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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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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9)
  • 의약뉴스
  • 승인 2016.01.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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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스러운 것을 뽑으라면 결혼이 여기에 해당된다. 축제 분위기가 넘실대는 것은 당연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The marriage of maria braun)에서 이런 결혼과는 아주 동떨어진 방식으로 결혼식을 그려내고 있다.

하객이 넘쳐나는 고풍스런 성당이 아닌 폐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 결혼식장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식이 끝나기도 전에 포격 소리가 들리고 총알의 파편들이 식장 벽과 창문으로 들이닥친다.

혼비백산한 신랑 신부는 사랑한다는 키스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다. 이들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반나절하고 하루 밤 만에 신랑은 전쟁터로 떠난다. 편지도 휴가도 없는 기나긴 기다림이 신부 마리아 (한나 쉬굴라)의 일이다.

그녀는 다른 실종자 아내들과 마찬가지로 등에 남편 헤르만( 클라우스 로위시)의 이름을 새긴 실종자 팻말을 매고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신념으로 거리를 헤맨다.

젊고 이쁜 마리아가 과연 이 같은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낼 수 있을까. 어느 날 같이 전선에 투입된 친구의 남편이 살아 돌아오고 그로부터 남편은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전하는 남편 친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엄청나게 뜨겁게 발전하지는 않는다.) 마리아는 호구지책을 위해 미군전용 바에 출입한다. 그리고 마리아를 본 순간 꿈쩍도 않고 앉아서 술만 마시는 흑인 상사를 만난다.

그리고 임신한다. 그런데 무슨 애꿎은 운명의 장난인가. 가로로 잘린 시체를 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전장에서 남편이 살아서 돌아온다.

그것도 미군과 막 뜨거운 정사를 하고 있는 참이다. 남편은 문간에서 아내와 흑인의 수작질을 한 동안 지켜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남편은 형식적으로 느껴질 만큼 가볍게 마리아의 따귀를 한 대 때리는 것 말고는 크게 동요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벌거벗은 몸으로 덜렁거리는 물건을 내 보이면서 남편과 몸싸움 비슷한 것을 하던 흑인은 방금 전까지 사랑을 나누던 마리아가 휘두른 병에 머리통을 맞고 숨진다.

거북스런 재판 와중에서 남편은 죽은 흑인을 자신이 살해했다며 마리아 대신 감옥행을 선택한다.  실로 대단한 남편이다. 사지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의 배신 장면을 보고, 살인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기약 없는 감옥생활을 하는 남편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마리아는 사랑인지 죄책감인지 아니면 동정심인지 어떤 이유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어쨌든 면회를 주기적으로 간다.

죽었다던 남편이 돌아오고 살인까지 저지른 엄청난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졌지만 마리아는 의연하다.

그녀의 미모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세상을 향한 자신감은 차고 넘친다. 기차의 1등석에서 마리아는 프랑스의 성공한 사업가( 이반 데스니)를 만나 그를 간단하게 꼬드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사업수완을 발휘해 인정을 받고 적극적으로 그에게 구애를 하고 손쉽게 그의 정부가 된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해내기도 하는 등 경제가 낳은 마타하리로 불릴 정도로 활략이 대단하다.

마리아의 외도를 눈치 챘을 법한데도 남편은 탓하지 않는다. 성자가 된 수형자라고나 할까. 석방된 남편은 마리아가 오기 전 1시간 전에 호주나 캐나다로 떠난다는 쪽지를 남긴다. 내가 인간이 되면 그 때 같이 살자면서.

늙은 나이에 남자에게 빠진 푼수엄마가 눈에 가시인 마리아 앞에 매달 장미 한 송이로 날 기억해 달라던 남편이 이사한 집으로 찾아온다.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의도된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 남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리아를 대하는데 마리아는 들떠 있다. 앞으로 살 날이 많다며 남편과 이제 제대로 결혼생활을 하겠다는 각오가 얼굴 가득 넘쳐난다.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마리아는 성냥이나 라이터 대신 가스레인지 불로 담뱃물을 피운다. ( 두 번이나 그 장면이 나왔다.)

불을 붙이러 간 마리아. 안돼 라고 외치는 남편. 뒤이은 폭발음 소리. 마리아가 죽은 것이 분명하다. 그 순간 라디오는 독일축구가 헝가리를 3:2로 제치고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했다는 흥분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전한다.

간암으로 죽은 프랑스 사업가는 재산의 절반을 마리아에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같은 여인을 사랑하면서도 친구가 돼 준 헤르만에게 남긴다.

이같은 유언장의 소식을 전하고 돌아서던 회사 관계자들의 놀란 표정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무섭게 시작했던 결혼식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순간이다.

국가: 독일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출연: 한나 쉬굴라, 클라우스 로위쉬, 이반 데스니
평점:

 

팁: 출연진들의 이름이 붉은 자막으로 처리된다. 붉다는 것은 열정이기 보다는 비극의 다른 표현이다. 의심 많은 독자들은 자막의 글씨를 보면서 이 영화가 해피 앤딩이 아닌 비극이 될 것임을 눈치 챈다.

누구도 마리아가 바에 나가고 흑인을 사랑하고 임신하고 프랑스 사업가의 정부가 된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남편이외의 다른 남자 품에 안겨 기쁨을 누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살기 위해, 단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벌이는 어떤 행동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경험으로 안다.

마리아가 주춤거릴 때 바의 여자는 이런 말을 한다. 넌 여기 있고 헤르만은 없어. 죽었을지도 몰라. 사랑은 감정일 뿐이다. 진실이 아니라고. 여기선 배치무(흑인)가 먼저야. 이 영화는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목록에 올라있다.

전반부의 빠르고 세련된 감각은 마리아가 사업가와 벌이는 애정행각 부분에서 방향을 잃고 느슨하고 지루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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