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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움베르토 D(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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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움베르토 D(1952)
  • 의약뉴스
  • 승인 2015.09.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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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들이 남의 일로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그것이 세상일 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남의 일이 내일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겁 없는 젊은 시절은 가고 추레한 늙은 시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은 <움베르토 D> (Umberto D)를 통해 젊은이가 아닌 늙은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인이 아니고 늙은이라고 적는 것을 이해하시라. 영화를 보고나니 노인이라는 단어보다는 늙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늙은 남자 움베르토( 카를로 바티스티)는 30년 넘게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다 은퇴했다. 기관에서 근무했으니 지식도 좀 있고 자존심이나 체면도 있다. 그런데 돈이 없다.  돈이 없는 늙은이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 늙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했다. 이는 동서고금, 만고불변의 진리다. 헌데 움베르토는 정반대다. )

다행히 움베르토는 정부에서 주는 연금을 받는다. 하지만 그 연금이라는 것이 형편없어 올라가는 방세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자, 늙고 병들어 가는 움베르토가 과연 빚을 값고 월세를 제대로 내고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성질 급한 관객들을 위해 미리 결론을 말한다면 ‘노’다. 그러면 영화는 자연히 그가 그 집에서 살기 위해서 돈을 구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을 쫒기 마련이다.

과연 영화는 다른 늙은이들과 힘을 합세해 시위에 나서는 움베르토를 주목한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연금을 인상하라’, ‘평생을 일했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지만 곧 차량으로 돌진하는 무자비한 경찰의 진압에 맥없이 무너진다.

그들은 더 이상 시위를 할 기력도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시위를 한 다 한들 정부에서 3명 중 2명이나 빚이 있는 늙은이들의 요구대로 연금을 올려주고 고용인의 정의를 실현할 가능성은 없다.

중절모를 쓰고 코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지팡이를 잡고 있는 늙은이들을 위해 대신 아파하고 고민을 도와줄 젊은이도 없다. 아들도 형제도 없다. 이마의 깊은 주름 ,이빨 빠진 얼굴의 오목함, 꾀죄죄한 눈을 부릅뜨고 구호를 외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늙은이를 누가 좋아할까.

다행히 그는 금으로 상자를 만든 좋은 시계를 가지고 있다. 헐값에 시계를 넘긴다. 아까워서 한 번 도 넘기지 않은 책도 판다. 그래도 부족하다. 혼자 먹고 살기도 힘겨운데 플릭이라는 흰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개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

그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행인이 되 볼까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죽기를 바라겠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입술을 깨문다.

집주인이 좀 너그러우면 봐줄 만도 한데 노처녀의 히스테리가 넘쳐나는 베로니( 리나 제나리)는 눈곱만큼의 인정머리도 없다.

20년이나 알고 지냈고 전쟁 통에 도움을 준 것은 까마득히 잊고 오로지 돈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플릭까지 싫어한다.

마리아( 마리아 피아 카실리오)가 그녀 몰래 시중을 들어 주기도 하고 동정을 해보지만 하녀일 뿐이다. 그릇을 닦는 하녀, 게다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애를 임신한 마리아가 늙은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가엽은 눈초리를 보내는 것뿐이다.

비록 아버지처럼 혹은 딸처럼 정을 나누지만 그 뿐이다. 죄다 무지한 사람을 속이려 드는 세상이니 문법을 배우라고 하녀에게 충고하고는 늙은이는 다시 돈을 구하러 정처 없이 떠돈다.

기둥이 커다란 어떤 관청 건물 앞에서 옛 동료를 만나 처지를 설명하고 싶은데 동료들은 버스를 놓치기 싫다며 그를 외면한다.

몸은 더 망가진다. 온도계로 잰 체온은 올라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몸은 오한으로 부들부들 떤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수녀가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늙은이는 말한다.

내 방으로 돌아간다. 수용소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어느 날 그가 외출하고 돌아온 사이 집들은 구멍이 뚫리고 난장판이 됐다. 애인이 생긴 베로리가 거실을 넓게 쓰려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좋은 옷을 입고 우아한 목소리로 베로니는 친구들을 불러놓고 애인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가난과 부가 극적으로 대비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플릭까지 사라졌다. 노인은 개를 찾아 나선다.

초점 없는 눈으로 오직 지구상의 유일한 친구인 플릭을. (노인이 개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감독의 또 다른 네오리얼리즘의 걸작 <자전거 도둑>에서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가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버려지거나 도망친 개들을 잠시 보관하는 유기견 센터에서 어렵게 플릭을 발견한 늙은이는 제풀에 지켜 한 발짝도 걸을 힘이 없다.

내 개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청구서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그 여자를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속절없고 하녀의 애인인 군인이 그의 옆으로 무심하게 지나가도 관심이 없다.

전차가 질주하는 창밖을 보고 순간 뛰어내릴까 생각도 해보지만 플릭이 걸린다. 그는 짐을 챙겨 떠난다. 어딜가도 여기보다는 낫겠다고 체념한다. 여자가 쫒아 내기도 전에 서둘러 가방을 들고 떠난다. 금지명령서를 받아 집에서 살겠다던 오기는 사라지고 없다.

잠에서 깬 하녀가 그와 작별인사를 한다. 가진 돈 전부를 주고 플릭을 맡기려던 늙은이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도사견과 플릭이 함께 살수는 없다고 여기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공원에는 애들이 즐겁게 뛰놀고 그런 애들을 보는 엄마들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늙은이는 폴짝폴짝 뛰며 플릭과 함께 화면 구석으로 사라진다.

국가: 이탈리아
감독: 비토리오 데시카
출연: 카를로 바티스티
평점:

 

팁: 연금생활자의 비참하고 쪼들리는 당시 로마의 실상을 잘 묘사했다. 정부는 이탈리아를 비판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이 영화의 해외배급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등장 배우들은 <자전거 도둑>처럼 카를로 바티스티( 전직 교수) 를 포함해 대개 비전문 배우를 썼다.

삶의 끝자락에 선 오갈데 없는 늙은이의 처절한 고통이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움베르토가 개와 함께 화면에서 사라지는 장면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 관객은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는 필시 몇 시간 정도  생을 더 연명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와 함께 개 역시 비참한 운명을 맞으면서 끝내 절망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지만 감독은 거기까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커피의 나라 답게 하녀가 원두를 갈거나 불을 켜기 위해 성냥골을 벽에 긋는 장면 등이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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