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진이 쌍둥이를 뒤바꿔서 치료했다고 주장하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법원이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일란성 쌍둥이 A와 A의 부모가 B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산모 C씨는 제태기간 31주 2일인 지난 2009년 8월경 B대학병원에 내원, 제왕절개수술로 일란성 쌍생아인 A와 D를 분만했다. 수술 후 시행한 태반조직검사결과, 융모양막염이 진단됐다.
첫째인 A는 체중 1.32kg였으며, 아프가점수는 출생 후 1분 6점(5분 7점), 심박동수 150회/분, 호흡수 60회/분이었다. 초기 활동 불량과 경미한 반호흡·흉부 함몰을 보였고, 산소포화도는 95%였다.
둘째인 D는 체중 1.57kg였으며, 아프가점수는 출생 후 1분 7점(5분 9점)이었고, 양호한 활동력과 울음, 경미한 흉부함몰을 보였다.
쌍둥이는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져 2009년 8월 4일부터 2009년 9월 말까지 치료를 받았고, D는 9월 29일, A는 10월 1일 퇴원했다.
퇴원 당시 A씨는 뇌 초음파검사 결과, 이전에 검사에 비해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의 낭성 변성은 큰 변화가 없고, 경도의 수두증도 변화가 없는 상태였다.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이란 미숙아의 뇌실 주위에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뇌의 혈류감소로 인한 산소결핍으로 뇌실주변의 백질 부위에 뇌백질이 괴사한 것을 말한다.
뇌의 표면에 있는 회백질은 각기 기능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있고, 이런 정보들은 여러 신경 전달로들을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 받게 되는데, 특히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로가 뇌실 주변부를 지나게 되어 있어 만약 이런 백질 연화증이 뇌실 주변부에 있으면 주로 뇌성마비 등과 같은 운동 장애가 생기게 된다.
D는 의료진이 퇴원할 때 예약한 외래(10월 7일) 간기능 검사에서 총빌리루빈 7.9mg/dL, 직접 빌리루빈 4.2mg/dL, GOT 203U/L, GPT 104U/L로 측정됐다.
현재 A씨의 상태는 신체감정 당시, 뇌성마비 상태로 혼자 앉아 있지 못했으며 심한 발달지연을 보였고, 언어지연·진찰상 강직·심부전 반사가 증가돼 있는 강직성 하지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다.
D는 퇴원 후 50여일이 지난 2009년 11월경 집에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 채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감정의는 D의 사인에 대해 간질환이나 코입막힘질식 같은 기계적 질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할지라도 신생아 간염 등의 간질환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고, 사망에 이를만한 전형적인 또는 합당한 임상경과를 거치지 않은 점, 코와 입주위에서 영아급사증후군과 코입막힘질식을 구분할 수 있는 외상의 소견을 보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불명이나 영아급사증후군을 고려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D가 사망하자 쌍둥이 부모는 B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낭종(주위 조직과 뚜렷이 구별되는 막과 내용물을 지닌 주머니)화된 부위는 일정시간이 경과하더라도 흔적이 사라질 수 없고 교상흔을 형성한다”며 “A에 대해 E병원에서 실시한 뇌 초음파 검사결과, F의료원에서 실시한 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 G대학병원에서 실시한 컴퓨터 단츨촬영 검사 결과에서는 낭종이 사라진 것으로 관찰된 점을 비춰보면 B병원 초음파검사 결과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이 발견된 사람은 A가 아닌 D”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진은 A에게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이 발생한 것으로 착각해 A에겐 적절하지 못한 치료를, D에겐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족들은 의료진이 A와 D에 대해 적절한 호흡과 감염 관리를 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따졌다.
1심 재판부는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D가 퇴원한 이후 의료진이 A에게 시행한 뇌 초음파검사에서 뇌실주위백질연화증 소견을 보였다”며 “E병원의 뇌 초음파 검사에서는 전형적인 뇌실주위 낭성변화는 보이지 않고 뇌실이 확장된 소견만 보이고 있고, F의료원의 MRI 검사결과에서는 뇌실 모서리가 파동을 이루고 있으면서 늘어난 뇌실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E병원과 F의료원, G대학병원의 검사결과는 시간간격이 있어 뇌전체 사이즈의 증가가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모두 양측 편측 뇌실이 확대되는 소견을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을 비춰 각 검사결과는 낭성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의 시간 경과에 따른 추이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B병원의 초음파검사 결과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이 발견된 사람이 A가 아닌 D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오히려 초음파검사 결과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이 발견된 사람은 A”라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의료진은 A의 호흡 수, 산소포화도 등을 계속해 관찰하면서 무호흡을 동반한 산소포화도 감소시 곧바로 대처하는 등 적절한 호흡관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D에 대한 감염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진료과정상 감염방지 조치 해태의 과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으로서는 감염방지를 위해 당시의 의학수준에서 요구되는 어떠한 예방조치를 해야 하고, 이를 게을리 한 점이 인정돼야하는데 원고들의 주장만으론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불복한 유족들은 항소심을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유족들은 항소심에서 “B병원이 D의 의무기록 중 일부를 누락했는데, 누락된 일자들은 C씨가 출산한 쌍둥이 중 한 아이에게 뇌실주위백질연화증이 관찰되기 시작한 시기와 중첩되는 기간으로 B병원은 A와 D를 뒤바꿔 치료한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무기록을 누락, 폐기 또는 변조했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B병원은 유족들이 주장하는 일자에 D에 대해 중환자실 기록과 의사 지시 및 처치서를 작성했고, 이러한 기록들은 유족들에게 모두 제공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이 주장은 더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D의 중환자실 기록 중 수기로 기재돼 있는 일자를 일부 수정한 사실이 인정되나 이 일자들은 중환자실 기록 들이 해당 일자의 의사 지시 및 처치서의 기재 내용과 부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자 수정은 잘못 기재된 일자를 정정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B병원이 D의 의무기록을 변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