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의료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심평원의 전산시스템이 만 하루 넘게 멈춰선 일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손명세)은 심평원 전산실 항온항습장치 고장으로 인해 5일 오전 11시께부터 서버가 정지됐다고 밝혔다. 당초 심평원은 5일 교체작업을 진행해 수리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6일 오전까지 요양기관의 급여비 청구포털, 심평원 홈페이지 등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심평원이 서버를 복구하는 동안 의사들은 진료비 청구는 물론이고, 의약품안심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 확인을 할 수 없어 불편을 겪었다. 여기에 심평원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보건의약단체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아 불편함을 한층 더 가중시켰다는 후문이다.
이번 사안은 변명의 여지없는 심평원의 잘못이다. 서버관리를 잘못해 서버가 만 하루 넘게 중단돼 있었는데도 이에 대한 비상 프로토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서버다운을 의사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줬다.
서버다운 사건으로 인해 심평원을 규탄하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높았고, 많은 언론사에서도 논평, 기자수첩을 통해 심평원을 일제히 비판했다. 그렇다. 이번 사안은 심평원의 명백한 잘못이고, 심평원이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는 잘못이 없을까?
하나씩 따져보자. 현재 의협 임원 중 상근임원은 추무진 회장과 김록권 상근부회장 둘이다. 상근임원이기 때문에 진료를 보지 않는 이 두 사람 외의 나머지 의협 임원들은 모두 진료를 보고 있다. 의협 회무가 바빠 제대로 진료를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병원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협 임원진 중에서 심평원 서버다운 사실을 알아서 협회에 제대로 보고한 이들이 있을까? 있었으면 의협에서 즉시 이로 인한 회원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공지를 했을 텐데, 서버다운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의협에서 나온 안내 공지는 전혀 없었다.
또 하나 따져봐야할 부분은 회원들의 제보 부분이다. 의협 임원들이 회무로 인해 진료를 제대로 못 봐, 서버다운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협 회원들은 늘상 진료를 보고, 항상 심평원의 서버를 이용해 진료비 청구를 하고 DUR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회원들의 제보는 없었을까?
회원들의 제보가 있었든, 없었든 의협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회원의 제보가 없었다면 의협은 이미 회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오죽 믿음을 주지 못했다면 회원들이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협회에 제보를 하지 않았을까? 회장 이하 모든 의협 임원진이 통렬히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회원의 제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심평원 서버다운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을 회원들을 위해 안내공지를 하고 심평원을 규탄하고 비상 프로토콜을 만들라는 성명서가 나오는 게 수순인데 의협은 그 어떤 일도 진행하지 않았다.
항간에 의협이 DUR 시스템에 대해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안내공지를 하면 찬성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피해를 보는 건 회원이다. 협회의 입장이 어떻든 간에 협회는 존재 이유인 회원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한다.
고작 반대 입장 하나 지키려고 회원들이 입는 피해를 외면하는 협회를 과연 어떤 회원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이번 심평원 서버다운은 의협의 현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