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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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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떡
  • 의약뉴스
  • 승인 2004.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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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약국 근처에 개업하게 되어 회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젊은 여약사님이 개업 떡을 들고 왔다.

개업 떡을 받는 순간 21년 전의 악몽이 실루엣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당시 김포공항 앞에서 3년 간 자리를 잡아 궤도에 오른 나의 약국이 도로확장으로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경황이 없는 나에게 부천에 거주하는 이모님은 길목이 좋은 정류장 앞 점포를 소개해 주었다.

현장을 답사해 보니 길 건너에 약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론 꺼림 찍했지만 약국이 철거되어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어쩌겠는가.

개업을 하는 날, 진정 미안한 마음을 가득 얹은 개업 떡을 인편을 통해 건너편 약국에 보냈다. 하지만 개업 떡은 되돌아 왔다. 개업 떡을 판매대에 올려놓자 나이든 여약사님이 ‘필요 없다’며 냉정하게 밀쳐버려 내민 손이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뜨거운 피가 머리로 역류하는 듯한 울분이 치솟았다.
약국이 철거되는 상황에서도 그 당시 나는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으로 전남 수해지역에 무료투약을 다녀왔었다. 내 개인의 어려움보다 약사의 위상을 높이는 봉사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약국이 철거된 후의 대책을 세울 생각은 않고 며칠동안 집을 비운 채 무거운 8미리 무비카메라를 들러 메고 무료투약 상황을 취재했던 수해지역은 다름 아닌 그 여약사의 고향이었다.

그 후로도 그 여약사는 내 약국 문을 닫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혔다. 자신이 졸업한 모 대학 부천 동문회를 등에 업고 약국을 두 곳에 개설한 부부약사라는 이점을 내세우며 약품 도매상과 제약회사에 압력을 가했다. 내 약국에 약품을 공급하면 그녀와 남편의 약국은 물론 동문들 약국도 거래를 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박카스 운반 트럭마저 내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여 멀리 떨어진 약국과 인천 만수동 생가 에 약을 내려놓고 밤중에 오토바이로 운반해야 했다. 운반 도중 눈비가 내려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부천에서 보낸 11개월은 한마디로 고난의 세월이었다.

지금의 이 약국 건물이 완공되자 나는 서럽고 고달픈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안주(安住)한 후 마음의 상처를 달래며 약사회장직을 맡던 중이었다.
어느 날, 행사장에서 만난 선배 여약사님은 나의 부천 타향살이 시절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며 믿어지지 않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내가 보낸 개업 떡을 밀쳐버리고 약국 문을 닫게 하기 위해 온갖 고통을 안겨 주었던 그 여약사와 남편이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흐른 후 접하는 그들의 소식이었다.

오늘 내 약국 근처에 개설한 젊은 여약사님이 보낸 개업 떡을 고맙게 받으며 20년 전 내 가슴에 못을 박고 피눈물이 나는 고통을 안겨주었던 그들을 다시 한번 떠 올려 본다. 온 세상의 재물을 모두 차지할 것 같았던 그들이 이승에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이며 저승에 가져간 재물은 얼마나 될까.

지금쯤 한줌의 흙으로 변해 있을 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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