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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풀 메탈 자켓(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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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6.06.26  12: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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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모든 기억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총기수입의 기억을 어찌 잊으랴. 처음에는 총을 미국에서 수입해 오라는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인화기를 보수하고 점검하는 일을 총기수입이라고 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총열 덮개가 조금 깨지고 영점이 안 잡히고 간혹 격발 불량이 있었어도 1년 가까이 M16 개인화기를 그야말로 애인처럼 애지중지하면서 수입했던 오래 전의 기억이 새롭다.

침상에 각을 잡고 앉아서 기름 때 묻은 헝겊 쪼가리로 가늠자, 공이, 노리쇠 뭉치, 칼 꽃이 등을 갈고 닦고 기름 치던 순간을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틈만 나면 총기 수입을 했던 것은 총의 핵심인 총열과 약실 부분이 크롬 도금이 되지 않아 자주 부식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꼬질 대로 여러 번 쑤셔 온통 붉고 푸르고 희고 분홍빛이 돌던 ‘총구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총기수입을 하면서 이렇게 너무 자주 쑤셔 총열이 넓어지면 사격의 정확도도 떨어지고 사거리도 짧아지지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개방된 격실을 밝은 부분에 대고 왼쪽 눈을 감고 나머지 눈으로 거꾸로 든 총구를 들여다 볼 때면 나와 총이 총과 내가 한 몸이 됐다. 6조 우조 강선의 선명한 빛이 위로, 아래로 한 없이 말려 올라갔다 내려오는 광경은 황홀함 그 자체다. 천국보다는 극락의 세계에 가까웠다.

어떤 때는 총에게 말을 걸고 말을 알아들은 총이 무어라고 대답을 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막 발사된 총구에서 연기와 함께 진한 화약 냄새가 꽃향기처럼 퍼져 나왔다.

해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원제: Full metal jacket)의 훈련병 로렌스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총과 말을 거는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황홀한 빛을 급회전으로 통과한 총알이 얼마나 많은 심장을 뚫고 혹은 두개골을 쪼개 좀 전 까지 살아있던 생명을 죽이는데 쓰였는지 몸서리 쳐진다.

아마도 그렇게 열심히 수입했던 총은 월남전에서 많은 인명을 살상했을 것이고 그래서 인지 조금 불량했고 조금 더 선명했으며 조금 더 붉은 색을 띄었던 것이다.

로렌스도 열심히 수입했던 그 총으로 사람을 죽인다. 전장에서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보다 자신을 훈련시켰던 교관 하트만 상사( 리 이메이)에게 한 발, 그리고 자신의 입 속에 한 발, 두 발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열심히 수입했으니 격발 불량도 없다. 총은 이 때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총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8주간의 고된 해병대 훈련병 교육을 막 마치기 하루 전의 일이다. 어렵게 이등병의 자격을 획득하고 이 밤이 지나면 원하던 월남전으로 간다. 그런데 로렌스는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조커 (매튜 모딘)와 그의 동기들은 각기 배정받은 부대로 향한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거듭난 해병대원들이지만 적의 총알마저 피할 수는 없다.

전선에서 동료들은 하나 둘 죽어간다. 조커는 다행히 안전한 후방에서 선임이 불러주는 대로 신문기사를 작성한다.

아군의 사기를 복 돋우기 위한 거짓된 기사에서 실증이 난 조커는 전방부대를 자원하고 그는 종군기자로 최전선에서 전투를 생생하게 목격한다. 북베트남군의 구정 대공세이후 전선에 투입된 어느 날 조커 분대는 길을 잘 못 들고 저격병의 기습으로 동료들이 쓰러진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방금 전에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격병은 저 건물 어디인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사망자를 두고 함정을 빠져 나가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동료가 달려 나가니 남은 대원들은 엄호사격을 하면서 합세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사상자가 발생한다.

조커도 건물로 뛰어든다. 저격병은 그를 노린다. 하지만 저격병의 총알이 조커의 가슴깊이 박히기 전에 아군이 먼저 적의 가슴에 총알을 여러 발 박는다.

쓰러진 저격병은 앳된 소녀다. 죽여 달라고 외치는 그녀에게 동료들이 던지는 이년과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농담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조커는 권총으로 마지막 남은 소녀의 숨통을 끊는다.

감독: 스텐리 큐브릭

국가: 미국

출연: 매튜 모딘, 리 이메이,빈센트 도노프리오

평점:

: 숱한 베트남 영화가 나왔지만 이 영화는 많고 많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명작이다. 영화 전반부는 훈련병 교육이다. 교육과정은 적나라하며 극히 사실적이다. 교관은 인간이 아닌 독사 그 자체다.

훈련병을 더럽고 느리고 냄새나는 구더기나 쥐새끼로 보는 인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가 그런 것은 원래 그런 인간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훈련을 통해 적지에서 생존 본능을 키워주기 위해 그렇게 변했다고 믿고 싶다. 훈련병들이 자원해서 왔다고는 해도 육체의 고통과 그보다 더 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벅차다.

이등병 배지를 달기도 전에 자살자가 나온 것은 교육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렇게 비열한 교육을 받았으니 그들에게 움직이는 것은 사람과 동물이 다를 게 없다. 조준경에 들어온 것이 어린아이나 여자라고해도 방아쇠를 당길 순간 주저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이 추악했고 처참했던 것은 이런 냉혹한 과정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좀 부족하다고 해서 잠든 동료를 집단 린치 할 때는 지난 80년대 전방 부대 시절의 내무반 상황이 겹쳐졌다. 동료를 격려해 줄 때는 자상한 선임이 생각났다.

전쟁 영화는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M16과 M60의 소리를 지금도 구별할 수 있으며 아직도 현장에서 건재한 UH-1H 프로펠러 소리는 잠결에도 어디쯤을 날고 있는지 알아 낼 것만 같다.

철모에는 '본 투 킬'이라고 쓰고 가슴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배지를 단 조커의 행동은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굳이 전쟁은 나빠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안다. 전쟁은 말이 아닌 실제이기 때문이다.

금발이나 흑발이나 적발이나 긴 장발이나 곱슬머리나 파머 머리나, 자동기계로 싹둑 싹둑 잘려나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든다. 사각의 흰 팬티, 반팔의 흰 러닝셔츠 차림은 그 시절의 아픈 추억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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