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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분노의 주먹(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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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분노의 주먹(1980)
  • 의약뉴스
  • 승인 2014.11.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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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를 정통으로 맞아 본 사람은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안다.

호흡은 금방 끊어지고 잘릴 것 같은 창자를 보호하기 위해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쥐게 되면 다운을 피할 수 없다.

물을 뒤집어쓰거나 따귀를 맞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는 비정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각의 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강제로 머리를 잘라야 했던 학창시절 나는 산내끼로 대신한 링에서 명치를 맞고 쓰러진 적이 있다.  하필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주먹이 날아왔고 순식간에 혼절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분노의 주먹’( 원제: Raging Bulls)을 보면서 내내 숨이 턱에 차오르고 얼굴이 돌아갔던 그 시절이 떠올라 괴로웠다.

챔피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겼다고 해서 아무런 이득이 없었음에도 내가 비닐로 만든 권투 글러브를 낀 것은 순전히 권투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쳐다만 봐도 째려봤다고 주먹이 나가던 10대 시절아닌가.) 

 

라모타( 로버트 드니로)는 나와는 달리 상대를 꺾기 위해 글로브를 꼈다.

동생인지 형인지 헛갈리는 매니저(조 페시) 와 함께 다니는 라모타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그러니 미들급 챔피언 벨트는 당연히 그의 몫이다.

하지만 보석이 박힌 벨트를 허리에 차기 까지 그가 벌인 피 튀기는 시합은 보는 내내 애간장을 녹인다.

두 번째 아내 (캐시 모리어티)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릴 수밖에 없다. (첫 부인과는 음식투정하다 상을 뒤집어엎는 좀생이 짓을 하다 이혼한다.)

권투 영화이니 주인공인 라보타의 일상은 거칠고 내뱉는 말은 상스럽고 여자를 밝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대충 짐작이 간다.

여성을 비하하고 동성애를 저주하면서 의처증은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매니저에게 내 아내와 잤느냐? 고 도저히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한다. )

이쯤 되면 권투 외적인 이야기가 상당부분 영화에 녹아들 것이고 이런 갈등은 시합과 맞물려 관객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살을 빼기 위해 사우나 같은 곳에서 혀에 얹어 놓을 만큼 얇은 얼음 한 조각도 먹지 못하고 뜀박질하는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는 장면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2주간이나 잠자리를 못했으면서도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글래머인 상대를 밀치고 찬물을 사타구니에 쏟아 넣은 장면도 부수적이다. (그가 남들이 욕하듯 짐승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주인에게 버려진 떠돌이 개처럼 흔들리는 영혼이 거칠고 고집센 사내의 온 몸을 관통하면 마침내 잘 벼린 비수가 되어 상대의 이마와 코와 귀와 가슴과 턱과 배에 사정없이 가해지는 주먹질이 본질이다.

그 인생 순탄하지 않다. 성인으로 위장한 미성년자를 남자에게 소개했다는 이유로 그는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챔피언 벨트의 보석도 보석금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날렵했던 배는 불뚝 뛰어 나왔고(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드니로는 27 킬로 그람이나 살을 빼고 찌우고 하는 등 고난의 행군을 했다고 한다. 대단한 배우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내는 그를 떠난다.

감옥에서 그가 벽을 향해 내지르는 주먹과 이마로 박치기 하는 장면은 눈뜨고 보기 힘들다. 너무 끔찍해 마치 참수영상을 보는 듯하다.

실베스터스탤론 주연의 ‘로키’처럼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우뚝 서는 인간 승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초반 누구나 인정하는 실루엣으로 처리되는 슬로우 모션의 섀도우 복싱 장면은 인상 깊다. 좌우 어퍼컷, 훅과 잽으로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판초우의가 흔들릴 때면 결전을 앞둔 후퇴를 모르는 ‘성난 황소’의 일생일대 승부가 광활한 자연처럼 펼쳐진다.

‘분노의 주먹’은 로버트 드니로가 ‘택시드라이버’로 손발을 맞춘 감독을 설득해 만든 영화로 알려져 있다.

실존 인물 라모타의 성공과 쇠락이 시간차 순으로 정렬된다. 권투계의 암투도 양념 맛이 난다. 형제를 껴안고 화해를 시도하는 장면은 어설프다. 결코 그는 선량한 인간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 미국
감독: 마틴 스코세지
출연: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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