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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뮤직룸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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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뮤직룸 (1958)
  • 의약뉴스
  • 승인 2015.09.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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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야지트 레이는 걸작 <아푸 삼부작>과 함께 <뮤직 룸>(The Music Room)으로 인도 예술영화의 위상을 세계 영화사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정교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이 영화에는 느슨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파멸하면서도 체면을 잃지 않는 인도인의 대국적 풍모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 인간의 몰락과정이 이처럼 차분하고 여유 있고 서리지 않은 광기 없이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은 오로지 감독 레이의 힘이다.

1920년대 인도의 몰락해 가는 영주 후주르 로이(치하비 비스와스)는 거대한 성에 살면서 수 십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있다.

예쁜 아내( 파드 마데비) 도 있고 사랑하는 아들도 있다. 그는 음악을 사랑한다. 거대한 성에는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수 있는 뮤직 룸이 따로 있다. 틈나는 데로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 하는게 그의 주된 일과다.

하지만 음악회에 초대하는 가수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의 가세는 점차 기울어 가고 돈도 바닥이 난다.

음악을 자제하고 가게를 살리기 위해 로이는 좀 더 분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거의 개의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가수를 초청하고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며 노래와 춤과 연주를 듣는 것으로 삶을 위안한다.

느린 목소리로 지시하고 늙은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집주변을 배회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예민한 청각을 자랑한다.

하인은 은행에서 온 편지를 읽는다. 청구한 금액은 한도를 넘었고 더 이상 대출은 불가능하다. 팔수 있는 보석도 하나 둘 씩 사라진다. 하지만 사채업자의 돈으로 음악회를 여는 것은 가문의 체면 때문에 단박에 거절한다.

그만큼 자존심이 세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독설을 퍼붓지만 로이는 태평하다. 놀기만 하는 아들 걱정에 그게 뭐가 문제야, 말도 타고 사냥도 하고 그런 것이 대지주의 운명이라고 가볍게 응수한다.

음악회가 없는 날이면 메마르고 거대한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성의 베란다에 나와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세월을 보낸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로이만이 아니다. 그가 깔보는 사채업자 강굴리의 아들 모힘(강가파다 바수) 도 음악회를 연다. 로이가 쪼그라드는 것과는 달리 모힘의 부는 더욱 늘어만 간다.

 

음악소리는 끊이지 않고 영국 가구들을 사고 빛이 나는 발전기를 돌리고 거지들을 초청하고 새해 기념으로 새집 준공식을 한다고 검은색 자동차를 타고 와서 로이를 초청한다.

자존심이 상한 로이는 처가에 간 아내와 아들을 새해 아침에 올 수 있도록 전갈을 보내고 모힘에 맞서 새해 아침에 음악회를 열 준비에 신바람을 낸다.

음악 연주가 무르익을 무렵 찻잔에 벌레가 빠져 허우적거리고 천정의 전등이 심하게 흔들린다.

아들이 탄 배가 태풍을 만나 소용돌이에 갇힌 것이다. 아들이 죽었어도 로이는 음악회를 멈추지 않는다. 강굴리 집에서 음악회를 연다고 하면 자신은 더 큰 음악회를 여는 것으로 자존심을 살린다.

관객들은 그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제 그만 음악회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회를 자주 열수 있도록 그의 가게가 견뎌주기를 그래서 그가 초대한 가수가 부르는 노래와 춤과 연주에 더욱 빠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로이의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픈 눈빛과 감정을 절제한 일그러진 표정에서 그가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몰락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연주회가 더 이상 열리지 못한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아챈다.

그의 몰락 과정은 슬프기 보다는 차라리 아름답다.

권력이나 재물 혹은 여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차라리 아편이나 도박에 빠졌다면 고개라고 끄덕일 것이다. 그는 오직 음악에만 관심이 있다. 어떤 심오한 세계에 빠져서 나올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가야만 하는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그것이 로이의 운명이다. 그 많던 하인들은 하나 둘 떠나고 주변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저택은 압류되고 가구도 팔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아꼈던 말과 코끼리만은 팔지 말라고 하인에게 명령한다. 그는 음악회를 더 이상 열지 않는다.

음악도 더 이상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 날 달이 뜨고 어둠속에서 풀벌레 울음소리 처연하다. 로이는 생애 마지막 음악회를 준비한다.

닫혔던 뮤직 룸을 청소하고 가장 유명한 여가수를 재산을 다 털어 초대한다.

강굴리의 아들 모힘도 왔다. 여가수는 음악에 맞춰 화려한 춤과 노래로 로이를 흡족하게 한다. 이윽고 음악회가 끝나고 모힘이 여가수에게 돈을 주려 하자 로이가 지팡이를 뻗어 제지한다.

“첫 돈은 집주인이 주는 거야.”
모욕을 당한 모힘에게 레이는 말한다.

"어디 고리대금 업자 주제에 위를 넘봐. 혈통이야, 내 피가 어떤 피인 줄 알아."

조금 거드름을 피우면서 로이는 조상들의 사진이 걸린 액자를 쳐다보면서 귀족에게 건배를 외친다. 그리고 마신다. 태양이 뜰 때까지 마시고 또 마신다.

아침 햇살이 아버지 사진에 비친다. 그는 남은 하인 두 명 가운데 한 명에게 승마복을 가져오도록 하고 절망적으로 말리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흰말을 타고 밖으로 질주한다.

국가: 인도
감독: 샤티아지트 레이
출연: 치하비 비스와스, 파드 마데비, 강가파다 바수
평점:

 

팁: 컷은 길고 오래도록 한 장소에 머물러 있다. 아름다운 장면뿐만 아니라 빨리 넘어 갔으면 하는 곳에서도 오랫동안 떠날 줄을 모른다. 레이가 얼굴에 피를 흘리며, 내 피가 어떤 피인지 보여주면서 죽어갈 때도 화면은 짧지 않은 시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 주저스럽다.

화려했던 시절 음악회를 회상하는 로이의 일생을 보면서 그의 무모함에 진저리 치다가도 그의 삶은 그렇게 정해 졌다는 생각( 인도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다. 태어날 때부터 귀족과 하인으로 구분된다.) 을 하면 감각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게 보이지 만은 않는다.

쇠퇴와 몰락의 과정이 광기라기보다는 차분하게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는 느낌이어서 호러물로 인식되기 보다는 인생극장을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나오는 강굴리는 잃어버린 한 때 로이가 가졌던 모든 것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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