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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컨버세이션(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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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컨버세이션(1974)
  • 의약뉴스
  • 승인 2015.07.0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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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항공기 ‘드론’의 위세가 대단하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지금 영화를 만든다면 드론을 활용한 공중 촬영을 자주 했을 것 같다.

그가 1974년에 만든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의 시작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위에서 아래로 비추는 장면에 드론을 썼다면 지금보다 더 멋진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든다.

각설하고 공중에서 시작된 영화는 공원을 이리저리 돌면서 나누는 젊은 남녀의 ‘소리’를 쫒고 있다.

산책 한다고 보기에는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다. 말을 자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헤어질 때는 여자가 남자에게 키스도 하는데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오늘 헤어지면 더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뭔가 불길한 조짐이 시작부터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해리( 진 해크만)는 도청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것도 전문가로 업계에서 알아주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청업계의 내로라하는 경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음악소리, 다른 사람의 소리, 자연의 소리가 함께 뭉친 소리 가운데 유독 두 남녀의 소리만을 따로 뽑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작업실인 커다란 차 안에서 마침내 소리의 내용을 간파한다. 동료 스탠( 존 카잘)의 투덜거림 끝에 얻어낸 성과라서 만족감이 클 텐데 오히려 해리의 표정은 밝지 않다.

 

도청의 내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도청의 의뢰자는 경찰이나 정부가 아니다. 해리는 두 남녀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회사 사장(로버트 듀발) 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반복된 청취를 통해 의심은 여지없는 사실로 굳어진다.

건물의 높은 곳에서는 조준경이 달린 총인지 망원렌즈인지가 초점을 맞추면서 남녀를 쫒고 있어 이런 생각에 확신을 준다. 그는 사장과 비서( 해리슨 포드)를 만나 도청 테이프를 전달해 주고 5만달러를 받지만 남녀의 생사가 염려돼 녹음 속에 나오는 호텔 옆방에 투숙한다.

거기서 감청장비를 통해 옆방의 대화 내용을 엿듣고 마침내 누군가 살해 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하지만 열쇠로 몰래 열고 들어간 사건 현장은 깨끗이 정리돼 있다.

의구심이 든 해리는 사용 흔적이 없는 종이 띠가 둘러져 있는 변기의 뚜껑을 열고 물을 내린다. 핏물이 넘쳐흐른다. (감독은 이 장면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코멘터리 트렉에서 밝힌바 있다.)

관객들은 화면을 통해 되풀이 되는 공원의 두 남녀가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술을 움직이면서 하는 대화 장면을 상기하면서 두 사람의 죽음을 직감한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아차,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그리고 여자는 사장의 부인이고 남자는 여자의 정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챈다.

한편 동료들로부터 도청의 대가로 추앙받는 해리는 정작 도청 대상자에게 자신이 쇼핑백을 든 남자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3중 열쇠로 잠근 집이 관리인에게 허술하게 열리고 전화가 도청되고 애인이나 하룻밤 보낸 창녀로부터 신분이 쉽게 노출되는 허술함을 보인다.

인간이 못해낼 일은 없다는 각오로 겨우 12살 때 처음 도청장치를 달고 무려 6개월 동안 누구도 누치채지 못해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긴 해리의 경력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뭉치면 최고가 된다는 동료로부터 창녀와 밖에서 나눈 대화내용이 쉽게 도청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무시무시하게 소름이 돋는 도청전문가가 아닌 나약하고 우울하고 소심한 인간의 해리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등 양심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했지만 결과는 원하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 도청장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커튼을 뜯고 전등을 살피고 장식물을 떼고 바닥을 뜯고 멈칫 거리다 마침내 성모상까지 부수는 난리를 피우지만 이내 허탈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일그러진 방에서 작은 의자에 걸터 앉아 구슬픈 음조의 색스폰을 분다. 그가 앞으로도 계속 의뢰를 받아 도청에 나설지 아니면 이번 일로 더 이상 도청을 하지 않을지 관객들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자신의 도청으로 인해 과거에도 사람이 죽었고 이번에도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 영화는 코폴라 감독이 72년에 만든 걸작 <대부> 이후 내논 또 다른 야심작이다. <대부>가 나온 그해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이 발생했고 그 2년 후 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예지력이 어느 정도 인지 소름이 돋게 한다.

국가: 미국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진 해크만, 존 카잘

평점:

 

팁: 44살의 중년 남자를 연기하는 진 해크만은 머리가 훌렁 벗겨지고 배가 나오고 얼굴은 주름이 늘어져 있고 행동은 굼떠 실제로는 74살의 할아버지로 보인다.

비서로 나오는 팔팔한 해리슨 포드의 모습은 볼만하다. 몸은 다소 경직돼 있지만 시간이 흘러 노련한 연기를 하는 모습과 교차해서 보면 흥미롭다.

<대부>에서 변호사 역을 맡은 로버트 듀발은 비슷한 시기에 촬영을 해서인지 모습에 거의 변화가 없고 78년 작 <디어 헌터>에 나왔던 존 카잘 역시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2006)에 영감을 준 영화임에 틀림없다. 두 영화 주인공 모두 도청을 통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대상자에게 온정을 베풀려는 마음도 엇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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