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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외침과 속삭임(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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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외침과 속삭임(1972)
  • 의약뉴스
  • 승인 2015.08.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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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이, 아니 넷이 한 집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잉그마르 베리만 감독은 <외침과 속삭임>( Cries & Whispers)에서 성인 여자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증오와 고통, 불안, 두려움 , 거짓말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저택이라고는 하지만 공간은 단순하고 색채는 백색과 붉은색, 검은색에 그치는데 묘한 긴장과 떨림이 계곡의 거친 물살처럼 소용돌이친다.

병에 걸렸는지 아니면 정신의 고통 때문인지 어찌됐든 곧 죽을 것이 분명한, 흰 옷을 입고 붉은 이불을 덮은 아그네스( 해리엇 안데르손)는 체격이 좋은 젊은 하녀 안나( 카리 슐린)의 보살핌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쉬는 숨이 너무 고통스러워 저절로 일그러진 얼굴로 돼지의 멱을 따는 듯 한 외마디 소리를 지를 때면 마치 유령의 집에 들어선 듯 오싹한 기분이다.

어렵게 벌린 입 사이로 붉은 혀가 조금 꿈틀거리고 금방이라도 검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그녀가 입을 벌리고 가뿐 숨을 내쉬면 화면을 뚫고 죽음의 냄새가 전해져 오는데, 아주 고약한 그래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그런 생선 비린내가 전신에 번져 온다.

아그네스의 죽음 앞에서 안나는 고향에 있는 어린 딸을 위해 기도한다. 이는 아그레스가 고통 없이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비는 의식과도 같다.

창밖은 잘 가꾼 아름드리나무가 일렬로 서 있고 호수에는 물이 가득 담겨 있는데 이 멋진 장면과 죽음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간혹 정신이 들면 아그네스는 잉크를 묻힌 펜으로 빠르게 일기를 쓴다.

이른 월요일 아침이다. 난 고통에 빠져 있고 ... 그러다 다시 아픔에 몸부림친다.

숨이 끊어지는 소리는 길고 오래도록 이어진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이처럼 잔인하다. 외마디 소리는 마지막 심호흡을 한 후 멈춘다. 염을 하는 안나의 뒤로 장의사와 신부가 들어온다.

여동생 마리( 리브 울만)는 어느 날 안나의 딸이 갑자기 아프자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는 주치의를 데리고 오는데 그 주치의와 바람이 난다.

아주 많이 지쳤다,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죽음을 예고하는 주치의를 문 뒤에서 기다렸다 오랜 만이예요 하면서 환한 얼굴로 키스를 하는 마리는 공포영화의 사이코패스처럼 의아하게 다가온다. (죽은 아그네스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처럼 아주 괴이하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 주치의도 처음에는 마리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넘어가나 마리가 매달리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싶어 한다.

주저하는 주치의에게 마리는 날이 너무 안 좋다, 남편은 마을에 일이 있어 밤에 나갔고 내일 돌아온다고 그를 안심시킨다.

가슴이 크고 눈에 색기가 가득한 마리와 거구의 털 복숭이 안경잡이 늙은 주치의가 벌이는 애정행각은 온통 절망뿐인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생기 있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다음날 돌아온 남편에게 안나의 딸이 아파 주치의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마리는 외도를 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남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의심하는 듯 한 남편에게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의사는 새벽에 갔다고 지나가듯이 말하면서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는다.

하지만 주치의와의 관계도 둘이 서로 똑 닮은 계산되고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흐지부지 된다.

또 다른 동생 케린( 잉그리드 툴린)은 이런 일들이 남의 일 같다. 아그네스의 죽음으로 집에 온 외교관 남편과도 무덤덤하게 대하거나 냉랭하다.

비웃는 남편에게 케린은 깨진 유리조각을 다리사이에 넣고 여러 번 휘젓더니 어기적거리며 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피가 잔뜩 묻은 두 손으로 얼굴에 바른다.

온통 거대한 거짓뿐인 남편에 대한 복수는 이처럼 처절하다.( 아그레스가 내뱉는 죽음 직전의 호흡보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고통스럽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2004)에서 여자의 사타구니에 있는 낚시 바늘처럼 섬뜩하다.)

안나를 대하는 태도도 하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감정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냉정한 케린은 마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독설을 쏘아붙인다.

거짓말과 음탕한 짓을 알고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경멸스러운지 아느냐고 면전에 대고 윽박지른다.( 케린은 마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주치의와의 불륜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난 네 본질을 알고 있다. 의미 없는 다정함과 공허하기 그지없는 거짓 약속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다. (증오를 이야기 하면서 케린은 그 증오가 얼마나 힘들고 큰 부담인지 아느냐, 거기에는 구원도 자비도 도움도 없다고 소리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쁜 뜻은 없었다며 날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 장면에서 머리를 산발하고 비오는 날 치마를 펄럭이며 진흙탕을 달리는 미친 여자가 연상됐다.)

케린과 마리는 언니가 죽자 재산을 정리하면서 아그네스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안나에게 원한다면 이달 말까지 이 집에서 살아도 좋고 그의 물건 중 가지고 싶은 것 하나를 가져도 좋다고 한다. (이것은 배려라기 보다는 가진자가 던지는 값싼 동정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그녀의 남편들도 함께 있는데 매우 사무적이고 냉정해 도대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사람들이 떠나고 안나는 아그네스의 일기 마지막 장면을 촛불아래에서 읽는다.

9월 3일 수요일, 내 삶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국가: 스웨덴
감독: 잉그마르 베리만
출연: 해리엇 안데르손, 리브 울만, 잉그리드 툴린, 카리 슐린
평점:

 

팁: 얼굴의 반은 어둡고 한쪽은 밝다. 장면이 바뀔 때는 붉은 색으로 바뀐다. 컷은 길고 바람소리, 종소리는 음산하다. 안나의 처리 문제를 놓고 자매는 잠시 의론을 한다. 우선 통보하고 위로금을 조금 주자고. 아그네스에 아주 헌신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둘은 아주 가까웠잖아 하고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한다. 안나는 아그네스가 공포에 몸부림칠 때 위통을 벗고 커다란 젖가슴으로 그녀를 감싸준다. 그러면 잠시 동안 그녀는 아픔을 잊는다. (이것은 아그네스와 안나의 동성애적 사랑인가, 하녀가 주인을 대하는 헌신적 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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