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을 구입하러 오는 환자들로부터 ‘약국에서 가스 냄새가 난다’는 말을 또 들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외출 후 들어오는 가족들도 코를 벌렁거리며 양미간을 찌푸린다.
가스 냄새가 확실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머리가 무겁고 아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약국에서 사용하는 부탄 가스 난로의 누출 여부를 비눗물로 점검해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며칠 전엔 가스를 배달해 주는 거래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점검을 의뢰했다.
배달 기사는 부탄가스 난로를 점검할 생각은 않고 가스통을 두드려 보더니 가스가 거의 다 소모되었기 때문에 가스 냄새가 나는 것이니 새 것으로 교환하라며 자신만만하게 단정짓는다.
2년 전부터 부탄가스 난로를 사용한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가스 배달 기사의 주장이었다.
결국 약국에 있는 부탄가스 난로 사용을 포기했다. 그러나 가스 냄새는 계속 났고 약국에 달린 주방과 거실에서는 더욱 심했다.
순간, 얼마 전에 주방에 새로 구입해 설치한 가스 오븐이 신경에 거슬렸다. 집사람에게 그 당시 T 자 모양의 연결 관 부속을 새 것으로 바꾼 가스 배달 기사를 부르라고 일렀다.
기사는 며칠 전 약국의 부탄 가스 난로 점검을 했던 직원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뒤뜰에 있는 푸로판 가스통을 두드리며 ‘가스가 떨어져서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기사를 주방으로 안내한 후 그가 공사했다는, T 자 모양의 연결 관과 호스를 새로 연결한, 부분을 가리키며 비눗물로 점검을 해 보라고 지시했다. 비눗물을 붓는 순간 탁구공 만한 방울들이 계속 부풀러 올랐다. 가스 누출이었다.
사지에 소름이 솟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끔찍한 사고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가스 화재로 가옥이 전소했던 고모님이 떠올랐다. 외출 후 들어 와 가스 렌지 점화 스위치를 돌리는 순간 누출되어 집안에 고여있던 가스가 폭발하여 일어난 인재였다.
얼마 전, 부평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는 주문한 가정의 가스 배관이 아닌, 사람이 살지 않고 비어 있는, 아래층 엉뚱한 배관에 가스통을 연결하여 가스가 모두 새어나갔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과거가 되어버린 악몽을 굳이 들출 필요 없이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하루도 안된 시간에 겪은 가스 배달 기사의 안전 불감증이었다.
학창 시절,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일류 대학 출신 병사들을 전방에 배치하는 국방 당국의 처사에 대해 소중한 인재를 아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냉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전 불감증’ 이란 단어를 피부로 느낄 때마다 당국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과거에 있었던 수재(水災)나 화재(火災)의 재난(災難)을 인재(人災)로 결론짓는 경우는 불가항력이 아닌, 예방으로 능히 막을 수 있었던, 실수로 자초한 사고였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본 후 건너야 한다는 선조 들의 지혜를 백안시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결정 사항을 말로 옮기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 전에 세 번 더 생각하는 생활 습관을 지킨다면 이 땅에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의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