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28 17:56 (목)
249. 누명쓴 사나이( 1951)
상태바
249. 누명쓴 사나이( 1951)
  • 의약뉴스
  • 승인 2017.03.26 1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어난 일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도 누명을 쓴다면 참으로 원통할 것이다. 그것이 중범죄라면 더욱 그러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몹시 화가 나는 것은 오인을 풀 수 없다는 데 있다. 수많은 명작을 남겨 인류에게 벼락같은 축복을 안겨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누명쓴 사나이>(원제: The wrong man)는 제목 그대로 누명쓴 사나이에 대한 분한 이야기다.

제목에서 이미 누명을 썼으니 누명을 벗어나는 과정이 영화의 중심축이 될 것은 자명하다. 뉴욕의 한 클럽에 베이스를 연주하는 매니( 헨리 폰다)는 클럽이 내세우는 춤과 노래, 술과 환락과는 거리가 먼 아주 가정적인 남자다.

이런 남자들은 흔히 예쁘고 상냥한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기 마련이다. 로즈는 그런 아내이고 두 아들 역시 개구쟁이로 잘 자라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그야말로 행복한 가정이다. 약간의 빚이 있는 것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매니는 로즈의 한숨 소리를 듣게 된다.

치과 치료 때문에 든 비용 300달러 때문이다. ( 우리나라 치과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잇몸이 좀 아프다 싶으면 십중팔구 발치를 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더 늦으면 잇몸이 녹아 임플란트도 하지 못한다고 아예 협박조다. 치과에서 빼라는 대로 이를 빼면 치아가 100개라도 남아나지 못할 지경이다.)

각설하고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매니는 아내의 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러 보험회사로 간다.

그런데 창구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들은 서로 모여 작당을 하더니 1년 전 일어난 총을 겨누고 돈을 강탈한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그를 지목한다. 시나리오의 표현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매니는 경찰서로 연행된다. 취조 경찰은 강도가 쓴 내용을 그에게 똑같이 쓰도록 해서 필체를 대조 하는가 하면 그가 급하게 쓴 탓에 불러준 '금고'를 표현하는 글자 하나를 빼먹기도 한다.

이것은 그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 강도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늦는 적이 없었던 매니는 아내에게 전화조차 하지 못하고 유치장에 수감된다. 빚을 갚고 다시 일어나려던 매니의 가족은 다시 한 번 주저앉고 만다.

사실대로 말하라는 경찰의 자백강요에 매니는 완전히 짓밟힌 감정이 돼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화면은 느리고 음악은 음산하고 분위기는 침울하다. 강도를 당했던 가게들은 대조 심문에서 한결 같이 매니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매니가 느끼는 답답함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져 온다. 과연 매니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감옥에서 나와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재판에서 7500달러나는 큰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매니는 그 날부터 자신의 무죄 입증을 위해 로즈와 함께 동분서주 한다. 강도가 일어난 그날 휴가차 시골의 호텔에 머물렀던 기억을 되살려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와 카드놀이를 했던 용의자들은 모두 죽고 없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적극적으로 남편의 무죄를 위해 뛰었던 아내는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절벽 앞에서 좌절하고 그만 정신 이상을 보인다.

나중에는 당신이 강도짓을 안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남편을 의심하기도 한다. 다 ‘나 때문이다’라는 자책감도 심해져 간다.

치과 치료비를 구하러 가는 일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놈의 치과 치료. 환자를 위하는 진정한 치과의사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로즈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로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매니의 누명은 그가 범죄가 일어난 현장에 없었다는 부재 증명 때문이 아니라 기적처럼 진범이 잡혔기 때문에 벗겨졌다. 누명은 풀었지만 그의 가족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누가 그를 보상해 줄 것인가. 파탄 난 가족을 원상회복 시키고 잃어버린 시간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다행히 영화는 해피 앤딩으로 끝을 맺지만 관객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누구라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진범이 잡혔지만 현실에서는 영원히 잡히지 않을 수 있고 잡혀도 책임 때문에 진실은 묻히고 누명쓴 사나이는 영원히 무죄를 증명할 수 없다.

국가: 미국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헨리 폰다, 베라 마일즈

평점:

 

: 이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근거로 했다. 이런 사실은 감독 스스로 소개했다.

이어 감독은 자신이 알프레드 히치콕이며 과거에 서스펜스 영화를 많이 제작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영화 즉, 스릴러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바로 이 영화라고 밝히고 있다. ( 이 장면을 소개할 때 중절모를 쓰고 다리를 넓게 벌린 히치콕의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검은 바탕에 벌린 다리 사이에 환한 빛이 대조를 이룬다.)

매니의 늙은 모친은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불운이라는 말로 아들을 위로 하면서 기도했느냐고 묻는다. 이에 매니가 액자 속의 예수 상을 쳐다보고 이후 진범이 잡힌다.

좀 어설픈 장면이다. 신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매니는 중범죄의 혐의를 벗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누명이 풀리고 나서 경찰서를 빠져 나오는데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두 명의 보험회사 직원과 마주친다.

그녀들은 경찰이 시키는 대로 여러 사람 가운데 숫자를 세다가 범인 앞에서 멈추는 행동을 되풀이 하고 있다. 놀란 표정의 여자에게서 그가 여자들로부터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경찰이 동일한 방법을 쓰는 것은 주인공이 누명을 썼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두 한 통속인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왜 누명을 씌웠는지에 대한 대답은 해주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누명의 이유보다는 결과에 대해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