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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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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도 좋아요
  • 의약뉴스
  • 승인 2014.05.19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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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래요?
나무그늘아래 시장이 열렸습니다. 시골 5일장처럼 시끌벅적 하군요.

오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기웃거리고 가격을 보고는 아, 싸다 하고 한마디씩 합니다.

물건은 비록 윤기나는 새제품이 아니지만 파려는 상인이나 사려는 고객의 눈빛은 반짝입니다. 프리마켓입니다. 우리말로 자유시장이라고도 하고 벼룩시장 혹은 프리바자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굳이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도 벌어지는 좌판에서 여유를 느낌니다. 좋은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나의 프리마케/김혜순

뭐 굳이 사겠다는 사람은 없지만

좌판은 벌인다

새의 혀처럼 생긴 말랑한

침묵을 위한 열쇠 몇 개

붙잡으면 뭉개지는 종소리 몇 개

눈뜨면 슬며시 녹아주는 풍경 몇 장

노래로 만든 관에 함께 묻을 수 있는

금 간 얼굴 몇 장, 덤으로 애매

광기의 전압을 높이는 예배당들이여!

부르르 떠는 은혜받은 밤의 붉은 상점들이여!

그리고 나여! 코 고는 흰 토끼 앞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물렁한 열쇠나 팔겠습니다

나는 지금 장의사처럼 차려입은 피아니스트를 예배

하는 중입니다

그의 검은 구두에 박힌 징도 예배하는 중입니다

그의 팔에서 열렸다 떨어지는 별들이

내 자판의 바퀴를 더듬을 때는 그의 대머리도 숭배

해드립니다

그가 앙코르의 앙코르에 답하면서 녹턴을 방출할

때는

그의 발밑 그 밑에 꿇어 엎드려 쉼표마저 주워 먹

습니다

그런데 그 옛날 철기 시대 우리 아버지는

새파란 처녀에게 물고기처럼 체외 수정을 하셨다

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류를 믿고 어류의 아들을 믿

는 건가요?

도마 위 물고기에 리본 달아드릴까요?

그 리본을 가슴에 박아줄 꽃핀 사실래요?

누르면 말간 알이 쏟아지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팔뚝에 달 수 있는 별도 물론 있습니다

내 기침 밖으로 쏟아지는 압정들

도마 위에서 칼날을 척척 감싸는 손가락들

덮으면 저 건너 암흑이 슬쩍 보이는

눈동자를 위한 이불 대용 검은 나비 두 마리

홍수에서 건져낸 것처럼 부르튼 좌판에

질문으로 화상 입은 입술 모형도 있어요

코르크 마개를 빼면 듣기 싫은 의심이

쏟아지는 검은 와인 한 병

아예 껍질은 다 도둑맞고 뼈 조롱에

내장만 남은 짐승

목쉰비명바구니

맨발 속에 신는 물고기가시신발

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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