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치료제가 없다고 판단한 의료진에게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A환아의 부모가 B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7107만 3804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07년 1월경 출생한 A환아는 수유량이 감소하고 계속 잠만 자는 상태를 보이다가 결국 의식이 기면상태가 되면서 호흡곤란 및 청색증을 보여 구급차를 타고 B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의료진은 A환아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상태가 악화되자 심폐소생술로 호흡과 맥막을 회복했다.
당시 병원 측은 고암모니아혈증 치료제(sodium benzoate, arginine, phenylacetate, sodium phenylbutyrate 등)를 구비하지 않고 있었고, 의료진은 이를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의료진은 A환아의 혈중 암모니아 수치가 줄어들지 않자 락툴로오즈 제제의 경구투여와 관장을 2시간 마다 시행, 2월 7일 162㎍/㎗까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정상치를 초과했다. 의료진은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A환아를 C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C대학병원으로 전원된 A환아는 고암모니아혈증 치료제를 투여받았으며, 혈중 암모니아 수치가 1090㎍/㎗까지 오르자 혈액투석을 받기도 했다. 요소회로대사이상 질환자용 특수분유를 섭취하며 치료받은 후 퇴원했다.
A환아는 요소회로대사이상질환 중 카바밀합성효소(CPS) 결핌증 진단을 받았고, 과암모니아성 공포성 뇌병변, 뇌간 및 소뇌 위축과 사지 마비·의사소통 장애·일상생활 동작 및 보행 장애 상태를 보이고 있다. 안과적으로는 독성 황반변증·시신경 위축으로 인사 주시불능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A환아의 부모는 “B대학병원 의료진은 A환아에 대한 혈액검사를 통해 고암모니아혈증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42시간동안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그 후에도 병원 의료진은 치료효과가 적은 락톨로오즈 투여 및 관장만 시행하는 등 고암모니안혈증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진은 A환아의 상태, 고암모니아혈증으로 인한 뇌손상 가능성과 즉각적인 치료의 필요성, 전원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환아의 부모의 손을 들어줬지만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B대학병원 의료진은 A환아의 고암모니아혈증을 발견했음에도 즉시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이와 같은 과실로 A환아의 뇌 및 신경손상 등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B학교법인 의료진이 요소회로대사이상질환에 따른 급성기 고암모니아혈증을 치료하기 위해 혈액 투석 또는 복막 투석을 하고, 고암모니아혈증 치료제를 주사해 암모니아 수치를 낮춘 다음 저단백 고탄수화물식과 고암모니아혈증 치료제 경구투여와 카바밀합성 효소 결필증 치료를 위해 arginine을 투여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1999년경부터 경북대병원·일신기독병원·영남대의료원 등에서 고암모니아혈증 치료를 위해 sodium benzoate 등의 치료제를 사용한 사례가 학회지에 발표됐다”며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는 병원이 있었음에도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고 성급하게 단정한 채 신속히 전원시키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1심 재판부는 “뇌손상 가능성·지체 및 지적 장애 가능성·전원 가능성 등에 대해 설명의무가 부족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선천성 요소회로대사이상질환은 유전성 대사질환의 하나로 발생빈도가 10만 명 중 1명일 정도로 희귀한 질환으로 2007년 당시 모든 병원이 전문가와 치료제를 확보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카바밀합성효소 결핍증의 경우 신생아 시기에 경련·호흡곤란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생존시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고 밝혔다.
또 내원 당시 이미 비가역적인 뇌손상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많은 점 등을 고려, 병원 측의 책임을 10%로 제한했다.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비슷한 논리로 병원 측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1심보다 손해배상 비용이 약간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