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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맨발의 청춘(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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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맨발의 청춘(1964)
  • 의약뉴스
  • 승인 2015.09.2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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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벽은 높고 깊어 뛰어 넘거나 타고 올라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바로 금수저 생활을 하고 흙수저는 흙수저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노비제도가 사라진 현대인의 삶도 이러할 진대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의 일이라면 두 말해 무엇 하겠는가. 김기덕 감독이 <맨발의 청춘>을 내왔을 당시 한국은 전쟁의 참상이 지난 지 10여년이 흐른 상태였다.

사회가 안정을 찾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이니 거리에는 주먹 센 자가 행세께나 하고 있다. 두수( 신성일)는 금수저 대신 흙수저를 달고 세상에 나왔으니 그가 할 일은 밑바닥 생활이다. 건달이고 깡패가 딱 어울린다.

달이파 ( 건달을 줄여 그렇게 정한 듯 했다.) 두목 ( 이예춘)과 바로 아래 부두목 격인 덕태(윤일봉)와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두수는 밀수품을 전달하라는 두목의 명령에 따라 인조 팔에 시계를 넣고 거리로 나선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지나는 여자를 둘러싸고 행패를 부리는 얼간이들이 간혹 있었다.

두 명의 여자가 명동 인근에서 세 명의 남자들에게 가방을 뺏기고 희롱을 당하는 것을 본 두수는 멈칫 거리다가 칼든 자에게 겁도 없이 주먹을 날린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두수가 구해준 여자는 부유층의 딸로 이름은 요한나( 엄앵란)다. 이후 두 사람이 사랑을 하리라는 것은 장황하지 얘기하지 않겠다.

요한나는 단지 자신을 구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겹고도 끈질기게 모든 사람이 송충이보다 싫어하는 날 건달 두수를 쫒아 다닌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들의 심리는 여자가 달라붙으면 떼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두수도 여자를 젖먹이 떼듯이 밀쳐 내지만 요한나는 아랑곳없이 두수에게 달려든다.

아무리 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잘 만든 엿이거나 진흙논의 찰거머리가 바로 요한나다. 정말 대책 없이 두수를 쫒아 다닌다.

신분도 취미도 성격도 이념도 철학도 어느 하나 같은 게 없어도 무작정 쫓아오는데 이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서 일까. 영화에서는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여자가 벌이는 구애행동에 짜증이 한계에 이르러 문을 박차고 나가야 마땅하나 당시 관객들은 단 한사람도 그러지 않았다. 관객들은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고 심지어 우는 관객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서울인구가 350만 명이었는데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부려 21만 명 이었다고 하니 가히 인기가 실감난다. 줄 서서 영화를 보는 진풍경이 처음 만들어 졌으며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도 이 영화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두수에게 한 방 먹은 얼간이 중 한 명은 자신의 칼에 찔려 죽고 경찰의 추격이 시작된다. 두목은 조직을 지키기 위해 두수에게 자수를 명령하고 두수는 자신이 다 뒤집어쓰겠다며 제발로 경찰을 찾아 나선다.

(조사하면 다 드러난다며 순순히 자백하라고 점잖게 취조하는 3명의 형사보다 두수의 기세가 더 등등하다. 이 역시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 상황인데 관객들은 그런 두수의 빈정거림, 능청, 여유에 열광했을 법하다.)

두수의 똘마니로 나오는 아가리( 트위스트 김)가 우리나라 최초의 댄스가수인 이금희가 부른 ‘키다리 미스터 김’의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은 일품이다. (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맥이 빠졌을 것이다. 봐주기 어려운 장면이 연속될 때 쨘! 하고 트위스트 김이 나타나 분위기를 바꿔준다. 가죽잠바에 가죽 모자를 쓰고 길다란 목걸이를 두른 그가 히죽 웃으면 절로 따라 웃게 된다.)

어쨌든 열흘간 콩밥을 먹고 나온 두수는 집으로 찾아와서 기다리는 요한나의 지칠 줄 모르는 대시에 마음이 흔들린다.

서대문에 계신 형님이 주는 거액의 돈도, 돈이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쾌하다며 마다 할 만큼 컸던 기개는 점차 사라지고 없다.

