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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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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 의약뉴스
  • 승인 2015.10.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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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신파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제가 심어놓은 '신파'의 뿌리는 이토록 깊고 질기다.

유부남의 애를 낳고 남몰래 키워 온지 8년. 드디어 혜영(문희)은 씨의 주인공인 신호(신영균)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아들 영신( 김정훈)을 맡긴다.

신호의 아내 (전계현)는 부처님처럼 인자하여 영신을 내 아들처럼 키운다. 신호 역시 본처의 남매 못지않게 영신을 대한다. 영신은 다음에 잘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됐을까.

신파의 정석을 따르자면 영신은 금의환향해야 맞다. 그리고 고생에 찌든 혜영 앞에 마치 토색질을 일삼는 고을 원님을 격파하는 암행어사처럼 쨘! 하고 행차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93분이란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지 그가 성장해서 멋진 직업을 가진 청년으로 자라는데 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아니 8살에서 멈춰 선다.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관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다는 점은 다른 신파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고난을 이겨나가는 과정도 잠깐 이지만 보여준다. 그러나 영신은 성장하는 대신 친모를 찾고 친모는 그를 데려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간장이 끊어지는 생이별을 마무리하니 해피 앤딩처럼 보인다.

울다가 지친 관객들이 박수를 칠만도 하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모자가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 살게 된 것을 축하해줄만하다.

그러나 그 뿐이다. 영신은 넓은 정원이 있는 2층집에 살면서 고기반찬을 수시로 먹을 수 있는 상류층의 삶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부르조아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희극이 아닌 비극의 신파극인가.

유치원 교사인 혜영은 신호와 결혼하는 단꿈을 꾼다. 만남이 잦을수록 혜영은 작년부터 적금을 부은 돈 10만원을 주고 방 두 칸 짜리를 얻겠다고 신호에게 말한다. 그래야 선생님 시중들기도 편하다면서. 한마디로 신호와 살림살이의 부푼 기대로 몸이 달아있는 것이다.

하숙을 하는 신호는 하숙집 밥 대신 혜영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마냥 기쁘다. 서로 기뻐하니 둘은 선을 넘는다. 하숙집 주인은 남의 손을 타기 전에 어서 잡으라고 신호를 다그친다. 혜영의 고향에서는 이런 내용도 모르고 혼사를 재촉하고 신호는 그런 혜영에게 미안하다.

사실을 말하려 하나 유부남이냐고 묻지 않는 이상 먼저 꺼내기가 어렵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나는 유부남이다’ 라고 배포 있게 말할 남자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많지 않다.

기회를 보는 어느 날 신호의 부인이 전보를 치고 그날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용산역으로 상경한다.

그리고 두 여자와 한 남자가 한 공간에서 마주선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한바탕 쌍욕을 퍼부으며 난장판이 벌어져야 마땅한데 두 여자는 서로 공손하다. (신호의 아내가 나에요, 저 여자예요, 남자답게 분명히 말하세요“ 라고 쏘아 보기는 한다. )

혜영과 신호의 아내는 서로 자기가 나가겠다고 양보할 기세다. 참으로 참한 여인네들이다. (신호의 여복은 역사에 남을만하다.)

그리고 앞서 말 한데로 그 시간이 흘렀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슬픈 밤의 어느 날 영신은 엄마를 찾아 나서고 극적으로 만난다. (처음에 혜영이 우산을 쓰고 등장했을 때 귀신이거나 아니면 꿈속의 모습인줄 알았다. 이후 영화는 처절한 신파극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혜영이 백화소주 글자가 새긴 파라솔의 기둥을 잡고 우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

그리고 둘은 신호와 큰엄마와 이복 자매의 환송을 받으며 기차에 오른다.

신호의 친구로 나오는 외과의사 역의 박암은 혜영과 신호의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조연을 제대로 해냈다. 허물기 전의 중앙청과 미 대사관 건물이 눈에 띈다.

국가: 한국
감독: 정소영
출연: 문희, 신영균, 전계현, 김정훈
평점:

 

팁: 혜영의 고향은 강원도 동해시 묵호다. 묵호는 항구다. 항구에는 등대가 있고 그 근처에 < 미워도 다시 한 번> 홍보물이 서 있다. (묵호항은 서해안의 다른 항구와는 다른 이색적인 맛이 있다. 언덕에 줄지어 있는 어부들의 집을 배회하면서 출렁이는 동해바다를 감상하다보면 혜영과 신호의 러브스토리에 잔웃음이 인다.)

이 영화는 신파라고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1960년대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국도극장에서만 개봉 64일 만에 36만 명의 기록적인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 당시 서울인구가 380만 명임을 감안해 보라.) 한마디로 한국영화의 전설을 쓴 것이다.

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끝 무렵에 나와 이후 20여 년 간 길고 긴 침체기를 예고하듯 더 오를 수 없는 꼭대기에 선 것이다.

당시 한국은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가히 막장의 3요소라 불릴만한 미혼녀 유부남 사생아를 내세워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던 슬픈 국민들의 눈물샘을 여지없이 찍어 냈던 것이다.

재미를 본 정소영 감독은 이후 <미워도 다시 한 번 속>(1969) <미워도 다시 한 번 3편>(1970)등 해마다 속편을 내고 2001년에는 이승연을 주연으로 내세워 <미워도 다시 한 번 2002>를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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