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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조사 기간 늘리려면 규정부터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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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조사 기간 늘리려면 규정부터 지켜야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7.05.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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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증거 없이 대상기간 늘린 복지부에 제동
 

조사과정에서 지속적인 고의청구가 확인됐다는 구체적인 증거 없이 현지조사 기간을 늘린 복지부의 행동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복지부가 괘씸죄를 적용, 조사 대상기간을 늘리는 행태에 제동을 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평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최근 A의료법인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및 요양급여비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복지부의 업무정지 처분과 건보공단의 환수 처분을 모두 취소했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2년 8월경 A의료법인이 운영하는 A요양병원에 대해 요양급여비용 청구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등을 위한 현지확인을 실시한 후, 복지부에 조사의료기간을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로 해 현지조사를 의뢰했다.

이에 복지부는 2013년 4월 22일 조사대상기간을 2011년 1월부터 2011년 5월까지와 2012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로 정해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현지조사를 실시한지 3일 만에 복지부는 조사대상기간을 2010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총 26개월로 확장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현지조사 결과, A요양병원의 행정원장 B씨, 원무과장 C씨, 법인실 계장인 D씨 등이 병원과 관련된 행정업무를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A의료법인은 이들을 영양사 또는 조리사로 상근하면서 환자식 제공업무를 담당했다고 신고한 사실을 적발해냈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복지부는 A의료법인에게 10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고, 건보공단은 2억 2765만 4630원의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한다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A법인은 "복지부에서 만든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은 수년가 되풀이 돼 이에 따른 현지조사 관행이 형성돼 있는데, 이를 위반한 현지조사는 평등원칙에 위배돼 위법하다"며 반발했다.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에 따르면 ‘조사 과정 중 고의적 혹은 지속적 거짓청구가 확인되는 경우에 조사시점에서 가장 최근 지급된 진료분을 기준으로 최대 3년의 범위 내에서 발생시점까지 소급해 조사한다’고 규정돼 있다.

A법인은 “복지부는 현지조사 당시 조사대상기간을 확장하기 전 요양급여비용을 고의적 혹은 지속적으로 거짓청구 했다는 점에 대한 어떠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는데도 기간을 3년으로 확장했다”면서 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A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재판부는 “복지부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현지조사를 진행했고, A법인 대표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제시해 서명·날인할 것을 요청했으나, 대표자는 이를 거부했다”며 “이에 조사팀원은 확인서에 ‘날인을 거부해 조사자와 화순군 보건소 담당자 참석 하에 연대 서명함’이라고 기재하고 각 서명·날인했다”고 밝혔다.

▲ 의협 현지조사 대응센터.

이어 “현지조사팀은 복지부에 이 사건 현지조사의 조사대상기간 확장과 관련한 보고를 하고 결재를 거쳐 조사대상기간을 확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재판부는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은 복지부 장관이 요양기관 현지조사 권한을 근거 법령에 맞게 효율적으로 행사하는 한편, 남용을 방지하고 전국적으로 통일해 행사하기 위해 만든 내부 기준”이라며 “복지부가 지침에 따라 수년간 현지조사를 했고, 요양기관들도 현지조사가 지침에 따라 이뤄진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상기간 확장은 조사원이 현지조사 중 당초 조사대상기간 이전의 거짓청구 사실을 확인하면 가능하고, 조사대상기간에 비로소 새로이 확보한 자료에 의해 거짓청구 사실을 확인한 경우에만 가능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라며 “조사대상기간의 소급적 확장 범위는 당초 조사대상기간 이전의 거짓청구 발생시점까지로, 가장 최근 지급된 진료분을 기준으로 3년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초 조사대상기간 이전의 거짓청구 사실을 확인했다는 이유만으로 기간을 무단히 3년으로 확장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재판부는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A법인이 조사대상기간에 고의적 혹은 지속적으로 거짓청구를 했음을 확인하거나 관련 증거를 확보해 대상기간을 확장했다고 주장할 뿐”이라며 “거짓청구가 당초 조사대상기간 이전 어느 시점인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 거짓청구 사실을 확인했다며 기간을 3년으로 확장했다는데, 이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만한 어떠한 주장·증명을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헌법 제12조 제1항은 적법절차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행정작용에 있어서도 이는 준수돼야 한다”며 “복지부는 현지조사에서 지침을 위반해 자의적으로 조사대상기간을 확장한 것은 평등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조사 결과에 따른 처분의 적법성을 이와 별개로 판단할 경우 현지조사권의 남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처분은 당초 조사대상기간을 소급해 위법하게 확장한 조사대상기간에 관해 현지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포함해 이뤄진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의료계에선 환영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증거도 없이 현지조사 기간을 확대하겠다는 건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며 “전체 복지부의 현지조사가 이런 식으로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런 어이없는 조사들이 진행된다는 소문이 나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복지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임의적인 심증만 가지고 조사기간을 확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역시, 특별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단순히 ‘민원이 들어왔으니 확인만 하면 된다’면서 의료기관의 임의적 협조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며 “이를 거부한다면 ‘현지확인 안 받으면 복지부 현지조사가 나온다’는 식으로 윽박질러서 협조를 얻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특별한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건 앞으로 지양해야 한다”며 “투명하고 명백하게 의료기관 수용할 수 있는 사유를 가지고 행정조사를 임해야 의료기관과 정부가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겸대변인은 “법원의 합리적인 판단을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을 보면, 범죄자를 탈법적으로 검거를 해선 안 된다고 본 것처럼, 탈법적인 조사를 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까지 회원들이 현지조사나 현지 확인을 받을 때 조사원의 회유와 강압으로 확인서 서명을 신중하게 하지 않아 민원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며 “이번 판결을 보듯이 확인서 서명은 위법적인 사항인 경우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은 지난 3월 의협 3층 소회의실에 ‘현지조사 대응센터(1670-2844)’를 만들고 본격적인 운영에 나선 바 있다.

현지조사 대응센터는 총괄은 김록권 상근부회장이, 운영은 임익강 보험이사가 맡게 되며, 16개 시도의사회에 마련되는 현지조사 대응팀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현지조사, 현지확인으로 인한 회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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