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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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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의 아픔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 유럽의 스페인에서도 동족 간 유혈이 낭자한 전쟁이 벌어졌다.

1936년 군인이었던 프랑코는 좌파인민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벌였다. 3년 후 군인들은 나찌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를 등에 없고 정권을 장악했다.

총질의 대가는 참혹했다. 스페인 전역이 거의 폐허가 됐다. 상황은 역전됐다. 반란군이 정부군이 됐고 정부군이 반군이 됐다. 프랑코에 반대하는 이들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파시스트 정부는 깊은 산속에 숨어 저항하는 반군들을 추격했다. 1944년에도 내전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채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멕시코 태생인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원제: Pan‘s Laybrinth)는 이 같은 스페인 내전 당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나 된 스페인을 외치는 정부군의 책임자 비달 대위( 세르즈 로페즈)는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는 반군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보급로를 차단하면서 장기전을 펴고 있다.

비달의 내연녀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전투가 벌어지는 산으로 향하는데 그녀의 배는 곧 출산을 앞둔 산모의 모습이 역력하다.

옆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는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는 전 남편 소생으로 아빠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의사를 무시하고 한 번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전쟁과 동화, 참 조합이 안 맞는다. 피가 튀고 살갗이 찢기고 고문의 비명으로 산천이 흔들릴 때 날개달린 요정이 나타나서 지하왕국을 향해 가는 모습은 기이하다 못해 괴이하다.

비달은 산모 보다는 아들로 확신하는 아이의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비달 군대의 음식을 담당하는 하녀 메르세데스(애리아드나 길)와 의사(알렉스 앙굴로)는 묘한 눈짓을 간혹 주고받는데 이들은 반군과 내통하고 있다.

 

그런 사실을 오필리아는 알고 있지만 의붓아버지나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필리아는 다른 모든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는 무관심하다. 하나가 아닌 많은 요정이 등장하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소녀는 아주 멀고 먼 옛날, 그러니까 어떤 거짓과 고통도 없는 지하왕국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책과 현실은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따로 노는 느낌이다.

요정은 소녀를 더 깊은 숲속으로 안내하고 마침내 오필리아는 방앗간이 생기기 전부터 여기 있었던 한 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쉬운 계단 아래의 석상 구멍의 눈에 돌을 넣는다.

비달은 반군을 제압하기 위해 기마대를 조직하고 하녀는 음식을, 의사는 항생제를 준비해 밤길을 걷는다. 이쯤 되면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전투 초기 비달은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으로 반군들을 몰아붙인다. 애꿎은 민간인도 희생된다. 토끼사냥을 나온 늙은 아버지와 젊은 아들의 몸에 구멍을 뚫는 비달. 말더듬이 반군 포로를 잔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그 이전의 끔찍한 악행은 전주곡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만큼 소름끼친다.

신도 국가도 주인이 없다는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장도리와 집게, 그리고 쇠꼬챙이를 들어 보이는 파시스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는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해 남김없이 죽여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아무런 의문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등 뒤에서 쏴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 내통 사실이 들킨 하녀도 고문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운 좋게도 하녀는 그런 위기를 넘기고 숨겨둔 칼로 비달의 입을 귀밑까지 찢는다. 비달이 스스로 찢어진 입을 꿰매는 장면은 뒤이어 나올 나비가 날고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고 잘 자란 초록의 식물과 대비된다. 전쟁과 요정의 세계.

두 세계를 하나로 묶는 끈은 좀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지치거나 옆길로 새지 않고 하녀가 애인인 반군의 지도자와 함께 막사를 점령하는 것처럼 스므스하다.

화려한 만찬에 손을 댔지만 마지막 기회를 얻어 결국은 ‘마침내 행복하게 잘 살았다’ 로 끝나는 지구상 어디나 똑같은 결말은 슬픈 마음을 조금 위로해 준다.

동화는 동화로 끝났다. 감독의 위대함은 궁합이 맞지 않는 이러한 조합도 퍼즐의 조각처럼 마침내 맞출 수 있다는데 있다.

국가: 스페인 멕시코 미국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바나 바쿠에로, 세르즈 로페즈
평점:

 

: 비달 대위의 깨진 시계가 화면에 자주 잡힌다.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죽을 당시의 시간을 아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일부러 바위에 내리쳤기 때문이다.

비달의 내연녀는 아들을 낳고 죽는다. 대위도 죽을 때 아들에게 자신의 죽은 시간을 알려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대를 이은 악행은 비달에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의붓딸 이라고 하더라도 오필리아를 사살하는 비달의 행동은 그가 전쟁으로 태어난 악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오필리아는 현실에서는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름달이 뜬 날 황금 두꺼비의 뱃속에 세 개의 돌을 넣어 열쇠를 빼내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지하왕국으로 비달의 아들을 데리고 가면서 눈을 감는다. 영화에는 잔인하고 기이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미로를 안내하는 산이고 숲이고 땅이며 오필리아의 하인을 자처하는 나이 들어 보이고 키가 크며 흙냄새가 나는 판( 더그 졸스)의 모습과 피부가 벗겨진 사람의 형상 같지만 아닌 이상한 괴물 (그 괴물은 손바닥에 눈알이 하나씩 박혀 있다.)의 등장은 잔인한 전쟁만큼이나 잔혹한 동화의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 속 대사처럼 세상은 잔인하고 마법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검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산꼭대기에 매일 피는 마법의 장미꽃은 영생을 주지만 찔리면 죽는 독가시가 달려 있다는 전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전쟁과 마법은 다른 듯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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