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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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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해 봅니다
  • 의약뉴스
  • 승인 2014.03.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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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기차를 타면 그 소리 더욱 크게 들려오지요. 

바다 바람은 시원하고 파도소리는 요란합니다. 사평역이 아니어도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해 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춘분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라는 시입니다.)

 
 

 
사평역에서/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꽃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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