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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벤허(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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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벤허(1959)
  • 의약뉴스
  • 승인 2016.08.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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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는 푹푹 찌는 폭염의 날씨더니 오늘은 서늘한 가을이다. 하루 사이로 계절이 바뀌었다.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온 몸의 세포가 살아서 살 밖으로 뛰어 나갈 것만 같다.

마치 월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Ben- Her)를 보거나 보고 난 후의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 명절날이나 연말연시에 텔레비전 고전 물로 방영되던 <벤허>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영화는 무려 212분이다. 친지들이 오가는 떠들썩한 가운데 온전히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띄엄띄엄 보거나 아예 보다가 씨름판이나 가요대전으로 채널을 돌리기 일쑤다.

주인공도 알고 내용도 알지만 차분히 앉아 3시간 넘게 영화를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해서 미루다, 미루다 마침내 좌정을 하고 헤드셋을 낀다.

이제 온전히 영화에 몰입할 준비는 끝났다. 때는 로마가 위세를 부리며 주변을 거칠게 다루던 폭정의 시기.

유대인 벤허(찰턴 헤스턴)와 로마인 메살라(스티븐 보이드)는 어린 시절을 단짝으로 함께 보냈다. 시간이 지나 벤허는 유대인의 신망을 받는 예루살렘에서 최고 부자로 성장했고 메살라는 꿈꾸던 대로 그 지역의 총사령관이 됐다.

둘은 반갑게 재회하고 신임 총독을 맞기 위한 메살라의 준비는 빈틈이 없다. 지붕위에서 총독의 행차를 구경하던 벤허와 누이동생은 그만 기왓장을 떨어트리고 하필 그 때 말 타고 그 아래를 지나가던 총독이 다친다.

지금은 로마 세상이니 그 안에서 살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메살라의 제의를 뿌리치며 로마가 멸망하는 날 자유의 함성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거라고 맞서던 벤허는 죄인으로 노예선의 노 젓는 뱃사공이 된다.

노랫말에 나오는 그런 한가한 뱃사공이 아니다. 발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젓는 노는 병사의 박자에 맞춰 전투속도, 충돌속도에 따라 속력을 내야 한다. 전투함이기 때문이다.

1년도 살기 힘든 노예선에서 벤허는 3년을 산다. 전투가 벌어지고 벤허가 탔던 배는 침몰한다. 벤허는 사령관이 미리 쇠사슬을 풀어줘 배가 침몰해도 살아 날수 있었고 그런 은혜를 사령관의 목숨을 건져 보답한다.

둘은 개선장군이 돼 로마의 환영식에 참석한다. 황제는 사령관을 살린 벤허에게 노예 신분을 벗겨 주고 사령관은 벤허를 아들로 삼는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벤허는 여전히 기세를 부리는 메살라와 한 판 승부를 벌인다.

전차 경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검은 악마팀 메살라를 상대로 무모한 시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대인만큼 박해를 받던 아랍인 거상이 준 백마 4필이 있다. 벤허의 백마 대 메살라의 흑마 경주. 흥미진진하다.

메살라는 경기에 벤허가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 특수주문 제작한 그리스 식 전차를 준비한다. 톱니 같은 날카로운 구조물이 부착된 메살라의 전차는 나무로 된 상대 전차를 박살낸다.

10바퀴를 도는 경기에 수많은 관중이 운집했고 벤허 아버지의 친구인 새로운 총독 빌라도도 귀빈석에서 경기를 구경한다.

 

코너를 돌 때 자욱한 흙먼지를 날리며 엎치락 뒤치락 할 때면 선수는 물론 관중의 심장도 함께 뛴다. 반칙을 일삼고 채찍질을 가하는 메살라와 고삐를 당기는 벤허의 죽기살기식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는 정도가 아니다.

부서진 전차에서 나가떨어진 기수는 뒤따라오는 말발굽에 그대로 치인다. 경기에서 누가 이겼는지는 적지 않아도 알 것이다. 벤허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 나선다. 다행히 혈육은 지하 감옥에서 살아있다. 하지만 나병에 걸렸다.

벤허의 찢어지는 고통을 누가 알랴. 노예선으로 끌려가기 전 만났던 상인의 딸 에스더( 헤이어 해러릿)가 그를 위로 한다. 한편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왔다는 예수라는 사람의 말씀을 듣기 위해 언덕으로 구름처럼 몰려든다.

국가: 미국
감독: 월리엄 와일러
출연: 찰턴 헤스턴, 스티븐 보이드
평점:

 

: 벤허와 메살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했다. 벤허는 유대민족을 배신하지 않았다. 메살라는 황제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관객들은 벤허가 선이고 메살라가 악이라고 생각한다.

벤허는 약자이고 메살라는 강자인데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강자가 아닌 약자로 알았던 벤허다.

벤허는 누구도 살아서 나오지 못한 노예선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전차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나병에 걸린 엄마와 누나도 번개와 천둥이 치던 날 순식간에 깨끗이 나았다.

예수의 기적이 벼락같은 축복을 내린 것이다. 나병이 나으면서 기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우습기도 하다. 종교영화라고 해도 말이다.

사실 이 영화는 종교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종교보다 더 깊이 다루는 것은 벤허와 메살라의 우정과 갈등과 복수에 대한 처절한 인간갈등이다.

둘 중 누구하나라도 흔들리는 나무처럼 구부러졌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날 수 없었다. 철로 된 두 사나이였기에 하나가 부러져야 마침표가 찍히는 것이다.

영화가 얼마나 길면 중간에 휴식시간 까지 있을까. 이 영화를 제작한 MGM은 거의 파산 직전에서 1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만약 벤허가 실패했다면 포효하는 사자의 상징은 오래전에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대박을 쳤고 무려 12개 부분에서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 주요 상을 휩쓸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7)이 나오기 까지 이 기록을 깨지지 않았다.

한 마디라도 대사가 있는 등장인물이 3500명이고 엑스트라는 5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영화의 전 대목이 흥미롭지만 누구나 말 할 수 있는 가장 기막힌 장면은 피 튀기는 전차경기다.

벤허가 죽지 않고 메살라에게 복수한 것은 기적 때문이 아니라 종교의 힘 때문이었다. 신은 없거나 오래전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스토리는 충분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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