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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 한국위암센터 김진복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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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 한국위암센터 김진복 원장
  • 의약뉴스
  • 승인 2005.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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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김진복 원장(73)은 백발의 노의사다.

문득 수술복과 메스를 들고 있는 김 원장을 보노라면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작)의 산티아고 노인이 연상된다.

'인간의 생명'이란 거대한 물고기를 놓고 신과의 끊임없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운명 말이다.

그에게 불쑥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두어 달 전쯤이었을 게다.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었다.


◇"의사에겐 단 1%의 실수도 용납 안돼"

"수술에서는 99%의 성공은 없다. 1%의 실수로 누군가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탓이다. 훌륭한 의사가 되기 전에 인격자가 돼야 한다고 후학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도 그 이유다."

김 원장은 의사에겐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생명을 다루는 천직(?)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가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직(Call)을 꼽으라면 아마 영매와 의사란 직업일 게다. 그만큼 의사에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도 그런 천직을 가지고 있다. 평생 메스 하나로 사람의 몸을 열고 닫기를 수십만 번. 정확히는 14만33번(2004년 12월말 기준)이다. 38년 4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수술을 한 셈이다.

그렇게 손에 익은 메스지만, 항상 자신을 엄하게 다스린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수술실을 들어설 때마다 긴 호흡으로 숨을 고르곤 한다.

<사진2>

◇'위암수술'의 세계적 권위자

"수술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철저해야 한다."

이런 결벽은 생활신조와 맞닿아 있다. 성실, 정직, 근면, 책임완수. 이것이 그의 이름 앞에 갖가지 수식어를 붙게 했다. '위암수술의 대가', '위암수술의 세계적 권위자' 등이 그것이다.

그는 수많은 수술 례를 토대로 위암수술의 원칙을 정립, 진정한 의미의 근치적 절제술을 주장한 바 있다. 또 수술 후 조기부터 면역요법과 항암요법을 병행하는 '면역화학수술요법'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세계에서 먼저 평가받았다. 위암분야에서만큼은 일찌감치 내노라 하는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특이한 진료편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74년 서울대병원 응급실장 시절, 저격당한 육영수 여사를 진료했다. 1987년에는 방한 중인 콜롬비아 대통령이 갑자기 복막염을 일으키자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곧바로 수술을 집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남한 의사로는 처음 평양의대병원에서 위암수술을 시행한 적도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일 뿐"

"나는 주식이나 땅값이 치솟아 졸부가 된 사람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보통 의사다.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을 하고, 어느 정도 모인 돈으로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서민적인 기부라고 할 수 있다."

김 원장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서울대병원과 서울백병원에 1억원의 연구기금을 쾌척했다. 서울대병원은 그의 모교이며, 서울 백병원은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직장(?)이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도 모교인 충주고등학교에 1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평범한 가장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날 때부터 돈을 쥐고 태어난 건 아니다. 다만 이해심 넓은 가족들의 양해로 선뜻 거금을 희사할 수 있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나의 뜻을 이해해줬다. 내가 조금씩 저축한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했을 때,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평화로운 동의 없이는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그는 인생의 기쁨은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황혼 녘에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것을 나누는 기쁨보다 적은 것을 나누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3>

◇그는 '산티아고'가 틀림없다

"내 서툰 손안에 조그만 칼 하나가 쥐어졌다. 그 칼로 마음의 상처를 도려내는 심의(心醫)가 되고자 했다. 그 소망은 50년을 넘도록 가고자했던 유일한 나의 길이었다."(자서전 '외길'중에서)

김 원장은 '거대한 돛새치'를 잡기 위해 끝까지 메스를 들겠다고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의사라는 꼬리표를 떼지 않겠다는 의지다. 1년에 350명씩, 2년만 더 집도하면 1만5천례에 이른다. 그 뒤에는 조용히 쉬고 싶다고 했다.

'수술은 늘 100점 짜리가 돼야 한다.' 사람의 생명 앞에서 90점짜리 성적표는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제는 눈도 침침하다. 안경을 쓴지도 오래됐다. 간혹 손목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수술복을 입고 깊은 심호흡을 하고 나면 힘이 솟는다. 누군가를 위해 메스를 들 수 있다는 존재감 때문이다.

'거대한 돛새치'가 앙상한 뼈만 남더라도 그는 항해를 계속할 것 같다. 지금처럼. 그는 바다 위에서 조각배를 타고 커다란 작살을 움켜쥔 산티아고 노인이 틀림없다.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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