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9 06:01 (금)
170. 펄프픽션(1994)
상태바
170. 펄프픽션(1994)
  • 의약뉴스
  • 승인 2015.04.13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은 영화는 장르와 상관없다. 딱히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웰 메이드 영화는 보고 나서 뒷맛이 남는다.

잘 빚은 포도주의 묵직한 바디감 혹은 기름을 많이 바른 멋진 유화를 감상하는 것과 동급이라고나 할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Pulp Fiction) 이 꼭 그런 경우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뭐, 이런 게 다 있나 할 만큼 조금 어리둥절한 것이 기존의 형식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이 영화 이후 타란티노 스타일이 유행했다고 하니 굳이 감독이 말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옴니버스 3부작을 축으로 여러 명의 주인공이 나와 죽고 죽이는데 슬프거나 무섭기 보다는 웃기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사, 대사를 위한 대사, 꼬투리를 잡기 위한 대사, 영화를 이어가기 위한 대사들이 난무하는데 그게 그렇게 싫지 않다.

 

수다쟁이 남자와 여자들이 마치 경쟁적으로 하는 말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대사에 목숨을 건다. 자신만만하고 결의에 차 있으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확신이 넘쳐흐른다.

개성이 있고 주장이 있고 거기다 성질까지 있으니 사람의 목숨이 날아다니는 파리의 목숨과 진배없다. 총질하기 전에 숭고한 성경 말씀을 읊조리는 모습은 살인자의 광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게 주인공 아닌 자들은 주인공을 위해 유혈이 낭자한 채 쓰러진다. 영화는 펌프킨 (팀로스)과 애인 사이인 하니 (아만다 플러어)가 합심해 레스토랑을 털기 직전의 앞서와 같은 대화로 시작한다.

너무 위험한 짓은 오늘만 하고 이제 안한다거나 말은 항상 그렇게 하더라고 맞장구치거나 이건 강도를 말리지 않는 은행털이와 같다고 하는 등 쓰잘머리 없는 수다의 연속이다. ( 다른 영화들은 대개 털기 직전 작전을 다 짜놓고 정해진 장소에서 간단한 말 한마디 혹은 눈짓으로 행동을 개시한다.)

다음 장면은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는 달리는 차안이다. 귀고리를 한 얼굴이 큰 남자 빈센트( 존 트라볼타)와 아줌마 퍼머 머리( 가발이다.)를 한 흑인 줄스( 사무엘 L. 잭슨) 역시 무지막지하게 떠벌이는데 정신이 없다.

갱 질이 생업이 아니라 조잘대는 것이 직업인 것처럼 느껴진다, 대화는 역시나 하나마한 것들이다. (일부는 잡담을 통해 관객들이 이전이나 이후의 상황 전개를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도록 복선을 깔아 놓기도 했다.)

이런 일은 장총이 제격이라고 푸념을 하면서 권총을 꺼내 삽탄을 하고 장전을 하고 옆구리 끼는 것으로 두목을 배신한 애송이들을 잡기 위한 준비를 가볍게 마친다. ( 그 와중에도 입은 끊임없이 열렸다 닫혔다 반복한다.)

두목의 부인 미아( 우마 서먼)의 발을 마사지 했다는 이유만으로 4층 높이에서 떨어뜨린 것에 대한 옥신각신( 여자의 발을 만지는 것은 관계하는 것과 같다거나 전혀 그렇지 않다거나) 이 이어지고 방문 앞에서 시간을 보고 급습할 때가 아니라고 비켜서서 여전히 마사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다가 가자, 시작해야지 하고는 들어가서는 한참을 떠들다가 죽인다.( 살인 역시 떠벌이는 것만큼 쉽다.)

빈센트는 보스가 출장을 가면서 부인을 잘 돌봐달라고 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이 깊다.

친구 부인과 그냥 영화를 보는 것 정도라거나 외로움을 잊게 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미아가 대단히 육감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빈센트가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사이 보스는 또 다른 주인공 부치( 브루스 윌리스)에게 사기 권투를 지시한다.

정면을 응시하는 부치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이미 마음속으로 굳힌 자의 표정이다.

그러나 부치는 5라운드에 쓰러지라는 보스의 지시를 어기고 상대를 패 죽이고 도망친다. ( 떠나기 전에 여자와 남자는 섹스를 하면서 하루를 묵는다. 좀 길게 이어지는 러브신은 좀 그렇다. 하더라도 짧게 한 5초 정도, 했다는 것만 암시하는 장면으로 처리 했으면 어땠나 하는 아쉬움은 수다와 살인과 가벼움과 사랑타령은 조합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 빈센트는 미아를 만나 술집에서 트위스트를 춘다.

우승자에게 주는 트로피를 갖고 싶다는 보스의 여자 청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우스꽝스러운 춤 동작은 존 트라볼타가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춤이라면 최고인 그가 좀 어설프게 춘다 싶었는데 이것은 의도된 것이었다고 한다.)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온 두 사람.

빈세트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미아의 유혹에 넘어가 발을 마사지할까. (이 장면 이후의 상황을 더 언급하는 것은 부질없다. 이 정도 설명을 했으면 읽는 것을 때려치고 당장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보고 나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고 나면 본 내용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혹은 본 사람에게 마구 떠들어대 위대한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 .)

마약 과다로 쇼크 상태에 빠진 미아의 심장에 주사기를 박는 장면이나 부치가 시계 때문에 살인을 하고 변태 성욕자에게 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장면, 빈센트와 줄스가 살인자의 두개골 때문에 벌이는 티격태격. 하고 싶지 않은 이혼 걱정을 하는 줄스 친구와 보스가 보낸 해결사의 너스레는 보지 않고는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국가: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존 트라볼타, 샤무엘 L 잭슨, 우마서먼,부르스 웰리스
평점:

 

 

 

팁: 펄프는 자막에 따르면 야하고 섬뜩한 주제를 다룬 잡지나 책이다. 영악한 제목이다.

당시 미국서 유행하던 싸구려 잡지 ‘펄프 매거진’에서 따왔다. 형식과 스타일에서 이전 영화와는 확 다른 모양을 보여줘 갓 30이 넘은 감독에게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안겼다.

한 물간 배우로 인식됐던 존 트라볼타는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고 대머리와 청바지가 어울리는 부르스 윌리스는 최고 배우로 우뚝섰다.

클레오파트라 머리를 한 우마서먼은 이후 <킬 빌>에서 장검을 휘두른다. 분노한 부치가 허름한 가게의 지하에서 쓰는 무기 역시 권총도 장도리도 야구방망이도 전기톱도 아닌 바로 칼이라는 사실이 공교롭다.

한국에서 미국보다 한 달 앞서 전 세계적으로 처음 개봉했다. 그런데 154분의 영화는 30분 정도 잘렸다고 한다.

개봉횟수를 늘리거나 등급을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남아있었던 검열과 가위질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분위기는 무자비한 삭제로 내용 파악이 어려워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