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19 12:25 (화)
만성신부전 유발 한약재 제조사에 ‘배상책임’
상태바
만성신부전 유발 한약재 제조사에 ‘배상책임’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7.01.16 0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고등법원...통초아닌 등칡 사용해

출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한의사인 남편이 처방한 한약을 먹었다가 만성신부전이 발생한 아내가 제약사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한약재 결함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환자 A씨와 가족들이 B제약사와 C제약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들에게 2억 1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지난 2011년 9월경 딸을 출산한 A씨의 산후조리를 위해 남편인 한의사 D씨는 E한약국에 통초가 120g 포함된 ‘궁귀조혈음’ 한약처방전을, 통포가 400g 포함된 ‘통유탕’ 한약처방전, 통초가 80g 포함된 ‘궁귀조혈음대영전가미’ 한약처방전을 각각 보내 이에 따른 한약제제 제조를 부탁했다.

E한약국은 C제약사로부터 구매해놓은 ‘통초’라고 된 한약재 규격품을 사용해 D씨의 한약처방전에 따른 한약제제를 제조해 택배로 발송했다.

또 C제약사로부터 구매한 한약재를 모두 사용하자 B제약사로부터 ‘통초’라고 된 한약재 규격품을 추가로 구입했고, 이를 사용해 D씨의 한약처방전에 따른 한약제제를 제조해 배송했다.

그런데 문제는 E한약국이 B, C 제약사로부터 구입한 통초가 사실 ‘등칡’이었다는 것.

▲ 통초(좌_)와 등칡.

약사법 제52조에 따라 2011년 3월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고시한 대한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는 한약재(생약)으로서의 통초에 대해 통탈목의 줄기의 수로, 그 성상은 ‘원주형의 수부로 길이 3~6cm, 지름 12~30mm이다. 색은 유백색으로 질은 가벼우며 유연하고 탄력성이 있어 꺾어지기 쉽고, 꺾은면은 평탄하며 수부는 지름 5~15mm로 백색 반투명의 얇은 막상으로 층층으로 되어 있다. 이 약은 냄새와 맛이 없다’고 정하고 있다.

B, C제약사가 판매한 통초라고 된 한약재 규격품은 생약규격집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 통초가 아닌 등칡이었고, 등칡은 쥐방울덩굴과의 식물로 관목통의 줄기의 수로 신독성성분인 아리스톨로킨산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톨로킨산은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는 광방기, 관목통, 청목향 등에 함유돼 있는 성분으로 신조직에 유전자변이를 일으키고 아리스톨로킨산 투여용량에 따라 간질 섬유화를 동반한 만성신부전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으며, 아리스톨로킨산을 함유한 한약재는 비뇨기계통에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인체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

E한약국이 B, C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통초라고 된 한약재 규격품에 대해 분석센터에서 아리스톨로킨산 함량을 분석한 결과, B제약사의 한약재에는 아리스톨로킨산 Ⅰ이 0.471%, 아리스톨로킨산 Ⅱ 0.026%, C제약사의 한약제는 아리스톨로킨산 Ⅰ이 0.802%, 아리스톨로킨산 Ⅱ 0.074%가 함유돼 있었다.

인체발암물질이 포함된 한약재로 만든 한약제제를 복용한 A씨에게 문제가 없을 리 없었다. A씨는 지난 2012년 2월말부터 3월 초순경까지 발열, 구역, 구토 등의 이상을 느끼자 인근 의원에 내원했고, 5월경 F대학병원에서 만성 신부전, 말기 신장질환 신부전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만성 신부전으로 입원한 A씨는 이듬해 8월경 기존 신장을 제거하지 않은채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다.

한국식품영양과학지에 실린 ‘국내 유통 한약재 중 아리스톨로킨산 분석’에 대한 논문에서는 ‘아리스톨로킨산이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는 광방기, 관목통, 청목향 등의 함유성분으로 알려져 있고, 이 성분이 DNA와 결합해 신조직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장기간 이 성분이 함유된 약을 섭취함으로써 신장장애 및 신장암을 발생시킬 수 있음이 발견되면서 2001년 FDA에서 발암성 성분으로 규정됐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에 식약처는 지난 2005년 6월 1일부터 아리스톨로킨산 함유 한약재인 청목향, 마두령 및 이를 함유한 제제를 구 약사법 시행규칙 제21조 제1항 제8호,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규정 제54조에 따른 별표18의 ‘안전성·유효성 문제성분 함유제제’로 지정함으로써 제조·수입품목 허가(신고)를 제한했다.

