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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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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 죽자
  • 의약뉴스
  • 승인 200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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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중 무휴로 약국을 경영해 오다가 몇 년만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은 예술의 도시에서 견문을 쌓고 잡다한 현실에서 탈출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있다. 하지만 ‘도적을 피해 숨은 곳이 하필이면 호랑이 굴’이란 속담 격이다.

출국을 하는 순간, 건설적인 미래를 제시하기보다 백해무익한 과거지사를 들추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정치인들의 추태를 당분간만이라도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 한인 사회 역시 더 나을 것이 없었다.

‘프랑스’ ‘파리’의 한인 식당에 들어섰을 때 ‘남동신문’을 발견하듯 반갑게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교포 사회의 지역 신문이었다. ‘파리’에서 발행되는 지역 신문은 월간지 ‘오니바’와 주간지 ‘한 위클리’가 있으며 매회 3-4천부를 발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신공격에 가까운 상호 비방으로 지면을 장식한 두 신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이역 만리 ‘프랑스’에서도 한국인 사회는 어쩔 수 없구나 싶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발단은 ‘한 위클리’에 실렸던 서울신문 박정현 특파원의 칼럼 <프랑스에서는 거만이 상책>이라는 내용에 대해 ‘오니바’ 월간지가 비평문을 게재한 데 있었다.

내용이 어떻든 간에 칼럼의 비판은 독자들의 양식에 맡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지에 실린 언론인의 글을 발행인이 그것도 독자 기고인 양 가명을 내세워 매도한 이면에는 경쟁사를 죽이고 광고 수주를 독차지하겠다는 속셈이 숨어있었다.

세계의 상권을 지배하는 민족이 유태인과 중국인들로 대표되는 이유가 있다. 유태인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이기적인 자세로 영업에 임하고 중국인은 ‘나도 살고 너도 살자’는 상부상조의 민족혼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중국인 식당에서 일하던 주방장이 독립을 하여 식당을 개업하면 주인은 가까운 거리에 점포를 마련해 주고 기반이 잡힐 때까지 찾아가 도와준다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상인의 경우는 다르다. 상파울로 상가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옷가게가 생기면 ‘이제 우리는 망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고 한다. 한국 상인들이 워낙 근면하고 밤잠을 안 자면서까지 악착스럽게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에 또 다른 한국인 가게가 생기면 그곳 상인들은 ‘이제 우린 살았다’고 환호를 지른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너 죽고 나 죽자’는 경거망동(輕擧妄動)식으로 출혈 경쟁을 하여 결국엔 함께 망하기 때문이다.

여 야의 정쟁(政爭)이든 상인들의 경쟁이든 모든 싸움은 수단과 방법을 내세우기 전에 우선 뚜렷한 목적부터 정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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