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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안전과 전공의 인권, 수련환경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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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안전과 전공의 인권, 수련환경 개선
  • 의약뉴스
  • 승인 2015.05.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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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가 전공의를 폭행하는 사건은 자주 일어난다.

부상정도가 커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을 제외하면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폭행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얼마 전에는 한 대학병원에서 1년차 후배 전공의가 4년차 선배 전공의가 휘두른 발에 배를 수차례 맞아 비장막이 파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당사자는 수술을 받는 등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수술 받은 상처야 나중에 좋아 질 수도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가 의사를 하던 다른 길을 걷던 간에 살아 있는 동안은 수시로 마음속을 휘저을 것이다.

때린 당사자도 아마도 좌불안석의 상태에서 불똥이 더는 확산되지 않고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당분간은 조신한 몸가짐을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알려졌기 때문에 더 괴로울 것이지만 설사 비장막이 파열되지 않아 무사했다 하더라도 폭행을 가한 당사자의 심정도 쓰라릴 것은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폭행까지 이어졌겠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폭행의 채찍으로 후배 전공의가 유능한 의사의 길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안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폭행 그 자체를 미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 완전한 인격체인 다른 인간을 모욕의 최상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폭행을 가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받기 힘들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전공의들이 과연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기에 잊을 만하면 폭행사건이 터지는지 혹시 구조적인 문제점은 없는지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마침 전공의들의 모임인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표명하고 나선 것은 다행으로 생각한다.

대전협은 성명서를 통해 일단 들끓고 있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면서 이 문제는 개인의 책임만으로 치부할 수 없고 전공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 간 악감정이나 사적인 이유 때문에 폭행이 저질러 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살인적인 근무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분위기 자체가 살벌할 수밖에 없고 이런 과정에서 우발적인 폭행이 일어났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전협에 따르면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는 “수술 방에서 아래 년 차 전공의들이 졸면 발로 한 번 가볍게 차서 깨우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런데도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린다거나, 졸음 때문에 의료 사고에 근접한 실수를 하게 되면 점점 더 심하게 때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살살 차다가 그래도 제정신이 아니면 더 세게 발길질을 한다는 것.

이 전공의는 “폭행한 전공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피로로 찌든 전공의들에게 수술을 받는다면 때려서라도 깨우고 싶을 것이다”라며 이번 폭행 사건도 이와 유사하지 않겠느냐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전협의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조사’에 의하면 수련과정 중 언어폭력을 당한 경우가 65.8%, 신체적 폭행을 당한 경우가 22%로 집계될 만큼 전공의 폭행은 언제 어느 때고 수실로 일어나고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보면 교수나 선임 전공의가 폭행하는 경우는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업무강도가 높은 과에서 주로 발생했지 주당 100시간 근무가 없는 전공과에서는 의국 내 폭력 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정형외과는 전공과 중에서도 유독 업무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전협과 의협내에 있는 의료정책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2015년 정형외과 1년차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134시간이고 전년 차 평균은 112시간이었다는 것.

이에대해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을 밟는 의사들이지만 어째서 이들 전공의들이 과도한 근무량에 시달리게 되었을까”라고 회한에 젖기도 했다.

그는 “결국 의사 사회내의 가장 약자에 위치한 전공의들에게 업무량이 편중되는 구조적 폭력이 그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를 수련시켜야 하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병원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공의에게 인간의 한계까지 업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는 것이 송회장의 판단이다.

따라서 언론에 노출된 가해자 개인만 처벌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며, 물리적 폭력을 유발하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 지는 진단이며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을 불러 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그 때 그 때 당사자만 처벌하는 것은 미봉책이다.

우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폭력에는 반대하면서 전공의들이 주장하는 살인적 업무태도가 개선되기를 관계당국에 촉구하는 바이다. 폭행으로 사망사건 등 불미한 일이 발생한 뒤에 내리는 처방은 더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독립적인 전공의 수련환경평가기구 개설을 위한 ‘전공의의 수련 및 근로기준에 대한 법안’의 입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자의 안전과 전공의의 인권, 그리고 올바른 의료 환경 수립을 위해서도 전공의들의 근무수련환경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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