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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7-18 13:53 (금)
장이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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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와 전문가
  • 의약뉴스
  • 승인 2005.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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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업자의 장(匠)이 근성 때문에 얼마 전 한파(寒波) 때 낭패를 당한 일이 있었다.
신축한지 20여 년이 지나면서 상가 건물의 수도 배관에도 동맥경화증(?)이 시작되었는지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에 올려 보내는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상수도 관 내부 벽에 더께가 끼어 관의 직경이 좁아졌으므로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단다. 하지만 건물 내부 벽을 헐어 내장된 상수도 배관을 뜯어내고 다시 묻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방법은 건물 전면 외벽 위로 상수도 관을 신설하는 길밖엔 없다.

작업을 마무리하는 순간, 당연히 공사 과정에 포함되었으리라 생각하고 배관을 데워 결빙을 예방해주는 전열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업자는 ‘찬바람이 상수도 관을 감싼 보온재와 PVC 관을 미끄러지듯 넘어가기 때문에 전열선이 없어도 절대로 얼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다.
만에 하나 배관이 얼어도 종전처럼 전기로 녹일 수 없는 ‘하이텍’ 관을 사용했으므로 전열선을 필히 설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나를 향해 업자는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뭘 아느냐는 듯 한심한 표정을 짓는다.

얼마 전, 영하 14도의 한파가 닥쳤을 때 예상대로 상수도 배관은 꽁꽁 얼고 말았다. 업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는 날씨가 풀리는 대로 전열선을 다시 넣어 주겠다는 말만 남긴 채 언 수도를 녹이는 일이 밀렸다며 휑하니 사라졌다.

오히려 그를 부른 것이 사단이었다. 그는 수도계량기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내가 손수 잠가 놓은 수도 인입선 밸브를 오히려 열어 놓고 게다가 보온을 위해 계량기 함에 켜 놓은 백열등마저 꺼놓고 가버린 것이다.
결국 계량기까지 얼어 터져 수도사업소를 직접 방문해 교환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한파로 동파된 계량기가 넘칠 때의 계량기 교환은 시일을 기약할 수 없어 직접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악몽 같은 며칠이 흐른 후 업자는 전열선을 설치하기 위해 배관과 PVC 관을 해체하고 또 한 번의 공사 과정을 반복했다. 업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때문에 인건비는 요구할 수 없지만 재료비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재료비 몇 푼을 더 챙기기 위해 전문가의 양심을 져버린 채 부실공사를 감행했다는 결론이다.

몇 년 전, 임대한 주택의 수도 요금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 수도 사업소에 계량기 교체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수도를 잠그면 움직이지 않던 검침 바퀴가 수도를 트는 순간부터 빠르거나 느린 속도로 불규칙하게 돌았다.

수도계량기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니 누수검사를 해보라는 수도사업소 직원의 지시를 따랐지만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배관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직원의 조언에 따라 계량기 함에서 주방까지 배선공사를 새로 하였지만 집안 모습만 흉물이 되었을 뿐 마찬가지였다.

장판 밑 난방 호스가 터졌을지 모르니 방바닥을 파헤쳐 보라는 직원의 무책임한 말을 듣는 순간 과연 저 직원이 상수도 전문 공무원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수도 사업소의 선처(?)를 기대할 수 없어 계량기를 철거해 수도 계량기 시험소로 향했다. 정상인 계량기 검침 바퀴가 한 바퀴 돌아야 할 때 몇 바퀴나 더 돌아가는 불량품이란 결과가 나왔다.

수도사업소는 잘못 부과된 수도요금을 되돌려 주겠으니 직원을 문책하지 말 것과, 계량기 제조업자는 파산했으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만에 하나 그 들이 자기만 제일이라는 장이 근성이 아닌 전문가로서의 아량과 겸손함을 내게 베풀었더라면 이 엄동설한에 고생을 하지 않아도, 수도 배관을 거실 벽 외부로 흉하게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약사인 나 역시 약의 전문가가 아닌 장이 근성으로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할 환자들에게 오히려 아픔을 안겨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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