두목에게는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면서 아랫사람인 아가리는 개 패듯이 팬다.

지나는 행인의 구두를 벗겨 강제로 창갈이를 해 돈을 갈취하고 취객을 상대로 퍽치기를 한다. 데이트 비용을 마련한다는 그럴듯한 핑계가 있지만 ‘맨발의 청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접한 행동이 두수가 하는 짓거리다.

‘더 링’ 등 권투 잡지 밖에 모르는 그가 자기 전에 성경책을 읽고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 것은 순전히 요한나와 가까워지기 위한 것이다. 요한나는 그 반대로 두수가 읽는 잡지를 읽고 주스를 먹는 대신 위스키를 마신다.

( 여기서부터 영화는 삼천포로 더 깊숙히 빠진다. 잔인하고 집요하게 그러나 원칙은 지키고 정의는 실천하는 두수의 모습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음식을 먹으며 반항하는 모습은 잠깐 보여주지만 그것으로 그만이다. 나쁜 짓을 할 때 하더라도 옳은 것에는 굽히지 않는  젊은이의 꼴통 기질은 없다.)

그런다고 근본이 바뀔 수야 있나. 레슬링 대신 클래식 연주회에 간다고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는 없다.

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죽고 어머니는 양공주인 ‘불가촉 천민’에 버금갈 두수의 신분은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이다. ( 그런데 두수는 간혹 영어 단어도 사용하고 전하는 언어는 논리정연하다. 깡패가 쓰는 언어가 아니다. )

퍽치기로 잡혀 형무소에서 나온 두수를 요한나는 또 기다리고 있다.

취미로 사냥을 하는 그녀의 세련된 엄마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당연한 일이지만 결사반대한다. 직업도 없는 날건달에게 불어를 배울 만큼 재능 있는 딸을 줄 리가 있나.

엄마는 두 사람을 떼어 놓기 위해 아빠가 대사로 있는 태국으로 요한나를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요한나가 그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예상대로 요한나는 태국 행 비행기를 타는 대신 두수와 과천의 물레방앗간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둘은 음독자살한다. 검시관은 두 사람의 육체가 순결하다는 것을 유독 강조한다. 죽음 후에도 두 사람은 신분의 벽을 실감한다. 요한나의 시체는 수많은 만장이 따르는 가운데 자동차로 운구를 하는 반면 두수의 시신은 아가리가 끄는 리어카에 거적을 쓰고 있다.

양말도 신지 못한 맨발이 삐죽이 나와 있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흐느꼈을 것이다. 천년을 살면서도 결코 때 묻지 않는 그런 학이 되고 싶었던 두수는 까마귀도 되지 못하고 생을 이별한다.

국가: 한국
감독: 김기덕
출연: 신성일, 엄앵란, 트위스트 김
평점:

 

팁: 외교관의 딸과 건달의 사랑이 심금을 울렸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흥미롭다.

더구나 한국전쟁의 참상이 끝난 후 갈 곳을 잃은 젊은 청춘의 반항 비슷한 것이 시대상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에서 영화를 복사해 왔다고 할 만큼 일본영화 <진흙 투성이의 청춘>의 복사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카메라 앵글, 배우들의 옷차림, 심지어 농가에서 종이학을 갖고 노는 장면 등이 일본 영화의 장면과 흡사하다고 한다. 당시에 일본 영화를 복사하는 일이 흔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심각한 영화의 결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추앙받던 감독의 위상도 한 풀 꺾였고 한국영화의 걸작이라는 말도 쑥스럽게 됐다. 일본과 수교 전에 만들어 진 영화라고 해도 리메이크 수준이라고 하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한국인이고 배경이 한국이며 감독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

영화 내내 들려오는 ‘고향의 봄’과 최희준이 부른 ‘ 맨발의 청춘’ 노래는 애잔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두 남녀의 가슴 아픈 정서를 대변한다. 지금은 사라진 단어인 ‘양공주’나 남자의 여자를 칭하는 ‘깔치’ 미국인을 멸시하는 ‘양키’나 혼혈아인 ‘튀기’ 같은 표현들이 거리낌 없이 나온다.

영화 흥행 이후 신성일과 엄앵란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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