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나 병원의 도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보다도 중요한 생명을 다루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누구나 의사를 만나고 병원을 간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는다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병원에 와서 의사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약자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제 발로 찾아와서는 의사에게 타인에게는 감추고 싶은 자신의 병을 서슴없이 이야기 하고 치료를 간곡히 부탁한다.
이때 환자는 절대 약자이고 의사나 병원은 절대 강자이다. 약자는 강자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약자에게 몹쓸 짓을 하는 의사나 병원이 있다면 다른 어떤 범죄행위보다도 위중하게 다뤄야 할 것이다.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의사나 병원에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윤리의식은 때로는 일반 시민보다도 뒤처지는 경우가 있다. 성범죄의 경우는 특히 심각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료인 성범죄 처벌 현황을 보면 과연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행동이 이 정도인지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렵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7~2016년) 성범죄로 인해 검거된 의사는 747명이나 됐다. 문제는 2007년 57명에서 2015년에는 109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성범죄로 검거되는 의사 수가 해마다 폭증하고 있다는데 있다.
올해에도 지난 8월을 기준으로 75명의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렀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리 감독해야 할 복지부는 별도의 제재를 가하지 않는 등 사실상 직무를 방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복지부는 형사적 처벌과는 별도로 면허 자격을 정지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면허정지를 하지 않았을 뿐 더러 행정처분도 겨우 5명에 대해 자격정지 1개월을 내린 것이 전부로 밝혀졌다.
그것도 관할 시·도와 경찰청에서 직접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해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인재근 의원은 설명했다. 인의원은 또 처분이 확정된 날로부터 길게는 11개월 후에 자격 정지가 개시되도록 해 성범죄 의사들이 의료행위 등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죄에 대한 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병원에 찾아온 환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에 대한 벌은 중요하다. 재발방지 차원에서도 그렇다. 병을 치료하러 왔다가 되레 피해자가 되는 현실은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의사의 윤리와 병원의 품격이 처벌 보다 앞서야 하겠지만 그것이 바닥에 떨어졌거나 보이지 않을 때는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복지부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