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을 조기에 진단하지 못한 의사에게 과실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최근 사망한 환자 A씨의 가족들이 B학교법인과 의사 C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08년 5월 B학교법인이 운영하는 B대학병원 호흡기내과를 방문했다. 흉부 X-선 검사 결과, 양측 폐 전반에 광범위한 음영 소견 및 양측 폐문부에 임파선 비대 소견이 확인돼 폐렴이 의심됐다.
C씨는 A씨를 입원 조치한 후 혈액검사를 실시, 백혈구 수치가 26,560(참고수치 4,000-10,800), 염증지표인 CRP 수치 155.0(참고 수치 0.1-6.0) 등 전신염증상태가 의심되자 폐렴에 대한 경험적 항생제 치료로 페니실린계 항생제 Sulbicilin과 마이크로라이드계 항생제 Clari 병용요법을 시작했다.
C씨는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통한 기관지세척세포검사를 계획했으나 A씨가 검사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흉부 X-선 검사·혈액검사·임상 증상·이학적 검사 소견에 비춰 지역사회 획득 폐렴 소견으로 진단했다.
입원 후 5일이 됐을 무렵 혈액검사상 백혈구 수치가 8740, CRP 수치가 38.1로 호전되고, 흉부 X-선 검사상 우측 폐의 상엽 및 중엽, 좌측 폐문부에 관찰된 음영의 크기가 감소됐으다. 이후 백혈구 수치가 8030, CRP 수치가 21.7로 더욱 낮아지고, 발열·기침·가래 증상 또한 호전되자 외래 추적진료를 시행키로 하고 항생제 처방 후 퇴원 조치했다.
외래진료에서 흉부 X-선 검사상 우측 폐 상엽의 음영이 완전히 소실되고, 우측 폐의 중엽 및 좌측 폐문부의 음영 또한 거의 소실된 상태가 확인됐다.
며칠 뒤에 진행한 흉부 X-선 검사 결과, 우측 폐 상엽 및 중엽, 좌측 폐문부의 음영이 모두 소실되고, 백혈구 수치는 6,150으로 정상범위여서 지역사회 획득 폐렴이 완치돤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폐기능검사상 제한성 폐기능 장애 소견이 확인, 6개월 후에 추적 폐기능검사를 시행, 정상임이 확인되자 진료를 종료했다.
그러던 중 A씨는 이듬해 4월경부터 기침·가래 등의 증상이 나타나 개인의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B대학병원 호흡기내과로 내원했다.
흉부 X-선 검사결과, 좌측 폐 상엽에 폐결절이 확인됐다. 이후 진행된 흉부 CT 검사 결과, 좌상엽 원발성 폐암 의증 소견이, 세침흡인조직검사 결과, 폐 선암 진단을 받았다.
B대학병원에 입원한 다음날 PET-CT검사 결과, 좌측 상엽에 2.8cm의 폐 선암종과 함께 기관분기부하 임파절, 대동맥주위 임파절, 좌측 폐문부 임파절, 우측 종격동 상부 임파절 부위의 비대 및 전이, 우측 폐의 하엽에 전이 결절 소견이 확인, 폐 선암 3B기 및 4기의 진행성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폐 선암의 진행 상태에 비추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는 불가능하고, 전신 항암요법을 받아야 다고 설명했으나 A씨는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겠다며 퇴원했다.
다른 병원을 찾은 A씨는 원발암 전이 확인을 위한 우하엽 쐐기 절제술을 받았고, 이후 또 다른 병원에서 온열치료를 받았다. 이후 또 다른 대학병원을 찾아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는 등 여러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A씨의 가족들은 “의료진에게는 A씨에 대한 폐렴 치료 당시 폐암을 진단할 수 있었음에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상의학과 의료진은 세밀한 관찰을 하지 않아 의심되는 질환이 없다고 잘못 판독했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가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영상의학과 의료진이 흉부 방사선검사 영상에 대해 ‘폐렴 또는 드물지만 폐암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폐 CT를 촬영하여 감별을 권한다’는 소견을 밝힌 사실과 흉부 CT검사를 실시했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고 퇴원 조치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A씨는 흡연을 하지 않은 42세 여성으로 폐암의 고위험군에 해당하지 않고,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의사 C씨가 흉부 X-선 소견·임상증상·혈액검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폐렴으로 진단하고, 치료한 것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2009년 좌상엽에 발생한 폐암은 흉부 X-선 검사에서 나타나는 우중엽과 좌하엽 상분절 침윤과는 별개의 질환으로 보인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잘못 판독했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병변 부위인 폐문부에는 주위 혈관들이 잡하게 얽혀 있어 폐혈관들이 방사선 방향과 평행한 방향인 경우 폐결절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병변의 위치가 좌측 2번째 전방 늑골 음영과 중첩돼 실제 폐결절 해당 여부를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시 A씨가 호흡기 이상 증상을 전혀 호소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 영상을 잘못 판단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A씨의 가족들이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 재판부의 생각도 같았다.
2심 재판부는 “흉부 방사선 검사결과를 판독하면서 취한 조치와 폐에 이상이 없다고 판독한 것이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규범적 의료행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