불꽃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쓰고 싶은 이유는 그 뿐이다.”

제자들이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편지를 여러통 보내왔다. 장난기 어린 녀석에서부터 꽤나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은 녀석들도 있었다.

제자들이 있기에 그는 쉬 강단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녀석들의 열정이 두려워서 당분간 펜을 잡지 못한데도 말이다. 천직인 약사란 직업을 버릴 수 없듯이.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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