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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패왕별희(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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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패왕별희(1993)
  • 의약뉴스
  • 승인 2015.04.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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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간혹 장국영이 떠올랐다. 그가 상처를 입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비정전> <동사서독> <천녀유혼> 등 숱한 영화를 찍고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졌다.

그는 죽었고 영화를 남겼다. 그가 남긴 영화가운데 <패왕별희>(覇王別姬)는 다른 영화보다 장국영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다. <푸른연>의 첸 카이거 감독은 장국영에게 초나라 미인 우희 역을 맡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한 눈망울과 섬세한 육체를 가진 그 말고 누가 패왕의 대역이 될 수 있는가.

1924년 군벌이 장악한 북경의 유명한 배우학교에 창녀의 아들이 입소한다. 두지( 장국영)는 먼저 들어와 있던 샬루(장풍의)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둘은 의지한다.

손바닥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눈물이 절로 나고 그래서 견디지 못해 도망을 가거나 자살하는 단원이 생기는 혹독한 훈련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샬루 때문이었다. 형제이상으로 둘은 사이가 좋다.

 

다리를 찢고 몽둥이 매질을 하고 한 겨울에 물동이를 이는 벌을 세우는 스승은 경극에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스승의 덕분인지 두 사람은 3류 서커스나 광대 수준을 넘어 경극배우로 성장한다.

여자처럼 고운 얼굴을 한 두지와 패왕의 패기를 보여주는 샬루의 연기는 단연 장안의 인기를 끌면서 두 사람은 영웅 칭호를 받을 만큼 세를 누린다.

시간은 흘러 1937년.

북경은 중일전쟁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나라가 망하는데 너희들은 경극이나 하느냐’ 는 성난 군중의 조롱을 받는다. 하지만 재력과 정치력을 가진 원대인( 갈우 ) 의 후원으로 경극은 계속 이어진다.

두지는 갖은 보물을 선물하며 초대하는 원대인의 청을 거절한다. 창녀 쥬산(공리)을 찾는 샬루에 한 눈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아니 불타는 질투를 느낀다.

남자 두지는 여자 아닌 남자 샬루를 사랑한다. 단원 시절 극단장에게 몸을 뺏긴 두지는 그 때부터 샬루를 사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샬루는 두지보다 쥬산이 좋다. 샬루는 쥬산과 결혼한다. 흥겨운 술판이 벌어지고 두지의 속은 뒤집어 진다.

원대인은 두지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고 두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루지 못할 사랑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한다. 참다못한 두지는 샬루를 찾아 ‘이 순간부터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선언을 하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어지러운 시대는 두 사람을 갈라놓지 않는다.

일본군이 북경을 장악했다. 그들은 경극을 원했다. 두 사람은 다시 우희와 패왕으로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쥬산은 경극을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자고 샬루를 들볶고 두지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아편에 빠져 든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장개석은 북경을 수복한다. 이들은 일본군 앞에서 경극을 한 두 사람을 처형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쥬산은 유산을 하고 두지는 간첩죄로 위기에 몰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두지와 샬루.

1949년.

공산군에게 장개석 군은 대만으로 쫓겨나고 두 사람은 타도해야 구시대의 악, 예능계를 타락시킨 원흉으로 떠오른다. 왜, 예로부터 경극에는 영웅과 미인이 있어야 하는지 노동 인민을 이야기 하면 안 되는지 공격을 받는다.

두지가 데려다 키운 아들 같은 녀석은 그를 배신해 우희의 역을 빼앗고 배신감에 두지는 아편에 더욱 기댄다. 1965년 권력을 장악한 모택동은 인민의 정신을 개조한다는 명분으로 젊은 홍위병을 전면에 내세워 문화혁명을 벌인다.

손이 묶인 두 사람은 많은 인파 속에 끌려 다니면서 서로 자아비판을 한다. 샬루는 두지가 일본군 앞에서, 장개석 군 앞에서 지주나 자본가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렀고 마약을 하면서 인민 노동자의 피와 땀을 빨아 먹었다는 사실을 알린다.

두지 역시 가면 속에서 샬루에게 인간의 탈을 쓴 치사하고 야비한 짐승이라고 야멸치게 몰아친다. 그리고 쥬산을 창녀로 부른다. 쥬산의 형형한 눈빛을 뒤로하고 샬루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목숨을 구걸한다.

살기위해 벌이는 이들의 자아비판은 생살이 찢기는 아픔이다. 쥬산에게 두 사람을 공격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두지에게는 너는 동성애 쓰레기라고, 샬로에게는 정신병자라고 외쳤을까.

수수꽃다리 향기가 진동하는 이 4월에 <패왕별희>를 보는 것은 장국영을 추모하는 작은 몸짓이라고 불러도 좋다.

국가: 중국/ 홍콩
감독: 첸 카이거
출연: 장국영, 장풍의, 공리
평점:

 

 

 

팁: <패왕별희>는 초-한 나라의 전쟁이야기다. 초패왕 항우는 천하무적의 영웅이며 천군만마를 다스리는 맹장.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만하다.( 역발산 기개세) 그러나 하늘이 시기하여 유방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죽는다.

그날 저녁 바람은 매우 거세게 불고 유방의 사면초가 정책에 빠진 초나라 백성은 혼비백산, 유방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아무리 맹장이라고 해도 하늘의 뜻을 이길 수는 없다.

패왕의 운명이 다하니 남은 것은 애첩 우희와 한 필의 말. 말도 떠나려 하지 않고 우희 또한 곁에 있으려 한다. 우희는 패왕에게 마지막 술 한 잔을 권하고 검무를 추다 죽는다.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 것이다.

이 경극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도 좋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랫동안 기억될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당국은 20세기 중국 역사의 격변기에 벌어진 개인의 배신과 증오와 사랑과 용서와 그리고 동성애를 그려낸 이 대작의 수상에 크게 당혹해 했다고 한다.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장국영의 미모가 돋보인다. 예쁘장하게 분장하고 애교를 떠는 모습을 보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라고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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