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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아귀레, 신의 분노(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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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아귀레, 신의 분노(1972)
  • 의약뉴스
  • 승인 2015.12.2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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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봐야지, 꼭 보고 말거야! 이런 영화 한 두 편씩은 목록에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The Wrath Of God) 가 그랬다.

원하던 영화를 보게 되는 그 순간의 흡족한 기분은 저절로 떠오르는 가벼운 미소가 증명한다.

금발의 머리 위에 눌러쓴 철모는 은빛으로 빛나고 얼굴 중앙의 오뚝한 콧날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의 흰자위는 분노한 아귀레(클라우드 킨스키)가 맞다.

아귀레의 품에 기댄 예쁜 소녀의 붉은 옷 사이에는 촉이 긴 화살이 박혀있고 ‘선데이 타임스’의 이런 글귀가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A film which haunts you".

뚜껑을 열고 CD를 넣고 DVD 표지는 치우지 않고 옆에 두고 자, 이제부터 독일의 명감독 베르너 헤어초크 와 그가 뽑은 최고의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가 펼치는 명연기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산은 높고 골은 깊다. 이런 장소는 안개가 자주 낀다. 급경사를 따라 일단의 무리들이 굽이친 길을 따라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맨몸으로도 힘겨운 하산 길에 왠 짐이 이리도 많은지 금방이라도 엎어질 듯 위태롭다.

풍광을 즐기는 나들이객이나 등산족이 아닌 것은 분면하다. 이들은 짧은 오프닝 자막에서 언급한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가는 스페인의 대규모 원정대다.

1560년 페루산맥을 출발한 원정대는 원주민들이 만들어낸 아마존 지류의 늪지대로 가는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군인도 많고 쇠사슬에 묶인 노예도 많고 짐승 라마에 얹힌 짐도 많은데 가는 길은 험난하니 이 여정의 우여곡절은 이만저만이 아닐 터.

거기다 우아한 귀부인이 탄 가마도 있고 병사들은 바퀴가 달린 전차와 대포까지 끌고 있다. 나무 상자 안에는 닭과 돼지가 우글대고 십자가를 목에 건 검은 옷의 신부도 있다.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안데스 산맥의 마지막 산길에 접어든 피자로의 군대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곳은 말로만 듣던 원시림이 눈 아래 펼쳐지고 절벽과 바위와 나무와 산과 강만이 존재하는 신비로움이 인간세계와는 사뭇 다른 풍광을 그려놓고 있다.

과연 이들 원정대는 살아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병사들은 가벼운 감기에도 죽어 나가고 죽는 숫자가 많아지자 가톨릭식의 매장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 해 마지막 날 피자로 군대는 완전히 지쳤고 식량도 떨어지고 지형은 더 험악해지자 애초 계획을 수정해 선발대를 조직한다.

40명의 원정대장으로 우르수아( 뤼게라)가, 이 임무에 적합한 역량을 보여준 아귀레가 부관으로 임명된다.

원정대장의 부인과 아귀레의 15살 된 딸 그리고 이교도에 말씀을 전파할 신부(델 네그로) 그리고 스페인 왕가를 대표해 귀족 한명이 동행한다.

선발대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흙탕물의 강을 따라 뗏목을 저어간다.

새소리 구름 안개 산 급류 그리고 소용돌이. 급류에 휘말린 뗏목은 제자리를 맴돌다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몰사하고 부비트렙에 걸린 병사는 하늘로 치솟으며 피를 뚝뚝 흘린다.

죽은 자들을 위한 매장 준비가 거론되는데 아귀레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대포를 발사해 뗏목과 뗏목위에서 죽은 시체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낸다. 병사들은 겁에 질린다. 다음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아귀레는 결국 반란을 일으켜 우르스아를 나무 감옥에 가두고 자신이 대장행사를 한다. 남편이 죽을 것을 안 부인은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검은옷의 사제는 근엄한 표정으로 '교회는 항상 강한 자의 편'이라는 말로 무시한다.

절대권력을 쥔 아귀레는 귀족을 왕으로 뽑는 형식적 절차도 거친다. 스페인과의 관계를 끊자며 아귀레는 이렇게 외친다. '행운은 용감한 자에게 미소짓고 겁쟁이에겐 침을 뱉는다'.

이제 선발대는 1주일 만에 돌아오라는 본대의 명령은 잊고 오로지 늪지대에 있다는 엘도라도를 향해 거친 항해를 계속한다.

뗏목을 타고 출발한 아귀레 부대는 강을 따라 가다 육지에 상륙해 식인종들을 만나기도 하는 등 여정을 계속한다. 그러는 가운데 누구도 똑바로 서 있는 것을 힘들어 하는 병사들은 고열과 환상에 시달려 죽고 원주민의 화살에 맞아 죽고 병에 걸려 죽는다.

배신을 모의한 병사들은 아귀레의 손에 죽고 황제도 죽고 손이 뒤로 묶여 병사들에게 끌려간 우르수아도 죽고 딸도 죽는다.

이렇게 죽어 나가자 마침내 뗏목에는 아귀레만이 남는다. 그는 작은 원숭이 떼가 점령한 뗏목에서 원숭이 하나를 손에 잡고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나, 신의 분노는 내 딸과 결혼해 그녀와 함께 지구상에 한 번 도 나타난 적이 없는 가장 순결한 왕조를 이룰 것이다. 아귀레는 신의 분노다.

국가: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
출연: 클라우스 킨스키, 뤼게라,
평점:

 

팁: 아귀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의 선 굵은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다리를 조금 절며 삐딱한 시선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바라보는 눈은 광기에 가득 차 있다.

기어코 엘도라도에 도착하고 말겠다는 강한 집념의 화신으로 부족함이 없다.

촬영 내내 그는 힘들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출연진들이 고생했겠지만 주연인 그가 겪었던 힘든 촬영 과정은 이미 영화로 보아온 터다.

후일담이지만 감독은 도저히 촬영을 이어 갈 수 없다는 킨스키의 말에 권총을 꺼내 들고 협박했다고 한다. 총알 두 발이 있는데 한 발은 너에게 나머지 한 발은 나에게 라고 했다나. 어쨌든 촬영은 무사히 끝나고 영화는 완성됐다.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고 나온 이 영화는 영화사의 고전 명작 반열에 올랐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걸작 <지옥의 묵시록>(1979)을 만들었다. 배경이 베트남으로 바뀌면 광기에 사로잡힌 말론 브란도가 강을 따라 명령을 수행하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두 명의 젊은 여자가 등장하지만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는 것처럼 비친다. 아귀레의 딸은 죽을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부인은 말을 하지만 영화를 이끄는 중심축과는 거리가 멀다.

화면은 느리고 정체되고 지루하다. 충격적인 장면도 나온다. 잘린 목에서 뱉다 만 숫자가 소리로 터져 나오는 장면이다. 단칼에 목이 떨어져서 그렇다 쳐도 몸뚱이와 분리된 목에서 입이 벌어지고 말을 하고 눈을 몇 번 깜박일 때면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소름이 돋는다.

아귀레 앞에서 도주를 도모하면 누구든 몸이 198조각으로 잘리거나 155년간 감금되거나 아니면 이처럼 찰나의 순간에 목과 몸이 둘로 갈라지게 된다.

위대한 반역자 앞에 반역한자는 이 세상에 누구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클라우스 킨스키의 딸은 아버지만큼이나 유명한 나스타샤 킨스키다. (나스타샤 킨스키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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