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 붙는 가격이 중요한 것은 말 안 해도 안다. 얼마에 파느냐하는 문제는 기업의 이익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약에도 값이 있다. 약을 만드는 제약사는 그래서 높은 가격의 약값을 원한다. 보험약가의 경우 더욱 그렇다. 전문약이 아닌 일반약의 경우 관심이 덜하다. 너무 비싸면 안 사먹어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전문약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약값이 비싸면 건강보험재정이 크게 흔들린다. 환자 본인 부담도 당연히 늘어난다. 그래서 정부는 전문약의 가격에 개입한다. 제약사들은 그런 정부를 상대로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치열한 접촉을 펼친다.
연 천억 원을 하는 약이 있다면 개당 100원씩만 올려도 매출은 물론 순이익도 크게 증가한다. 그래서 가격을 놓고 정부와 제약사는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이다.
한 쪽이 손해를 보면 한 쪽이 이득을 보는 구조여서 어느 일방의 편을 들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약값이 비싸면 제약사에게 이득이지만 반대로 국민들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정약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적정약가에 대한 정부와 제약사의 입장차가 커서 대화로 이야기할 때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다. 이미 오래전에 시중에 나와 있는 약의 경우는 그래도 협상이 조금 순조롭다.
하지만 막 세상에 나온 신약의 경우는 양측이 좀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공전을 거듭해 출시시기가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다.
신약개발에 들어간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제약사와 아무리 그래도 생명과 직결된 약값이 그렇게 비싸면 신약이라 한든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맞서는데 서로 일리가 있다.
이런 가운데 복지부는 7일 혁신신약에 대한 약가제도의 개선안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제10차 무역투자 진흥회의 후속조치로 혁신형 제약기업 신규 인증과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지원 내용 등과 함께 나온 개선안은 논란을 예상해서 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나왔다.
사전에 불씨를 제거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를 받은 신약 또는 이에 준하는 신약(자료제출의약품 제외)의 경우 라는 내용이 변경됐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 또는 국내에서 생산 또는 사회적 기여도 등을 고려해 약제급여평가원회에서 인정한 경우‘ 로 바뀌었다. 국내 생산을 강조한 것이다.
단순 수입약은 신약이라 하더라도 제외된다는 말이다.
네 번 째 항목인 혁신형 제약기업 또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이에 준하는 제약기업으로 인정한 기업이 개발한 경우에 대해서라는 기존의 항목도 ‘혁신형 제약기업. 이에 준하는 기업. 국내 제약사-외자사 간 공동계약을 체결한 기업이 개발’로 변경됐으며, ‘공동계약’에 대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기술수출 계약 등’이라는 설명을 첨가했다.
이는 앞으로 혁신 신약 약가제도를 적용 받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생산해야 하고 혁신형 제약 기업이 아니면 국내사와 공동계약을 체결해야만 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공장은 이미 다른 나라로 철수하고 국내에는 마케팅이나 소수의 영업조직만 있으니 혁신형 제약기업에서 제외되는 다국적사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복지부의 약가 제도는 국내사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다국적사에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우대해 주겠다는 의미로 풀이할수 있다. 공장생산시설이 없고 영업조직도 거의 없어 고용효과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약만 가져와 파는 도매상 역할에 까지 우대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은 혁신 신약을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 제약사가 오히려 역차별 받는 것도 아니다.
다국적제약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가 개선안에 대해 유감을 발표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개선안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문제 삼으면서 글로벌 제약시장의 기본적인 신뢰인 ‘신약의 가치 인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을 지적한 점도 외자사의 입장에서 보면 수긍이 간다.
한국이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훈수도 새겨들을 만 하다. 앞으로 개정안이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을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