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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앙드레와의 저녁식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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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앙드레와의 저녁식사( 1981)
  • 의약뉴스
  • 승인 2015.06.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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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고 재미난 식사는 살아가는 힘이다. 예술과 인생과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 지면 더 없는 양념이다.

그렇다면 앙드레와의 저녁식사는 어땠느냐고? 말도 마라. 이런 식사라면 한번은 몰라도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

중년 신사의 근사하고 세련된 서빙을 받으며 레드와인까지 있지만 상견례 장에서 자장면을 먹는 예비신부처럼 거북스러울 테니까.

사실 이 영화를 집어 들면서 나는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적지 않은 흥분을 느꼈다. 도대체 앙드레는 누구이며 그와 식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느 수준이며 만찬으로 나오는 음식의 종류와 맛과 색깔은 어떻지 보기 전 부터 군침이 돌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나는 루이 말 감독의 <앙드레와의 저녁식사>( My dinner with Andre)의 DVD를 컴퓨터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앞머리가 다 빠진 털털해 보이는 아저씨가 코트에 양손을 집어넣고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이 앙드레와 저녁 식사를 할 사람으로 직감했다.

미리 준비한 이면 복사지에 볼펜으로 '못생긴 대머리, 거리 지나 간다' 고 가볍게 적고는 흡족한 기분으로 다음 화면을 응시했다.

이어지는 내레이터의 목소리를 끼적이면서 나는 그가 가난에 찌들린 극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월리( 월레스 숀)는 10살 때까지만 해도 귀족같이 살면서 예술과 음악만 생각했는데 36살인 지금 우편함에 쌓인 고지서의 돈을 무슨 수로 낼지 감당이 안 되는 가난뱅이 예술가다. 바로 거리를 지나던 아저씨다.

낙서투성이 전철 안에서 그는 일주일에 3일은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를 생각하다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몇 년간 피해왔던 옛날에는 꽤 친했던 앙드레와 저녁식사를 먹으러 가는 중이다.

앙드레는 한 때 대단한 감독으로 그의 맨하튼 프로잭트는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 시켰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연극계를 떠나서 오지를 여행한다는 소문만 가족들에게 간간히 들려왔다.

가족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그가 집을 떠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고 힘든 일을 겪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월리는 내 코가 석자이니 그를 도울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친구가 만나보라고 닦달만 하지 않았어도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는 어느 날 밤 개를 산책시키다 벽에 기대 울고 있는 앙드레를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우는 이유를 물어보자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오는 <가을소나타> 때문이었는데 영화 속 잉그리드 버그만은 “ 예술은 날 살게 하지만 인생은 날 죽게 해요.” 라는 대사를 듣고 울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어쨌든 두 사람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 때부터 영화는 아주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사람은 영화가 거의 다 끝나갈 때 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고정한 채 미동이 없다. 간혹 비웃는 듯 한 월리를 비추다가 열정적으로 말하는 앙드레로 이동하는 정도다.

어쩌다 종업원이 오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이다. 제목은 식사이지만 장소가 식당일 뿐 식사는 영화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앙드레는 그가 겪었던 숱한 일들을 입에 거품도 물지 않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다.

월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간혹 그래서? 정도의 추임새만 넣는다. 몇 가지 질문이나 하면서 대충 시간만 때울 생각을 했던 월리는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지자 하는 수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못하는 30명의 유대인 여성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여름 강의를 위해 폴란드에 간 이야기가 장황하고 길게 이어진다.

그러자 월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러니까 다 같이 모여앉아 뭔가를 했다는 거군 하고 비웃는다.

벌집 이벤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손가락을 턱에 괴고 반쯤은 입을 벌리고 눈은 가늘게 뜨고 입 꼬리는 위로 올리고 가당찮다는 표정이다.

그러다 조금 지루해지면 다른 일 있으면 말해봐? 하는 정도다. 그러면 앙드레는 화제를 바꿔 죽음과 이어졌다는 월트 휘트먼의 시 <풀잎> 나치의 전체주의적 감성이 묻어 있는 길들이기가 핵심이라는 <어린왕자> 일본 승려를 만나 명상한 이야기 등을 끝없이 중얼거린다.

그는 세상을 부조리 공허 무의미한 것으로 몰고 가는데 월리는 이쯤에서 그래서? 하고 한마디하도 다시 손가락을 턱에 괸다.

식사는 안하고 떠들기만 하는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중간에 스프가 나오고 포도주를 따르는 장면 말고는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티베트나 이스라엘 여행, 거대한 깃발 등 횡설수설이 끝임 없다.

월리가 생각하는 앙드레는 참 한심한 놈이다. 대개는 앙드레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그것은 월리가 적극적으로 논쟁하지 않고 듣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중반전에 들어가면 월리도 대화에 조금 열을 올린다. 하지만 여전히 그저 그렇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앙드레가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캡처 화면을 뜨지 못할 정도로 번역 자막이 끊이지 않는다.

더 이상 이런 영화는 만들어 지지 않을 것이다. 만든다 해도 이 영화처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영화사에 아주 기이하고 특별한 영화를 언급할 때 반드시 끼어 들것이다.

단 한번만 보고 더 이상 보지 않을 영화이지만 영화이야기가 나오면 여러 번 본 영화보다 더 자주 언급될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세상에 이런 영화가 있다니, 하는 정도만 얻어도 이 영화를 본 수확이다. 끝까지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앞으로 어떤 영화라도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국가: 미국
감독: 루이 말
출연: 월레스 숀, 안드레 그레고리
평점:

 

 

 

팁: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기만 하는 영화도 있다' 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쳐다봤다 다시와도 늘 그 상황이기 때문이다.

듣는 월리의 표정은 한결같고 말하는 앙드레 표정 역시 그대로다.

헌데 이 영화는 오랫동안 내려가지 않고 뉴욕의 극장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잰 체 하는 뉴욕 식자층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는지 이 정도 고상한 영화는 많이 봐줘야 한다는 억지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앙드레와 저녁 식사를 했다면 나 역시 월리처럼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 어이없는 행동에 대해 어처구니없어 했을 것이다.

월리보다 몇 가지 더 질문을 하거나 공감을 표시하거나 의견을 조금 더 말할 수 있겠지만 .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이런데도 앙드레와 저녁식사를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생각할 새도 없이 내 대답은 예스다.

한 번이 아닌 적어도 일 년에 한 여섯 번 정 앙드레와 식사를 하고 싶다. 앙드레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고상하고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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