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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내쉬빌(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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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내쉬빌(1975)
  • 의약뉴스
  • 승인 2014.12.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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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구 종말이 임박했다고 치자. 영화를 보면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영화를 고르고 싶은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내쉬빌'(원제: Nashville)을 선택했다면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주인공 비스므레하게 등장하는 20여명 가운데 당신이 거기에 있으며 이들 인간군상의 언행은 바로 내 자신이기에 생을 돌아보기에 적합하다. 

개나 돼지 원숭이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며 정치와 음악은 세끼 먹는 밥이나 매일 자는 잠처럼 늘 가까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영화는 셔터가 열리고 거대한 스피커가 달린 12인승 정도 되는 밴이 나오면서 선거방송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차량은 11월 첫 번째 화요일, 미국인들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며 선거용 벽보가 붙은 건물을 떠나 시내를 돌기 시작한다.

 

중년쯤으로 짐작되는 방송 속의 남자는 명확한 발음과 굵은 저음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뽐내고 있다. (이 남자의 목소리 때문에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는 ‘워커’를 지지하겠다고 결심한 유권자가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앞뒤 2개씩 네 개의 스피커는 계속 말을 한다. 정치에 연루되거나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싫어한다는 사람들에게, 당신들 모두는 정치에 깊이 연관돼 있다고.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들, 말하거나 걷는 사람들 그 누구도 확성기의 내용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는 마치 남의 일인 양 하던 잡담을 이어나간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가수들은 노래 부르고 관객들은 흥에 겹다. 확성기 소리가 백업으로 들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고 확성기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워커가 당선되기 위해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녹음에 열중인 헤이븐 해밀턴( 헨리깁슨)도 예외가 아니다.

엇박자를 내는 피아노맨 에게 화를 내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바라 진( 로니 블레이클리)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으로 마중 나간다. 둘은 테네시주 네쉬빌에서 유명한 남녀 컨트리 가수로 명성이 높다. 우리의 아이돌 스타만큼은 못되지만 팬들을 끌고 다닌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정치가 있으니 케네디를 닮은 워커의 선거참모 존 트리플렛(마이클 머피)이 이곳에 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헤이븐에게 접근해 선거연설에 나와 노래를 불러 줄 것을 요구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답게 헤이븐은 조금 거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존은 도와주면 테네시 주지사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은근한 눈길을 보낸다. 헤비븐은 솔깃 한다.

이곳 저 곳을 누비는 확성기 목소리가 또 들린다.

“우리 모두는 정치에 개입됐고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작은일 때문에 큰일을 망치는 것이 정부가 하는 일이다.”

확성기는 보였다가 이내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자리를 무대가 차지하고 가수들이 노래 부른다. 관중들은 환호하고 유세차량은 다른 곳에서 같은 목소리로 떠들어 댄다. 통기타 선율은 흥에 겹다.

확성기와 노래가 반복되는 이런 구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한 번 보면 기억날 캐릭터인 BBC 라디오 방송국 리포터로 내쉬빌의 다큐를 만드는 오팔(제럴딘 채플린)은 가수들을 인터뷰하고 선거유세차량을 쫒는다.

성당의 코러스 가수인 듣는 장애를 가진 두 아이의 엄마는 컨트리 가수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넘어가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현역군인은 바바라를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다.

토박이 노인의 아내는 위중한 상태다. 바바라가 공항 환영 행사 중 쓰러져 아내 옆 침대로 오자 조카에게 자랑이다.

이름을 바꾼 조카는 숙모의 문병을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일부러 왔으면서도 숙모 면회 보다는 가수들의 사인을 받거나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는 훈남인 헤이븐의 아들에게 관심이 쏠려있다.

공항 식당의 웨이트리스는 음치 이면서도 바바라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워커의 환영행사에 노래를 부르다 관중의 야유를 받고 스트립쇼로 무대를 마무리 하는데 이는  바바라와 같은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겠다는 조의 꼬임에 빠졌기 때문이다.

삼촌 집에 하숙생으로 온 안경 낀 잘 생긴 남자는 바이올린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들고 다닌다.

이 남자는 숙모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악기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바바라를 살해한다. 어수선한 가운데 후보를 태운 검은색 차량들은 급히 돌아가고 가수를 꿈꾸는 글래머스러운 여자는 마이크를 잡는다. 소요는 진정되고 청중들은 하나가된다.

영화의 핵심은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접촉 사고 때문에 도로에 나온 여기 나오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의 움직임이다. 확성기도 빠질세라 국가를 바꾸자고 유세로 끼어든다.

서로 연관이 없는 것 같은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고 줄거리 들은 각기 따로 놀면서도 연관성이 있다.

이 영화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한국전 당시 주한미군을 소재로 1970년에 만든 ‘ 야전병원 MASH’ 이후 흥행과 비평에 모두 성공한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삼천포로 빠지기 쉬운 곁가지들을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잘 연결했다.

노래와 노래를 부르는 출연진들의 솜씨가 놀랍다. 듣으면 기분좋고 듣고나면 더 듣고 싶은 '난 쉬워요' 등의 노래들은 출연진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영화연구소(AFI) 가 선정한 '영화 100년 영화 100편' 중 59위에 랭크 됐다.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200만 달러를 들여 9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차가 나왔던 곳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무리도 이만하면 그만이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지구의 종말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는 없는 짬이라도내서 보고 지구 종말에는 가족과 함께 진한 에스프레소나 독한 몰트 위스키 한잔 마시는 것이 더 현명할 거라고 조언하고 싶다.

국가: 미국

감독: 로버트 알트만

출연: 헨리 깁슨, 로니 블레이클리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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