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238. 세 가지 색: 화이트(1994)
상태바
238. 세 가지 색: 화이트(1994)
  • 의약뉴스
  • 승인 2016.10.30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단을 오르다가 비둘기 똥을 맞을 확률은 복권 당첨 보다는 높다. 하지만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일, 다시 말해 그 어려운 일을 잘 도 해냈다면 그 날의 행운을 생각해 볼 만도 하다.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화이트>(Three colors: White) 의 주인공 카롤 (즈비그니에프 자마호브스크)은 어느 날 오른쪽 어깨에 하얀 색 비둘기 똥을 맞는다. 운수 대통하려나.

그날 카롤이 비둘기가 많은 계단을 오르내린 것은 똥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 도미니크(줄리 델피)와 이혼 재판을 하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원하지 않는데 아내는 원하므로 그가 운이 있었다면 도미니크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둘기 똥도 별 효과가 없었다. 만족시키기 못한 이유로 그는 아내로부터 원치 않는 버림을 받았다. 파리의 지저분한 지하철역. 그가 머리빗에 종이를 대고 피리를 불고 있다.

누군가 다가온다. 노래 말을 아는 이는 고국 폴란드 인. 남자는 카롤에게 고국으로 함께 돌아가자고 말한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미용사 자격증도 있다. 바르샤바에는 그가 일하던 가게가 있다.

상도 여러 번 수상할 만큼 재능도 있다. 그런데 여권이 없다. 돈도 없고 경찰에 쫒기기까지 한다. 남자는 살인을 해 주는 조건을 단다. 그 자는 죽고 싶어 한다고 그러니 부담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대가는 좋다. 6개월은 놀고먹을 정도다. 죽고자 하는 자는 가정을 끔찍이 사랑해 자살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는 게 허무하기 때문이다.

카롤은 고민에 빠진다. 남자는 그에게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이혼을 당했지만 전보다 더 사랑한다는 카롤. 미용대회에서 처음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를 주절주절 남자에게 전하는데 커다란 눈에는 슬픔보다는 체념의 빛이 어른거린다.

 

카롤이 떠난 빈집에는 다른 남자가 벌써 와 있고 전화 속에서 아내는 거친 신음 소리를 토해낸다. 카롤은 살인 결심을 굳힌다. 그는 커다란 가방 속에 숨어 폴란드행 비행기를 탄다.

4시간 만 버티자, 그는 독하게 마음먹는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다. 좀 도둑이 그가 탄 가방을 훔친 것이다.

눈 덮인 시내 외곽에서 그는 두들겨 맞고 버려진다.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고향 냄새 맡는 데는 문제가 없다. 폴란드에 도착한 것이다. 프랑스 법정 계단에서 보았던 비둘기가 여기서도 날고 있다. 환호성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카롤의 손은 분주하다. 전에 알던 많은 여자 손님들이 카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더 큰 돈을 벌고 싶다. 겨우 미용실에서 여자 머리나 자르고 있을 그가 아니다. 그는 개발 계획을 미리 알고 업자에 한발 앞서 알짜 토지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그 돈으로 공장을 세우고 큰돈을 번다. 카롤은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니다. 올백으로 치장한 머리는 참기름처럼 윤기가 나고 얼굴은 살이 올라 사장 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살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를 폴란드로 데려온 남자와 역시 지하철역에서 마주친다. 살인을 부탁한 자가 바로 그 남자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카롤은 놀란다. 카롤은 남자를 설득해 함께 사업을 벌인다.

비둘기 똥이 뒤늦게 효력을 발휘하는지 사업은 일사천리다. 카롤은 프랑스의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전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겠다는 유언대신 부동산은 물론 구좌에 있는 현금을 도미니크에게 물려준다는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한다.

그리고 가짜로 죽는다. 아내는 관 속에 카롤이 아닌 러시아인이 들어 있는 장례식에 참석한다. 작은 망원경으로 슬픔에 젖은 모습을 지켜보는 카롤.

그는 아내 먼저 호텔에 들어와 있고 뒤늦게 온 아내와 짧지 않은 긴 정사를 벌인다. 아내는 전화에서 보다 더 큰 목소리를 지르며 흥분에 빠져든다.
 

국가: 프랑스 폴란드 스위스
감독: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출연: 즈비그니에프 자마호브스키, 줄리 델피
평점:

 

: 이 영화는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색 가운데 화이트의 상징인 평등을 그렸다. 이혼법정에서 카롤은 이 나라에는 평등권이 없느냐고 외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불어를 못해서 차별을 받느냐고 항의하는 것은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이다. 재판장이 무슨 말이냐고 짜증을 내는 것은 아직 온전한 평등은 아니다 라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감독의 다른 두 작품인 <레드>와 <블루>처럼 높은 작품수준을 유지한다.

코미디 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것은 얽힌 것을 푸는 묘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얀 면사포와 창문에 비치는 흰 빛, 하얀 비둘기 똥이 제목과 잘 어울린다.

아내와 다시 합친 카롤은 유럽통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이는 인류의 통합, 하나 된 세계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