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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윌로씨의 휴가(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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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윌로씨의 휴가(1953)
  • 의약뉴스
  • 승인 2015.01.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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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휴가는 즐겁다. 굳이 좋은 사람끼리 모여 있지 않아도 된다. 파도가 철렁이고 갈매기가 날고 모래사장이 길고 음악이 흐르고 파란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다면 혼자라도 나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윌로씨가 끼어 있다면 그 휴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휴가지가 아닌 안방에서라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윌로씨가 벌이는 휴가지에서의 웃긴 일에 입을 벌리기만 하면 된다. 자크 타티 감독은 윌로( 자크 타티)씨를 등장시켜 휴가를 가지 못했지만 휴가를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완벽한 대체 휴가를 선보이고 있다.

‘방콕’에 있는 사람들은 윌로씨가 보내는 휴가를 보면서 마치 자신도 휴가를 즐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의 어느 유명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일광욕을 하거나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샹숑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역에서 시작되는데 사람들은 안내방송에 따라 이리저리 플랫폼을 옮겨 다니면서 자신들이 타야 할 기차를 따라 허둥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객들은 커다란 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해변의 작은 호텔로 들이 닥친다. 윌로씨는 기차대신 자가용을 이용한다. 그러나 썩 좋은 차는 아니다.

바퀴가 작고 차는 낡았다. 크락숀을 누르려면 손을 차창 밖으로 뻗어야 하고 언덕길에서는 속된 말로 ‘후카시를 이빠이’ 넣어야 겨우 오를 수 있다.

덜컹 거리는 엔진소음을 내면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배기통은 곧 터질 듯이 그르렁 소리가 요란하다. 기관총을 쏘는 것 같기도 하고 타이어가 빵구 나는 소리 같기도 한데 범퍼가 붙어있는 것이 신기하다.

2만개의 자동차 부품이 순식간에 쏟아져도 이상할 게 없는 폐차 직전의 차를 타고 휴가지로 향하는데 좋은 차는 쌩쌩 그 옆으로 질주하고 만원 버스도 윌로씨 차를 따돌린다.

우여곡절 끝에 윌로씨는 차와 함께 해변이 바라보이는 호텔 앞에 선다. 기차 여행객과 버스의 승객들이 호텔로 쏟아져 들어온다.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 대신 우산을 들고  껑쭝한 키에 바짓단이 드러나는 짧은 옷을 입은 윌로씨를 프런트 맨 (루시엥 프레지드)은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예약자 명단에 있으니 그를 아니 받을 수 없다.

뻗정다리를 하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항상 멈칫 거리고 문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항상 사전에 예비동작이 필요하다. 곧 무슨 사단이 일어날 것만 같다.

어쨌든 바다가 바라보이는 호텔과 모래사장이 여행객들이 휴가를 보내는 장소다. 이들은 아침이면 일어나 밥을 먹고 수영을 하고 카드놀이를 하고 말을 타고 저녁이 되면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보고 프랑스 국영 라디오 방송이 자라고 하면 일시에 자리를 뜬다.

아침 6기 30분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사방은 고요하다. 날이 새면 사람들은 일어나서 어제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한다. 별다를 것이 없는 일정인데 모름지기 휴가라면 오늘과 같은 내일을 보내야 맞는가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아니다. )

부부처럼 보이는 늙은 남녀는 여자가 앞장서고 남자가 손바닥 만한 여자의 핸드백을 어깨에 맨 채 두 어 걸음 뒤떨어져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이스크림 장수는 얼음이 녹지 않도록 신경 쓰면 되고 아이는 일광욕을 즐기는 배불뚝이 사내의 배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운동하는 남자, 공놀이 하는 가족, 자전거를 타는 여자들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각자의 행동이나 시선들이 전혀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 없는 것 같은 별개의 행동이다.

얼간이 멍충이 바보들을 한데 뭉쳐 놓은 움직이는 거대한 정신병동 같기도 하다. 그런 모습들이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각자 따로 놀기도 하는데 여하튼 한 번 입을 벌리면 좀처럼 닫기가 어렵다.

윌로씨를 중심으로 여관주인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이 화면에 잡히는 것 빼고는 출연진 모두가 주연이면서 동시에 조연이다. 음식을 먹다 남의 소매에 입술을 닦고 건배를 하다 고개를 너무 뒤로 젖혀 문밖으로 나가거나 배가 반으로 잘려 마치 상어가 해변에 나타난 것과 같은 장면에서는 폭소를 터트리게 된다.

낙엽이 붙은 타이어 바퀴가 장례식장의 조화가 되고 얼떨결에 상주가 돼서 조문객을 맞는 윌로씨에게 키 작은 여인의 모자에 붙은 깃털이 목을 간질이면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테니스 서브를 넣기 위해 라켓을 허리 높이에서 수평으로 쭉 밀었다가 절도 있게 뒤로 당기면 완벽한 서브 포인트가 되고 심판관 부인은 손뼉을 치며 좋아 죽겠는데 러브 게임을 당한 상대는 밀었다가 빼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면서 속상해 죽을 판이다.

비뚤어진 액자를 바로 잡거나 가죽 장화 신발에 달라붙어 따라 다니는 여우박제를 떼기 위해 소동을 벌일 때면 웃다가 지쳐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밤하늘을 은하수처럼 수놓는 폭죽 소동은 이 영화의 대미다. 헤어스타일만 조금 바꾸고 콧수염만 달면 영락없는 히틀러 역의 찰리 채플린이다.

이렇다 할 플롯도 없고 대사도 손꼽을 정도인데도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잡은 배꼽이 아플 정도이니 슬랩스틱( 넘치는 유머, 불합리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형이하학적인 희극 형태) 코미디의 원조로 불릴만하다.

다음 휴가에서 윌로씨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하면서 이번 여름휴가를 계획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휴가가 끝나면 다음 휴가를 기다린다는 ‘휴가의 천국’ 프랑스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어디서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 Hulot)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국가: 프랑스
감독: 자크 타티
출연: 자크 타티, 루시엥 프레지드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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