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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이의신청부 홍월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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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이의신청부 홍월란 부장
  • 의약뉴스
  • 승인 200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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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마다 빼곡한 진료비 명세서. 스물 다섯 나던 해부터 봐오던 것들이다. 이제는 조금 친근해질 법도 한데 서류철을 넘길 땐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세월만 가고 나만 남는다. 이런 시구 하나쯤 가슴에 담고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홍월란(50) 부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미소엔 천진난만함까지 묻어난다. 이유가 뭘까. 기자는 궁금증이 생겼다.

◇"천사의 집, 그 가난한 영혼들"

홍 부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신언항)의 기독선교회 회장이다. 벌써 3년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도 고양시 향동에 위치한 '천사의 집'을 방문했다. 선교회 이름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알게 된 곳이다.

그 곳에는 42명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8개월짜리 젖동이부터 칠순 할머니까지 구성원은 다양하다. 덕양구청에서 나오는 보조금(25∼30만원)을 받는 이들은 고작 18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대개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다. 몸도 불편하다. 누군가 '가난한 영혼들'을 천사의 집 앞에 버리고 간 것이다.

"천사의 집 원장이 그랬다. 도와주면 도와주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생활한다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더 어려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거렸다. 선교회 회원들은 매월 5만원씩과 30만원 상당의 쌀과 보리를 연 2∼3회씩 도와주고 있다. 비록 중고지만 아기 옷이나 장난감도 선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다."

◇"키 작은 이웃 위한 손길 절실"

홍 부장은 백방으로 이들을 도와줄 궁리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현재로선 뾰족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천사의 집은 그린벨트 존에 묶여 있어 인가를 받지 못한다. 또 구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으려면 방과 거실, 화장실 등의 개수가 규정에 맞아야 한다. 게다가 신식건물로 새로 지어져야 한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선뜻 도와주는 기업도 없다. 법인이 아니어서 기업이 세금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탓이다.

"올해 봄에 방문했을 때 눈에 익혔던 갓난장이가 가을에는 보이지 않아 원장에게 물었다. 원장은 조용히 대답했다. 하늘나라에 갔다고. 지금 선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다. 내년 봄쯤 그 지역이 그린벨트에서 해제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곳엔 진짜 천사가 산다"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찬송가를 옹알거릴 땐, 여기가 정말 천국이고 천사의 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동들이 신기한 듯 안경을 빼앗거나 안아달라고 조를 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처음엔 근처에도 오지 않던 녀석들이 말이다."

홍 부장의 미소에서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천사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녀석들이 스스로 '자폐'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소 지을만하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무실에 둥덩산처럼 쟁여있는 서류철은 까맣게 잊게 된다. 소외되고 불편한 이들에게서 되레 평안을 찾는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정확한 청구, 행정비용 낭비 줄여"

다시 현실로 돌아온 홍 부장은 딱딱한 심사업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수북히 쌓여있는 서류철. 그 틈바구니를 뛰어 다니는 직원들만 40명이다. 가끔 청일점인 남자 직원이 눈에 띄지만, 거지반 여성이다. 심사업무의 특성상 담당 직원은 대개 간호사 출신이다. 이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 간호사가 압도적인 만큼 어쩌면 당연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이의신청 건수를 줄이기 위해 단순오류(A, F, K)건 전산자동화시스템 개발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 결과 이의신청 건수가 대폭 줄어들어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근에는 이의신청 전 단계인 재심사조정청구 시스템을 개발, 내년 2월부터 전면 실시할 계획이다. 요양기관이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할 경우 이의신청 건수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의신청 최소화"

업무 가운데 제일 힘겨운 것은 심사청구 지원이라고 홍 부장은 털어놓았다. 요양기관이 이의신청 조정결과에 불복하고 심사청구를 할 경우 심평원은 그 답변서를 복지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심사청구는 이의신청 업무에 비해 엄청난 시간비용과 행정력을 필요로 한다. 심사청구 1건과 이의신청 60건을 처리하는 것이 맞먹을 정도다.

현재 심사청구 전담인력은 15명. 지난 9월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각 부서에서 차출된 직원들이다. 당초 심사청구 업무는 2000년 200여건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3천여건으로 폭증했다. 전담반이 생긴 것도 그 탓이다. 다만 기간이 5개월인 임시팀이다. 가끔은 업무가 지연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따라서 전담반을 상설화시켜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홍 부장은 강조했다.

"우리는 이의신청과 심사청구 건수를 줄이는 게 최대 목표다. 가능하면 심사청구까지 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1차 진료비 심사청구 단계에서부터 요양기관이 심사기준에 맞도록 서류를 첨부하면 일손이 크게 줄어든다. 그건 요양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종교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업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지나친 '결벽'이란 직업병(?)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진료비에 대한 정확하고 투명한 심사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이 업무를 무난히 수행해냈을 때,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성경구절을 날마다 입속으로 되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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