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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오발탄(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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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오발탄(1961)
  • 의약뉴스
  • 승인 2014.06.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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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좋으면 실수를 해도 평균은 한다. 감독이 뛰어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반타작은 한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영어명: Aimless Bullet)은 좋은 원작과 좋은 감독이 만나 태어난 명품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윤기 나는 그런 영화다.

해방 후 들뜬 기분도 잠시, 동족상잔의 참극이 벌어졌다. 거리는 상이군경들로 넘쳐났다. 철호(김진규)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동생 영호(최무룡)는 옆구리에 총알 두발이 관통했다.

군에서 나온 지 2년이 지났지만 변변한 직장이 없다.

영호가 하는 일은 손대신 갈고리를, 다리 대신 목발에 의지하는 옛 동료들과 ‘전우여 잘 자라’ 같은 군가를 부르며 술을 먹고 어울리는 일이다.  (한 때 영화사의 배우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용한다며 대본을 찢어 버린다.)

철호는 작은 회사의 서기다. 월급을 받아봐야 전차 값도 안 돼 10리길을 걸어오기 일쑤다.

집은 산을 깎아 만든 다 쓰러져 가는 해방촌에 있다. 그 곳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가자, 가자’를 외친다. 여동생 명숙(서애자)은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다.

막내 아들은 학교대신 신문팔이를 하고 철없는 어린 딸은 신발을 사달라고 조른다. 아내 (문정숙)는 만삭이다.

어느 날 사무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중부경찰서에 명숙이 끌려왔다. 풍속단속에 걸려든 것이다. 경찰은 오빠에게 몸단속 잘하라고 타이른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서 모른 척 걸어간다.

영호는 한 탕을 꿈꾼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 근사한 양옥집을 짓고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필요 없다. 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다.

사랑했던 여인(김혜정)이 시 10편만 쓰겠다는 애송이 시인에게 죽음을 당하자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다. 뭉치 돈이 오고가는 상업은행 남대문 지점이 범행 장소다.

 

돈 다발을 챙겼지만 경찰의 추격이 만만찮다. 영호는 청계천 공사가 한 창이던 지하로 피신한다.

하지만 곧 포위당하고 만다. 철호는 동생을 면회한다. 유언처럼 딸에게 화신백화점 구경시켜 주라고 말하는 동생에게 형은 말이 없다.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철호의 신세는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치통만큼이나 괴롭다.

터벅터벅 언덕을 오른다. 햇빛은 강렬하고 손에 쥔 서류봉투는 날씬하다. 집에 가까워 올 수록 ‘가자, 가자’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커진다. “가세요, 갈수만 있다면... ”

철호는 한숨을 길게 내쉰다.  집에 도착하자 명숙의 얼굴이 굳어있다.

“병원에 빨리 가봐요. 언니가 애를 낳다 걸렸어.”

서울대학교 병원의 시체안치실. 아내는 죽었다. 철호는 밖으로 나온다.  되는 것이 없다. 착하게만 사는 인생에게 세상은 이처럼 잔인하다.

이는 욱신거리고 마침내 철호는 치과는 찾는다. 두 곳의 치과를 돌며 아픈 이를 싹 뽑아 버린다. 침을 뱉을 때면 검붉은 피가 쑥, 쑥 뿜어져 나온다.

무작정 걷는다.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비켜 간다. 택시에 오른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해방촌으로. 아니, 서울대학병원으로. 아니 중부경찰서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철호는 행선지를 마구 바꾼다. 기사는 말한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어딘가 가기는 가야 하지만 정처 없는 신세. 철호는 언제나처럼 말이 없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묵직하다.

끌고 가는 뒷심이 대단하다. 원판이 분실돼 제 7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만 남아 있다. (화면의 질이 좋지 않다. 제대로 된 복원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범선의 ‘오발탄’이 원작이다. 당시 사회상을 가감 없이 그렸다. 리얼리즘의 진수다. 무표정하고 체념한 듯 한 김진규의 연기가 좋다. 동시대의 어느 외국 작품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작이다.

가히 한국 최고의 영화라고 부를만하다.

국가: 한국
감독: 유현목
출연: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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