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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블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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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블루 (1993)
  • 의약뉴스
  • 승인 2015.06.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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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이 다 우울한 것은 아니다. 가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간다면 오히려 활기차다.

끝나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마침표를 찍는 영화는 비록 96분짜리 영화라 해도 결코 짧지 않다.

이 보다 길었더라면 짧은 것만 못했을 것이고 줄리(줄리엣 비노쉬)의 뒷모습 역시 무척이나 쓸쓸했을 것이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가지 색: 블루>(Trois couleurs :Blue)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처럼 끝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끝낸 걸작이다.

제목이 직시하듯이 이 영화는 시종 일관 푸른색이다. 녹색과 보라색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푸른색은 슬픔, 온통 슬픔 그 자체다.

 

줄리는 순식간에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잃는다. 홀로 살아남은 줄리. 그가 살아가는 모습이 1시간 30분 동안 영화 속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처럼 적나라하다.

자살을 시도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의 동료 올리비에(베누아 레겡)에게 몸을 던진다.

그렇다고 해서 끔찍한 순간이 사라지고, 사랑했던 그들이 돌아 올 리 만무하다.

슬픔은 온통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살아 있기에 그가 감당해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 과연 줄리는 천길 속의 절망을 딛고 온통 파란 하늘로 날아올라 마침내 그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관객들은 줄리가 살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처절해 질수록 줄리만큼 견디기 힘들다.

남편과 딸의 장례식 장면을 병실에서 중계방송으로 지켜봐야 했던 줄리에게 이겨내라고 응원하는 목소리는 잔인하다.

유럽 통합 기념 연주회를 앞두고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물결이 높을수록 줄리는 더욱더 절망속으로 빠져든다. 살고 있던 집을 떠나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악보보관소를 찾아가 직원이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도입부 코러스 부분이 그렇다는 남편이 쓴 곡을 찾아서 쓰레기차에 버린다. 담쟁이 넝쿨이 군데군데 있는 담벽에 손등을 긁고 지나간다. 관객들은 자신의 손등이 깨지고 피가 나는 것처럼 오싹하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는 속옷이 귀찮은 거리의 여자가 살고 있다. 새끼를 여러 마리 낳은 쥐도 산다. 줄리는 창녀를 쫓으려는 주민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애처롭게 보던 쥐를 잡기 위해 옆집에서 고양이를 빌려 온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청년이 주는 십자가 목걸이를 거부하고 상황에 따라 농담을 잘 했던 남편을 떠올린다.  늙은 어머니를 찾아 가서 남편과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면서 점차 치유의 길로 접어 든다.

그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뉴스에서는 위대한 작곡가의 미완성곡을 완성하겠다는 올리비에의 인터뷰 소식이 전해진다. 줄리는 스스로 남편의 나머지 곡 부분을 마무리 한다. 남편의 애인이었던 여자를 찾아가 오히려 그녀에게 용기를 준다.

만삭인 그녀에게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남편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는가 하면 자기 집에서 살아도 좋다고 제의한다.

마침내 슬픔을 이겨낸 줄리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그가 힘들 때 마다 찾았던 수영장의 물처럼 맑고 투명하고 푸른색의 눈물이다.

국가: 스위스
감독: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출연: 줄리아 비노쉬, 베누아 레겡
평점:

 

팁: 이 영화는 프랑스의 국기가 상징하는 자유 평등 박애의 색인 파랑 하양 빨강 가운데 자유인 블루를 그린 작품이다.

<화이트>와 <레드>에 비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관객에 대한 고문은 줄리가 곡을 완성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다.

줄리와 올리비에가 나중에 결혼했느냐고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다.

줄리가 슬플 때 나오는 음악, 절망을 딛고 이겨나갈 때 나오는 음악, 마침내 자유를 찾았을 때 나오는 음악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데 모두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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