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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소방수의 무도회(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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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소방수의 무도회( 1967)
  • 의약뉴스
  • 승인 2015.07.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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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아름다웠다.

광화문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체코의 수도 프라하 사진전’에서 본 프라하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고 마치 중세 유럽의 한 복판에 와 있는 듯 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끝이 뾰족한 거대한 성과 연이은 붉은 지붕의 집들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어떠할지 무척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웅장하고 예쁜 집을 지은 사람들은 마음씨도 곱고 유머가 넘치고 여유가 있으며 때로는 다혈질이지만 금세 맥주 한 잔으로 풀어지는 순박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사진을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체코 출신의 세계적 명장 밀로스 포먼 감독의 <소방수의 무도회>(The Fireman's Ball)를 보았다. 역시나 이런 기대는 멋지게 들어맞았다.

영화는 유머러스했으며 배우들은 시대의 그림자를 정확히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때는 1968년 짧았던 ‘프라하의 봄’ 꽃이 막 피어날 무렵, 그러니까 소련군의 탱크가 프라하로 진격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이다.

 

분위기는 뒤숭숭하고 사람들은 굶주리지는 않지만 무언가에 크게 허기진 상태다. 그런 가운데 은퇴한 소방대장을 위한 무도회가 성대히 기획되고 기념품 증정을 위한 작전회의에 늙은 소방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손도끼를 서로 돌려보면서 85세 생일 준비 선물로는 대단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먹으면 부드러운 목 넘김이 기가 막힐 것이 분명한 붉고 검은빛이 감도는 생맥주가 앞에 있고 과태료 걱정 없이 실내서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 수 있으니 이런 모임을 그야말로 축제에 다름 아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 미리 주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만 되는가.

경품으로 줄 선물이 무도회장 주변에 가득히 쌓여 있고 선물을 지키려는 제복을 입은 누군가는 돼지머리, 포도주, 곰 인형, 케익, 초콜릿, 치즈 등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감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눈독을 들이는 표정이라고 해야 더 맞다. 그도 나중에 경품을 훔치는데 가세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남아 있는 경품은 하나도 없다.)

한편 영화는 이야기가 10여분 진행된 후 출연진들을 소개한다. 뒤이어 바로 앞선 장면들과 이어져 지루하거나 어색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넓은 홀을 가득 메운 선남선녀들이 악단의 음악에 맞춰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다. 음악은 경쾌하고 스탭은 빠르며 사람들의 표정은 붉게 상기돼 있다.

분위기가 익어가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제복의 소방관들이 모여 자신들이 직접 미의 여왕을 뽑기로 하고 행사장에 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후보자들을 물색한다.

이 과정에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상상해 볼만하다. 동료 소방관은 잔말 말고 자신의 딸을 후보로 적어 달라고 외압을 행사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미모가 딸린 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거절한다.

하지만 코냑을 돌리는 등 뇌물을 쓰는 동료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고 참가 인원이 적어 나중에는 땜빵용으로 올려놓는다. 직접 찾아다니면서 참가를 독려하지만 소득도 없고 미인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몇 명의 여자만을 후보로 올려놓는데 따른 궁여지책이다.

소방관들이 미인을 찾는데 혈안이 된 가운데 한 쌍의 남녀는 식탁 아래로 숨어 들어가 섹스를 하고 이를 늙은 소방관은 커튼을 살짝 치켜들고 지켜본다. 여자는 처음에는 달려드는 남자의 따귀를 때리지만 어느 새 호흡을 맞추더니 나중에는 더 열성이다.

남녀가 들썩 거릴수록 식탁이 흔들이고 경품이 고꾸라지고 여자의 굵은 목에 걸려 있던 진주는 떨어져서 홀로 굴러다닌다.

선물을 증정할 미인을 뽑는 준비는 좌충우돌이지만 그런대로 진행된다. 대충 몇 명을 골라 벽에 세워 놓고는 미모와 몸매를 보지만 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눈치다. ( 성질 급한 후보는 옷을 벗어 비키니 몸매를 드러내기도 한다.) 

후보가 아니라고 도망치는 여자를 쫓아가 상관없으니 참여하라고 강요하고 못생겼다고 빼버린 후보까지 넣을 정도니 무도회의 퀸은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뽑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대신 엉뚱한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라 왕관을 쓰는 등 대회는 난장판이 된다.

그러니 퀸이 주어야 할 선물 증정식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소방대장은 나와야 될 때를 몰라 아무 때나 무대로 걸어 나오다 제지를 당하고 악단은 음악을 재촉 받고 참가자들은 맥주를 먹어 대느나 정신이 없다.

무도회는 개판이 되고 그 때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늙은 농부의 집이 불에 타고 있다. 소방관들은 뛰어나가지만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물동이에 눈을 담아 던지거나 삽질하는 것이 고작이다.

집은 송두리째 타고 집을 잃은 농부는 추위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자 소방관 한 명이 의자를 들어 노인을 불타는 집 근처로 옮겨 놓는다.  연대나 동정심, 선행이나 친절함 등은 멀어지고 사라진 복권 경품에 대한 비난이 하늘을 찌른다.

국가: 체코, 이탈리아
감독: 밀로스 포먼
출연: 얀 보르트르실, 요셉 콜브
평점:

 

팁: 재판의 독립과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 폐지, 민주적 선거법 도입,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프라하의 봄’이 위험에 처해 있었으니 영화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소련의 침공은 예정돼 있고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뭔가 즐길 거리를 찾아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절망의 순간에 사람들은 여유를 부리고 술을 마시고 경품행사를 하고 미인을 뽑는다. 소비에트의 관료주의와 공산정권과 그들의 문화를 은밀하게 공격한 알레고리( 은유)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감독과 같이 역시 체코 출신인 노벨상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영화와 비슷한 시기와 배경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조롱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은 이후 체코를 떠나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등을 발표해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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