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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칠수와 만수(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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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칠수와 만수(1988)
  • 의약뉴스
  • 승인 2015.12.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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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벌써 주인공이 결정 났다. 칠수(박중훈)와 만수(안성기)가 영화의 핵심 인물인데 성이 빠진 이름이 왠지 촌스럽지 않은가.

이름만 봐도 이들은 사회지도층인사라기 보다는 사회열외층이라는 짐작이 간다. (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아니나 다를까.

칠수의 아버지는 동두천 하우스 보이다. 주제에 사내랍시고 본처와 이혼 한 후 포주와 사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돈도 없으면서 맨 날 술타령이다. 칠수가 이런 아버지를 존경할까, 아니면 부끄러워할까.

만수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무려 수 십 년을 살고 있다. 아마도 살인자 이거나 그에 준하는 흉악범일 게다. 헌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반공법으로 걸려든 양심수인 모양이다. 그래서 만수는 연좌제에 얽혀 제대로 된 직장조차 잡을 수 없다.

이 두 인생이 개천에서 용 나겠는가,  아니면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누구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찌질한 삶을 살겠는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칠수는 영화 간판을 그리는 환쟁이 인데 가불도 안 해주자 일을 때려 치고 도장공인 만수에 빌 붙어산다. 만수를 아저씨 형님 형이라고 부르는 붙임성이 좋은 칠수는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뛰는 여대생 진아(배종옥)와 연애를 하는데 진아는 그와 신분이 다르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형이 보내는 초청장이 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으로 진아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 잘 될 리가 없다. 그림을 그려주고 미대생이라고 속이는 것도 일 이틀 이지 매번 속일 수는 없다.

칠수가 진아와 찢어 질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만수는 칠수보다는 좀 세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십보백보다. 둘은 일거리가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먹는다.

어느 날 바지춤에 손을 넣고 손장난을 치던 칠수와 머리를 감던 만수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둘은 환호하는데 이것은 일당을 간절히 바라는 노동자들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가득한 차들 사이를 여유롭게 달린다. 그들의 얼굴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

둘은 거대한 광고탑에 매달려 그림을 그린다. 입술이 붉은 여인이 배경인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마시고 싶다는 욕망이 일도록 그려야 한다는 광고주의 주문을 받아 놓고 있다.

일하다가 두 사람은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향해 푸념한다. 간혹 주먹질도 하고 술병을 들고 흔들기도 한다. 한데 그게 사단이 될 줄이야.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사람들은 모여들고 경찰과 기자들도 자리를 잡았다. 소대병력 규모의 군인도 오고 두 사람의 발아래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인데 칠수와 만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모여 있는 아랫사람들은 생각한다. 농성이다, 시위다, 노사불만이다, 화염병을 들었다, 결국 투신자살 할 것이라고 수군댄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딱 그 짝이다. 당시 사회분위기 잘 살아나는 대목이다.

국가: 한국
감독: 박광수
출연: 안성기, 박중훈, 배종옥
평점:

 

팁: 박광수 감독의 대뷔작이면서 문제작이다. 1988년 이전 억압된 정치상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안성기, 박중훈이라는 두 배우를 통해 어렵지 않고 쉽게 끌고 왔다.

젊은 시절의 두 명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본전치기 이상이다. 간혹 이음새가 느슨하고 끊어질듯 위태롭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영화가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거기다 소통과 단절, 안개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봤으니 감독의 용기는 실로 대단하다.

포장마차에서 나와 안성기가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라고 시작하는 김민기의 ‘친구’를 부르는 장면은 말 그대로 어둡다.

그림자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보는 사람들은 대체 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험한 일이 닥칠지 불안하기만 하다.

사이렌 소리에 맞춰 지나가던 차와 시민들이 모두 피신해 텅 비어버린 광하문 광장의 모습,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놈이 얻어터지면서 일을 하느냐, 간판이나 그리고 있으니 사람 알기를 흙싸리 껍데기로 아나 하고 지르는 대사는 위험하다.

알고 보면 괜찮은 놈이다, 일단 한 번 써보세요 라는 말에 사람은 알고 보면 안 돼, 보고 알아야지 하는 대사는 멋있다. 방위 출신이면서 군대 있을 때 유격조교라고 떠벌이거나 밧줄 타봤냐는 질문에 내 별명이 동두천 타잔이라고 받아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남성 영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당만이 있는 국회는 생명이 없다거나 특별가석방 3일을 거부했다는 소식에 서러워서 밤새 울었다는 신세한탄은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자포자기 심정을 대변한다.

바람 불지 춥고 배고프지 재미도 없지 하는 푸념에서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두 사람은 옥상의 꼭대기에서 서서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에게 펀치를 날린다.

모두 다 내 이야기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높은데 있을 때 큰 소리 좀 쳐보자 야, 이 새끼들아 우리 형님 말씀 안 들리냐 난 박만수다 난 장칠수다 너희들 정말 그럴거야 그렇게 밖에 못 하겠어 라고 울분을 토하는데 이는 가진 게 없어 두려울 게 없는 밑바닥 인생의 막바지호소다.

그러면 경찰은 확성기로 이 사회를 밝고 긍정적으로 보자, 폭력을 쓰지 말자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이성을 찾아라 라고 자제를 당부하고 모여 있는 사람들은 마치 내 집 자식처럼 수심이 가득하다. 이 장면은 코믹하다기 보다는 사뭇 경건하다.

헬기도 떴다. 거대한 아파트 군락을 내려다보며 두 사람은 절규한다. 대체 우리가 뭘 잘못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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