또 식약처는 지난 2006년경부터 한약재 관능검사(성상·색깔·맛·냄새 포장 상태 등을 관찰해 한약재 품질의 적부를 판단하는 검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약재 관능검사지침 Ⅰ’을 발간했고, 지난 2009년경에는 ‘통초’에 대한 관능검사지침이 포함된 한약재 관능검사지침 Ⅲ을 발간하는 등 품질관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A씨와 가족들은 “B, C제약사들이 제조한 제조물인 이 사건 한약재에는 독성물질이 함유된 등칡으로 제조되는 명백한 결함이 존재하므로, 제조자인 B, C제약사들은 이 같은 결함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B, C제약사들은 한약재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한약재로 사용할 수 있는 통초와 아리스톨로킨산을 함유하고 있어 제조 및 유통이 금지되는 등칡을 명확하게 감별해야함에도 이를 게을리 했다”며 “등칡으로 제조된 한약제제를 복용한 A씨로 하여금 만성 신부전 등의 질환을 앓게 했으므로 이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한약재가 제조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부터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한약재가 원재료인 나무 줄기의 세척, 절단, 건조, 품질검사, 포장 등의 가공을 거쳐 사람에게 약리학적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의 의약품[한약재(생약)] 규격품으로 대량 제조돼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대량으로 판매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 사건 한약재는 제조물책임의 적용 대상이 되는 제조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한약재 관능검사지침 Ⅰ에는 목통에 대해 감별요점을 설명하면서 참고사항으로 관목통에 대해 ‘단면은 황색 혹은 담황색을 띠고, 도관은 가지런한 바퀴(거미줄) 모양으로 배열됐고, 수는 명확하지 않다. 신독성성분이 함유돼 사용이 금지됐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약재 관능검사지침 Ⅲ에는 통초에 대해 감별요점으로 약용부위, 전체모양, 질감, 크기, 색, 절단면, 냄새 등을 설명하면서 통초와 등칡을 구별해야한다는 취지에서 각 절단면을 찍은 사진을 비교, 게시하고 있으며, 등칡의 절단면을 찍은 사진에 대해 ‘마두령과 식물인 등칡의 덩굴성 줄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통초로 잘못 사용해 왔다. 통초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부연 설명했다는 게 재판부의 지적이다.

재판부는 “약초수집자들은 B, C제약사에 이 사건 한약재의 원재료를 납품할 당시 작성한 ‘생산 및 수집판매 증명원’에는 그 품명에 등칡(통초)이라고 기재돼 있다”며 “B, C제약사들은 원재료가 한약재로 쓰이는 통초가 아닌 등칡임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B, C제약사들은 이 사건 한약재를 제조·판매할 당시 의약품 규격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제거하고 최소화해야하는 고도의 위험방지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 한약재는 제조물책임의 대상이 되는 결함 있는 제조물에 해당하고, B, C제약사는 제조자로서 한약재의 결함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A씨는 지난 2012년 2월말경 신장기능 상실로 인한 발열,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신장질환의 과거력이 없었고, 임신기간 및 출산 직후 시행한 요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므로 이 같은 증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신장 상태가 정상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A씨는 E한약국에서 제조한 한약제제를 받아 계속 복용했는데, 복용 이후에 발열,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증상의 호전, 악화가 반복되다가 F대학병원에서 만성 신부전, 말기 신장질환 신부전의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H대학병원은 A씨의 질환에 대해 신세노관 괴사를 동반한 급성 신부전, 말기 신장질환이라고 최종진단했고, 한약재에 의한 신세뇨관 위축이라는 판단하에 A씨가 복용한 한약제제의 원인 약재에 대한 아리스톨로킨산 검사를 의뢰한 결과, E한약국이 B, C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한약재가 통초가 아닌 아리스톨로킨산이 함유된 등칡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A씨는 2011년 9월경부터 2~3개월 동안 아리스톨토킨산이 함유된 한약재로 제조된 이 사건 한약제제를 복용한 후 세뇨관 간질 부위 손상으로 인한 만성 신부전 질환이 생겼고, 세뇨관 간질 부위 손상으로 인한 만성 신부전증은 아리스톨로킨산이 함유된 약재를 복용한 경우 발생하는 이른바 ‘특이성 질환’인 사실을 추인할 수 있다”며 “A씨의 질환과 이 사건 한약제제의 복용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판결에 불복한 B, C제약사는 항소를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같았고, 피고들의 항소는 모두 기각됐다. 이후 B, C제약사들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판결이 확정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